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성장보다 분배의 정의가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부유해졌다.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성장했고, 국민소득은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위상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런데 정작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은 왜 이렇게 가난하다고 느끼는가.
대학가에서는 천 원짜리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한 끼 식사비를 아끼기 위해 음식을 나눠 먹는다. 취업은 늦어지고 주거비는 높아지고 결혼과 출산은 뒤로 밀린다.
이것을 단순히 청년들의 소비습관이나 눈높이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오늘의 청년 빈곤에는 한국 경제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성장하면서 만들어놓은 세대 간 부의 이전 구조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현재 한국 슬롯의 가장 강력한 경제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세대, 흔히 586세대로 불리는 세대가 있다.
물론 586세대 전체를 하나의 특권계층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들 가운데도 평생 집 한 채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놓인 사람도 있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다.
문제는 특정 세대가 경제성장의 황금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주택가격 상승의 혜택을 받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연금제도에 편입되는 동안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뒤따라오는 세대가 부담하게 된 구조다.
이것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청년 빈곤을 아무리 복지의 언어로 설명해도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다.
가장 먼저 부동산을 보자.
한국에서 세대 간 부의 격차를 가장 크게 만들어낸 것은 부동산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주택을 구입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이후 엄청난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렸다. 특히 수도권과 서울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지난 수십 년은 노동소득만으로는 따라가기 어려운 자산 축적의 시간이 됐다.
문제는 주택을 가진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 사이의 차이가 이제 자녀 세대의 출발선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집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에게 주거를 지원할 수 있다.
전세금을 보태줄 수도 있고, 집을 사줄 수도 있고, 결혼자금을 마련해 줄 수도 있다.
반면 부모에게 자산이 없다면 자녀는 자신의 월급으로 이 모든 비용을 해결해야 한다.
같은 대학을 나오고 같은 회사에 취직해도 출발선이 다르다.
한 청년은 월급을 저축할 수 있지만 다른 청년은 월급으로 월세를 내야 한다.
한 사람은 부모가 마련해 준 집에서 출발하고 다른 사람은 평생 대출을 갚으며 출발한다.
이것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다.
상속의 차이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그래서 단순한 주택 문제가 아니다.
세대 간 부의 이전 문제다.
여기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결합한다.
586세대 상당수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던 시기와 지금은 경제환경 자체가 다르다. 당시에는 고도성장이 지속됐고 기업은 빠르게 사람을 필요로 했다. 반면 오늘날 청년들은 저성장, 자동화, 산업구조 변화, 경력직 중심 채용이라는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노동시장에 들어간다.
그런데 기존 노동시장의 보호체계는 여전히 강하다.
정규직의 고용 안정은 중요한 가치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기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가 신규 진입자의 기회를 막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규직의 강력한 보호와 높은 임금, 연공서열 중심의 보상체계가 유지되는 동안 기업은 신규 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대신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외주와 자동화로 대응할 유인이 커진다.
그 결과 노동시장 안쪽에 들어간 사람은 보호받지만 아직 들어가지 못한 청년은 계속 바깥에 머문다.
이른바 노동시장의 내부자와 외부자 문제다.
기성 노동자에게 안정은 권리지만 청년에게는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어느 세대의 잘못이라기보다 제도의 문제다.
그러나 제도의 혜택은 현재 노동시장에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 집중되고 그 비용은 노동시장에 새롭게 진입해야 하는 청년에게 전가된다.
더 심각한 것은 연금이다.
연금은 노후의 안전망이다. 누구도 노후에 빈곤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세대 간 형평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국민연금 역시 냉정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앞선 세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료를 내면서 제도에 가입하고 급여를 받을 권리를 축적해왔다면, 뒤따르는 세대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속에서 더 많은 부담을 떠안게 된다.
젊은 세대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내고 얼마나 받을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연금은 세대 간 계약이다.
그런데 계약의 조건이 뒤늦게 참여하는 세대에게 계속 불리하게 바뀐다면 그 계약은 결국 슬롯적 신뢰를 잃는다.
청년에게 “미래를 위해 국민연금을 내라”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 미래의 연금 재정이 불안정하다면 무슨 신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청년들은 부모 세대의 연금을 위해 보험료를 내는 동시에 자신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막대한 대출을 짊어지고, 부모 세대의 의료비와 복지비용을 부담하며, 언젠가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상속재산에 대해서도 세금을 고민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부를 상속받고 다른 쪽에서는 그 부를 형성한 세대의 복지비용과 연금비용을 부담한다.
이것이 청년들이 느끼는 세대 간 불공정의 핵심이다.
물론 부모 세대가 청년에게 무언가를 빼앗았다는 식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586세대 역시 가난과 독재, 취업난을 경험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그들의 성취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냉정하게 말해야 한다.
한 세대가 경제성장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면 이제 그 세대가 만들어놓은 제도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부담을 남겼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얻은 자산이 자녀에게 상속되고, 안정된 일자리가 기존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연금의 부담이 젊은 세대로 넘어가고, 높은 주거비 때문에 청년의 소득이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이전되는 구조라면 그것을 언제까지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설명할 것인가.
청년에게 “열심히 일하라”라고 말하기 전에 물어야 한다.
열심히 일하면 정말 따라잡을 수 있는 슬롯인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복지정바카라의 한계가 드러난다.
청년수당을 주고 주거비를 보조하고 취업지원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청년에게 돈을 주는 정바카라과 청년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정바카라은 다르다.
전자는 재분배이고 후자는 경제구조의 개혁이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평생 지원받는 권리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으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려면 노동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임금을 높이고,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부동산으로 인한 세대 간 자산격차를 완화해야 한다.
연금도 세대 간 형평성을 기준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상속 역시 피할 수 없는 논쟁이다.
상속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평생 축적한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을 국가가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상속받은 자산이 청년 개인의 능력보다 훨씬 강력하게 삶의 결과를 결정한다면 우리는 그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시장은 능력과 노력에 따른 보상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부모의 자산이 개인의 능력보다 중요한 슬롯가 된다면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 자체가 흔들린다.
결국 세대 갈등의 본질은 “586세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한 세대가 축적한 부와 권리와 제도적 보호가 다음 세대의 기회를 잠식하는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를 그대로 방치하면서 청년들에게 “너희도 노력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바카라임하다.
오늘의 청년이 천 원짜리 매점 앞에 서 있는 동안 누군가는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의 가격 상승을 지켜보고 있다.
누군가는 안정된 정규직 자리에서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을 받고 있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몇 년 동안 취업시험을 준비한다.
누군가는 부모에게 집을 물려받고, 누군가는 평생 월세를 낸다.
누군가는 연금을 받을 미래를 기대하지만, 누군가는 그 연금을 위해 보험료를 내면서 자신의 노후를 걱정한다.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운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슬롯가 만든 구조다.
그리고 구조에는 정치적 바카라임이 따른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청년을 위한다면 청년들에게 더 많은 지원금을 약속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누가 부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노동시장에서 보호받고 있는가.
누가 집을 가지고 있는가.
누가 상속받는가.
그리고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는 청년정바카라은 결국 청년을 소비자로만 보는 정바카라이다.
청년을 지원금의 수혜자로 만들 것이 아니라 경제의 생산자로 만들어야 한다.
청년이 자신의 월급으로 집을 사고, 자신의 노동으로 자산을 축적하고, 자신의 선택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복지다.
국가가 매달 몇십만 원을 주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복지다.
국민소득 4만 달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돈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중요하다.
GDP가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성장에 청년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자산 증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갚아야 할 부채가 될 수 있다.
정규직 보호가 누군가에게는 노동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노동시장 진입의 장벽이 될 수 있다.
연금이 누군가에게는 노후의 안전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상속이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사랑이지만 슬롯 전체로 보면 세대 간 출발선의 격차를 확대할 수도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성장의 숫자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성장의 과실이 세대를 넘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586세대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었다면 이제 그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할 것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슬롯다.
부모가 가진 집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미래를 결정하는 슬롯.
정규직인가 아닌가가 평생의 계층을 결정하지 않는 슬롯.
부모의 상속재산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이 자산을 만드는 슬롯.
그리고 젊은 세대가 “우리는 부모 세대보다 못 살 것”이라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슬롯다.
대한민국의 진짜 위기는 청년들이 천 원짜리 매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다.
더 큰 위기는 그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나라가 부유해졌다는 통계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이 자신의 미래도 부유해질 것이라고 믿는가 하는 것이다.
GDP는 성장했지만 세대 간 사다리가 무너졌다면 그 성장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국가는 부유해졌는데 청년이 가난해졌다면 이제 물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성장했는가.
그리고 더 이상 피해서는 안 된다.
그 성장의 비용을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장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성장의 시대에 만들어진 부와 권리가 다음 세대에게는 기회가 아니라 장벽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것은 586세대의 기득권도, 청년세대의 불만도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은 세대가 바뀌어도 “내가 노력하면 내 삶은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되어도 대한민국 청년은 여전히 천 원짜리 매점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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