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슬롯에 진출하기도 전에 지쳐버리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하고, 취업을 준비하다가 번아웃에 빠지고, 어렵게 첫 온라인 게임을 구해도 1년 반 남짓 일하다가 다시 온라인 게임을 떠난다. 이것을 단순히 청년의 눈높이가 높아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대학은 과연 청년을 슬롯로 내보내는 교육기관인가. 아니면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몇 년씩 늦추는 ‘취업 지연 산업’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은 결코 과격한 표현만은 아니다.
2026년 통계청의 청년층 부가조사를 보면 최종학교 졸업 후 취업 경험이 있는 청년의 비율은 84.8%로 전년보다 1.6%포인트 하락했다. 첫 일자리가 임금근로자인 경우 첫 취업까지 평균 11.2개월이 걸렸다. 첫 온라인 게임의 평균 근속기간도 1년 6.8개월에 불과했다. 더구나 최근 일자리와 전공의 관련성이 ‘매우 일치한다’고 응답한 청년은 27%에 그쳤다.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 청년들은 20대의 상당 부분을 교육과 취업 준비에 투자하지만, 그 교육이 실제 직업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교육기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시장 진입은 늦어진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교육받은 청년들이 있는 나라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25~34세 가운데 고등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71%로 OECD 최고 수준이다. OECD 평균은 48%다. 그런데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 청년의 고용률은 80%로 OECD 평균 87%보다 낮다. 고학력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 학력이 노동시장에서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교육의 성공인가, 실패인가.
적어도 노동시장이라는 관점에서는 심각한 경고음이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또 하나의 자격증처럼 되어버리면서 정작 대학에서 무엇을 배워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려났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친다. 그러나 기업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커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학이 그 간격을 메우기보다 오히려 연장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간다. 대학에서는 취업을 위해 복수전공과 자격증과 어학점수와 인턴을 준비한다. 취업에 자신이 없으면 휴학한다. 휴학한 뒤 취업시험을 준비한다. 졸업할 때가 되면 취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되면 다시 자격증과 시험과 인턴을 준비한다.
결국 대학 4년은 슬롯로 나가기 위한 준비기간이 되고, 졸업 뒤 또다시 1년 가까운 준비기간이 이어진다.
2026년 조사에서도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11.2개월이었다. 2025년 조사에서도 평균 11.3개월이었다. 사실상 대학 졸업 뒤 1년 가까이를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대기기간으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2025년 조사에서 졸업 후 1년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이 56만5천 명이었다는 사실이다. 3년 이상 미취업 상태인 청년도 23만 명에 달했다.
이쯤 되면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청년이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그 바카라임을 대부분 청년 개인에게 돌리는가.
청년이 취업을 못하면 스펙이 부족하다고 한다.
자격증을 더 따라고 한다.
어학점수를 올리라고 한다.
인턴을 하라고 한다.
직무교육을 받으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준비를 몇 년씩 반복해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면 이제는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한국 슬롯는 청년에게 ‘일을 하는 법’보다 ‘취업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자기소개서 쓰는 법, 면접 보는 법, 시험에 대비하는 법, 자격증 따는 법은 넘쳐난다.
그런데 정작 실제 온라인 게임에서 고객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프로젝트를 어떻게 수행하는지, 팀에서 어떻게 협업하는지, 실패했을 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상사와 동료 사이에서 어떻게 의사소통하는지, 자신의 노동을 어떻게 시장에서 상품화하는지에 대한 교육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것이야말로 ‘취업교육’의 역설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교육은 넘쳐나는데 실제 취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교육은 부족하다.
더구나 2026년 조사에서 재학 또는 휴학 중 온라인 게임체험을 한 청년은 41.1%로 오히려 전년보다 2.1%포인트 감소했다. 그중 학교 현장실습은 8.3%에 그쳤다.
학생이 실제 일터에 들어가 일을 배울 기회는 충분하지 않은데, 졸업하면 기업은 ‘경험 있는 신입’을 찾는다.
이것은 코미디가 아니라 구조적 모순이다.
기업은 신입을 원하면서 신입답지 않은 신입을 원한다.
청년에게는 경력이 없다고 하고, 경력을 만들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려면 경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중고신입’이다.
2026년 취업시장에서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까지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하면서 대졸 신입의 진입문이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졸 이상 ‘쉬었음’ 청년 역시 2023년 15만3천 명에서 2025년 17만9천 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생을 또다시 강의실에 앉혀 놓아야 하는가.
아니면 학생을 일터로 보내야 하는가.
답은 너무 명확하다.
이제 대학은 ‘학점 생산기관’에서 ‘슬롯 진입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학 4년 동안 최소한 1년은 실제 기업이나 기관에서 일하도록 만드는 교육과정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실제 고객을 만나고, 실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실제 평가를 받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교육이다.
강의실에서 기업 사례를 분석하는 것과 실제 기업에서 일해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자동차 운전을 바카라으로 배우는 것과 실제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이 다른 것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청년들에게 운전면허 필기시험만 몇 년 동안 공부시킨 뒤 도로에 내보내면서 왜 운전을 못하느냐고 묻고 있다.
이것이 한국 교육의 기묘한 현실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이 너무 많고, 대학 진학 자체가 지나치게 일반화됐다는 데에도 있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실패한 것처럼 취급하는 슬롯에서 청년은 자신의 적성과 직업을 탐색하기보다 일단 대학부터 간다.
그 결과 고등교육의 대중화는 이루어졌지만 고등교육의 희소성은 사라졌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특별한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서 청년들은 다시 대학원, 자격증, 인턴, 각종 시험으로 이동한다.
교육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학력이 높아질수록 좋은 일자리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시대는 끝났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산업화 시대 논리로 청년에게 대학을 권한다.
“일단 대학부터 가라.”
그리고 대학에 가서는 다시 말한다.
“이제 취업을 준비해라.”
결국 청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0대가 ‘다음 단계 준비’로 소비된다.
이것을 과연 교육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오히려 ‘취업 지연 산업’이라고 부르는 편이 현실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닌가.
물론 대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은 여전히 중요하다. 학문을 연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인간과 슬롯를 이해하는 교육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대학이 똑같은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연구중심대학이 필요한 것처럼 직업중심대학도 필요하다.
모든 학생에게 4년제 학문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 각자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진짜 교육이다.
어떤 학생에게는 철학과 문학과 물리학을 깊이 공부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다른 학생에게는 반도체 장비를 다루고, 인공지능 시스템을 운영하고, 전기설비를 관리하고, 자동차를 정비하고, 의료·돌봄 서비스를 배우는 것이 훨씬 적합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슬롯는 전자를 ‘교육’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기술’이라고 낮춰 부르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OECD가 지적하듯 한국은 높은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노동시장 사이의 불일치가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 시대가 오고 있다.
이 변화는 기존의 대학 교육 모델을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AI가 지식 검색과 문서 작성과 번역과 기본적인 분석 업무까지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양만으로 노동시장에서 경쟁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 기업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사람과 협력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기술을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능력은 강의실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제 일을 해봐야 한다.
실패해봐야 한다.
고객에게 혼나봐야 하고, 프로젝트가 망가져봐야 하며, 동료와 갈등도 겪어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청년들에게 이런 경험을 주지 않은 채 20대 후반까지 시험과 자격증과 학점과 스펙을 요구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묻는다.
“왜 요즘 청년들은 슬롯성이 부족한가.”
“왜 온라인 게임 적응을 못 하는가.”
“왜 조금만 힘들어도 그만두는가.”
그것은 청년들이 슬롯생활을 못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롯생활을 배우지 못하게 만든 교육 시스템에도 바카라임이 있다.
실제로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 최근 1년 동안 번아웃을 경험한 청년은 32.2%였고, 가장 큰 이유는 진로 불안 39.1%였다. 고립·은둔 청년 가운데 취업의 어려움을 가장 큰 이유로 꼽은 비율도 32.8%였다.
이것은 청년들에게 “조금만 더 노력하라”라고 말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방향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청년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슬롯를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은 더 이상 좋은 교육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대학은 청년을 슬롯에서 보호하는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슬롯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제 대학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바꿔야 한다.
논문 몇 편을 냈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졸업생들이 얼마나 빨리 노동시장에 진입했는지, 전공과 직업이 얼마나 연결되는지, 졸업생들이 첫 온라인 게임에서 얼마나 오래 성장했는지, 재학 중 얼마나 실제 직무 경험을 했는지를 봐야 한다.
정부 역시 대학에 학생 수를 유지하기 위한 재정지원만 해서는 안 된다.
학생을 실제 노동시장으로 연결하는 대학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그리고 학생이 없는 대학을 세금으로 영원히 유지하는 정바카라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
대학은 교육기관이지 청년 실업률을 통계에서 잠시 감춰주는 대기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불편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 한다.
대학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청년에게 반드시 이로운 것도 아니다.
대학에서 1년을 더 보내면 그 1년의 등록금만 드는 것이 아니다. 그 1년 동안 벌 수 있었던 소득도 포기해야 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청년에게 4년의 대학 교육을 제공하는 것과 청년이 4년 동안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 경험을 쌓는 것은 전혀 다른 선택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기회비용에 대한 논의가 너무 부족하다.
‘대학에 가는 것’은 교육 투자라고 생각하면서 ‘대학에 가지 않고 일을 시작하는 것’은 실패처럼 생각한다.
이제는 이 통념을 깨야 한다.
청년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은 학점도 자격증도 아니다.
시간이다.
20대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간을 몇 년씩 취업 준비와 시험과 스펙 쌓기에 소비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면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더라도 다시 평가해야 한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번아웃되는 이유는 어쩌면 너무 많은 경쟁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경쟁에 뛰어들기 전에 너무 오랫동안 준비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공부하라고 했다.
대학에 가라고 했다.
스펙을 쌓으라고 했다.
자격증을 따라고 했다.
인턴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취업하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일은 언제 하라는 것인가.
이제 교육의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을 더 공부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부터 실제로 일하게 할 것인가.”
“어떤 학위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직업능력을 갖게 할 것인가.”
“어떻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적성과 직업을 발견하게 할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한국 교육이 답해야 할 질문이다.
대학은 청년의 인생을 연장하는 장소가 아니라 시작하게 만드는 장소여야 한다.
취업을 늦추는 교육이 아니라 일을 시작하게 만드는 교육.
스펙을 쌓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능력을 갖게 하는 교육.
시험을 통과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아남게 하는 교육.
그것이 진짜 취업교육이다.
대한민국 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이 정말 ‘취업 지연 산업’으로 변질되어 있다면, 이제 그 산업을 더 많은 재정으로 연명시킬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청년이 졸업장을 받는 순간부터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면, 우리는 4년 동안 무엇을 가르친 것인가.
그리고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1년 가까이 취업을 기다려야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20대에서 무엇을 빼앗고 있는 것인가.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더 긴 교육이 아니다.
더 제대로 된 교육이다.
그리고 그 교육의 마지막 단계는 강의실이어서는 안 된다.
일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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