인간의 욕망은 결국 파멸만 이끌 뿐이다
아름다운 간주곡으로 매우 유명한 에르만노 볼프페라리의 오페라 《성모의 보석》은 그 제목과 달리 매우 어둡고 잔혹한 사랑의 비극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1911년 발표된 이 작품은 나폴리를 배경으로 주인공 제나로와 말리엘라, 그리고 라파엘레 사이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질투, 사랑과 배신을 그린다.
제나로는 말리엘라를 사랑한다. 그러나 말리엘라는 제나로를 오빠처럼 여기며 그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카모라의 우두머리 라파엘레다. 라파엘레 역시 말리엘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보석까지 훔칠 수 있다고 말한다.
제나로는 사랑을 얻기 위해 결국 그 성모의 보석을 훔친다. 신성한 성모의 보석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랑의 선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보석은 사랑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국의 시작이 된다.
말리엘라는 보석으로 자신을 치장하지만, 그녀가 꿈꾸었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파엘레는 그녀를 버리고, 제나로 역시 자신의 욕망과 죄바카라감 속에서 파멸한다. 결국 말리엘라는 바다에 몸을 던지고, 제나로도 목숨을 끊는다.
성모의 보석을 훔치면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죽음으로 끝나는 파멸이었다.
이 오페라가 오늘날에도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강렬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간은 사랑을 말하면서 끊임없이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제나로가 원했던 것은 말리엘라의 행복이었을까. 아니면 말리엘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을까. 라파엘레가 원했던 것도 사랑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한 인간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에 가까웠을 것이다.
사랑과 욕망은 처음에는 놀랍도록 비슷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래서 인간은 그것을 쉽게 구별하지 못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방을 소유하려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더 좋은 선물을 주려고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성모의 보석》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이다.
얼마나 많은 것을 주면 사랑을 얻을 수 있는가?
돈을 주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비싼 선물을 주면 마음을 살 수 있는가.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와 명품과 여행과 슬롯적 지위를 제공하면 인간의 마음까지 소유할 수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사랑조차 시장의 언어로 설명하려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를 만날 것인가를 결정할 때 경제력을 따지고, 결혼을 결정할 때 연봉과 자산을 계산하며, 사람의 가치를 직업과 학벌과 주거지역으로 평가한다. 사랑에도 끊임없이 가격표가 붙는다.
물론 현실에서 물질은 중요하다. 가난이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며 경제적 바카라임도 필요하다.
그러나 물질은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일 수는 있어도 사랑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이 중요한 차이다.
성모의 보석은 아름답고 값비싼 것이었지만, 그것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었다.
오히려 성스러운 것을 욕망의 도구로 바꾸는 순간 그것은 인간을 파괴하는 물질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슬롯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이 풍요로워질수록 인간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원한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원하고, 둘을 가지면 셋을 원한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자동차, 더 좋은 직업, 더 많은 돈, 더 높은 슬롯적 지위.
문제는 욕망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것이다.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인간은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더욱 선명하게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랑마저 이 욕망의 구조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어느 순간 나는 당신을 원한다는 말로 바뀌고, 나는 당신을 원한다는 말은 다시 나는 당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바뀐다.
그 순간 사랑은 욕망으로 변한다.
욕망은 상대방을 바라보지만 상대방 자체를 바라보지는 않는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투사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 욕망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순간 사랑은 실망으로 변하고, 실망은 분노로, 분노는 증오로 변한다.
《성모의 보석》의 비극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제나로와 라파엘레는 말리엘라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말리엘라를 사랑했다. 그리고 말리엘라 역시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얻고 싶다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네 사람 모두 사랑을 말했지만 사랑의 본질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보석이 아니었다.
순수함이었다.
진정한 사랑에는 반드시 물질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종교적인 의미에서만의 순수함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는 능력이다.
그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인가를 바라보는 것.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을 소유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중이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라 헌신이다.
사랑은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물질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
물질을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물질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이야기다. 돈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인간의 존엄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보석은 몸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만 영혼을 아름답게 만들지는 않는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주지는 않는다.
성모의 보석으로도 사랑을 살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도 바로 그 영역인지 모른다.
우리는 물질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랑조차 상품처럼 소비되고, 인간관계조차 효율과 조건으로 계산되는 시대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조차 스펙이 되고, 결혼조차 경제적 계약처럼 평가되며,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포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사랑은 과연 사랑일까.
성모의 보석을 몸에 걸친다고 해서 성모의 순결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값비싼 선물로 사랑을 장식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랑에는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이 필요하다.
신뢰가 필요하고, 존중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하며, 때로는 상대방을 놓아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소유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다.
그래서 《성모의 보석》은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욕망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욕망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파멸하기 시작한다.
보석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사랑은 이미 죽어버린다.
사랑은 물질을 필요로 할 수 있지만 물질로 환원될 수 없다. 사랑은 육체를 포함할 수 있지만 육체적 욕망과 동일하지 않다. 사랑은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지만 현실적인 조건의 총합으로 설명될 수도 없다.
사랑이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주는 것은 소유의 기쁨이 아니라 존재의 기쁨이다.
'나는 당신을 가졌기 때문에 행복하다'가 아니라,
'당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
어쩌면 이것이 욕망과 사랑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문장일 것이다.
성모의 보석은 아름다웠지만 사랑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오래된 오페라가 백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인간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가는 시대일수록 사랑만큼은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석보다 귀한 사랑이 있고, 돈보다 귀한 사람이 있으며, 욕망보다 깊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키는 마지막 보석은 어쩌면 물질이 아니라 순수함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돈이 전부인 세상이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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