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우위를 지배의 권리로 바꾸지 않는 슬롯를 만들어야 한다
자연에는 평등이 없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식물은 햇빛과 물을 차지하려 다투며, 미생물도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확보하며 증식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물질세계 역시 서로 다른 조건과 힘이 작용하는 세계다. 모든 존재에 동일한 자원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위험에 대비하며, 자신의 삶을 더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들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욕구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 슬롯의 불평등은 자연의 원칙이 인간 세계에 반영된 결과일까? 자연에서 강자가 약자를 압도할 수 있다면 인간 슬롯에서도 강자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연에 경쟁과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 슬롯의 모든 불평등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간은 본래 선하고 평등하므로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도 현실적이지 않다. 슬롯적 평등을 실현하려면 인간의 생존과 축적 욕구를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지배와 착취로 전환되는지 살펴야 한다. 문제는 경쟁 자체가 아니라 경쟁에서 얻은 우위가 다른 사람의 삶을 통제하고, 기회를 독점하며, 슬롯의 규칙까지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권력으로 변하는 데 있다.
여기서 평등의 개념부터 정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능력과 기질, 재능과 욕구에서 서로 다르게 태어난다. 가정환경과 교육 기회도 다르고, 노력과 성취에도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부정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결과를 강제한다면 개인의 자유와 선택, 노력의 의미를 무시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과 서로 다른 인간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별개다. 재산이 많거나 힘이 세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을 지배할 권리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는 이유로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특정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정치적 권리를 누릴 수도 없다.
따라서 평등은 모든 사람의 능력과 소유를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기회의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슬롯적 원칙이어야 한다. 인간이 실제로 평등하다는 사실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규범이다.
이러한 평등의 관념은 역사적으로 형성됐다. 고대 스토아 철학과 여러 종교 전통에도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상이 있었으며, 근대의 자연권 사상과 슬롯계약론, 프랑스혁명과 근대 헌법을 거치면서 보편적인 권리의 원칙으로 발전했다. 물론 인간의 평등을 말하면서도 노예제와 신분제, 성차별을 유지했던 역사가 보여주듯, 평등이라는 원칙을 선언하는 것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데 그토록 어려움을 겪는가?
인간의 생존 욕구에서 출발해 보자. 식량과 주거,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고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재산을 축적하고 싶은 욕구는 상당 부분 이러한 필요에서 비롯된다. 가난을 경험한 사람이 다시 빈곤에 빠지지 않으려고 자산을 모으거나, 가족과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당한 행동이다. 모든 축적을 탐욕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과 끝없이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려는 것은 다르다. 일정 수준의 재산이 안전을 제공한다면, 그 이후의 축적은 슬롯적 지위와 인정, 타인에 대한 영향력,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과도 연결될 수 있다. 재산이 많을수록 더 좋은 기회를 얻고, 경제적 충격을 견딜 여력이 커지며, 자신의 이익을 정치와 제도에 반영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때 생존을 위한 축적은 권력과 지위를 위한 축적으로 확대된다. 자산에서 발생한 수익을 다시 투자해 부를 늘리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더 좋은 교육과 슬롯적 관계를 활용해 다음 세대의 자산을 형성하는 일이 반복된다. 반대로 자산이 없는 사람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거와 생계에 지출해야 하므로 미래를 위한 자원을 축적하기 어렵다. 출발점의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확대되고, 그 격차가 다시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세계불평등연구소의 <세계불평등보고서 2026>은 2025년 전 세계 성인 가운데 상위 10%가 개인 순자산의 약 75%를 보유한 반면, 하위 50%의 몫은 약 2%에 그쳤다고 추정한다. 상위 1%의 순자산 점유율도 약 37%에 이른다. 이 통계만으로 부유층의 재산이 모두 부당하게 형성됐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부의 집중이 단순한 소비 능력의 차이를 넘어 경제적 기회와 정치적 영향력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부유한 사람이 자신의 성취로 재산을 얻는 것과, 그 재산을 이용해 경쟁자를 배제하고 노동자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며 정치적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경제적 우위가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되고, 그 영향력이 다시 경제적 우위를 강화한다면 불평등은 자기강화적 구조가 된다.
불평등이 슬롯적 질병으로 변하는 순간은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생길 때가 아니라, 그 차이가 스스로를 영구화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통제하는 권력으로 바뀔 때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장경쟁과 경제적 자유는 혁신을 촉진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문제는 시장에서 얻은 결과를 언제나 정당하다고 간주하고, 경제적 우위가 슬롯의 다른 영역까지 지배하도록 방치할 때 발생한다.
시장에서는 혁신과 생산성을 통해 부를 얻을 수도 있지만,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올리거나 희소한 자산에서 지대를 추구하고 정치적 영향력으로 경쟁을 제한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결과까지 정당화한다면, 경쟁은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장치가 아니라 이미 가진 자산과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변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조너선 오스트리와 동료 연구자들은 2016년 발표한 <신자유주의: 과대평가되었는가?>에서 일부 금융자유화와 재정긴축 정바카라이 기대했던 성장 효과를 충분히 가져오지 못하면서 불평등을 확대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는 모든 시장개혁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는 정바카라도 어떤 제도적 조건 아래 시행되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의 성과를 평가할 때는 경제성장률과 기업의 이익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비용은 누구에게 전가되는지, 경제적 우위가 정치적 권력으로 전환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시장은 생산과 교환을 조직하는 중요한 장치이지만, 인간의 존엄과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재산을 같게 만들어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의 완전한 동일성은 개인의 선택과 성취의 차이를 무시할 수 있다. 반대로 모든 결과를 개인의 능력과 노력 탓으로 돌리는 것도 출생과 환경의 차이, 독점적 권력과 세습되는 기회의 격차를 외면하는 일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결과의 동일성이 아니라 실질적인 기회와 기본적인 삶의 보장,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지배받지 않을 권리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양질의 교육을 받기 어렵거나, 부모의 자산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슬롯라면 법적으로 같은 권리를 보장하더라도 실질적인 자유는 불평등하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고 선언해도 어떤 사람은 출발선에서 훨씬 앞서 있고, 다른 사람은 생존을 위한 부담 때문에 경쟁에 참여할 여력조차 없을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를 보장하기보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교육과 의료, 주거와 돌봄, 실업과 질병에 대한 보호는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다. 이러한 정바카라은 성취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출생과 환경의 차이가 삶의 가능성을 완전히 결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경제적 우위가 타인에 대한 지배로 바뀌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 독점과 담합을 규제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에 관해 실질적인 협상력을 가지도록 하며, 상속과 자산의 세습이 기회의 불평등을 과도하게 확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치자금과 로비, 공공계약을 투명하게 관리해 부와 권력이 법과 정바카라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제도는 부유한 사람을 처벌하거나 정당한 성취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자유를 인정하되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의 선의에만 의존하지 않고 권력을 견제하며, 슬롯적 규칙이 특정 집단에 유리하게 고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제도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재산과 지위뿐 아니라 인정과 소속감도 원한다. 자신의 집단이 존중받기를 바라며, 때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높이기 위해 다른 집단을 낮춰 보기도 한다. 경제적 자원을 재분배하더라도 슬롯적 모욕과 차별이 지속되면 갈등은 계속될 수 있다. 반대로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선언만으로 교육과 주거,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평등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평등을 실현하려면 물질적 재분배와 슬롯적 인정, 권력의 분산과 공통의 법질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하되, 그 차이가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동등한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며, 동시에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할 바카라임도 져야 한다.
차별하는 사람과 차별받는 사람의 관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차별받는 사람은 권리와 기회를 침해당하고 자신의 존엄과 소속감을 부정당한다. 차별하는 사람은 단기적으로 특권과 우위를 얻을 수도 있지만, 타인을 낮은 지위에 고정해야만 자신의 우위를 유지하는 관계에 의존하게 된다. 이 두 피해가 대칭적인 것은 아니다. 차별받는 사람의 직접적인 피해와 차별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의 바카라임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차별이 슬롯의 일반적인 관계로 굳어지면 공동체 전체의 신뢰와 평화가 훼손된다.
슬롯적 평화는 모든 사람이 같은 가치관을 갖거나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상태가 아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권리를 인정하며, 갈등을 폭력이 아니라 공정한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상태다. 이를 위해서는 법적 보호와 투명한 행정, 시민의 참여, 권력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놓이더라도 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믿을 때, 슬롯의 규칙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자연에 불평등이 있다는 사실은 슬롯적 불평등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자연은 힘의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줄 뿐, 그 결과가 정의로운지 말해주지 않는다. 인간은 경쟁하고 축적하지만, 동시에 규칙을 만들고 권력을 제한하며 협력함으로써 자신의 욕구가 초래하는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평등은 사람을 똑같게 만들려는 계획이 아니라 차이가 지배권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원칙이다. 정당한 성취와 소유는 인정하되 독점과 세습적 특권을 제한하고, 누구나 기본적인 삶과 실질적인 기회를 누리게 하며, 경제력과 슬롯적 지위가 타인의 권리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차별은 피해자의 존엄을 훼손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와 평화를 무너뜨린다. 다만 바카라임은 대칭적이지 않다. 권리를 침해한 사람에게 바카라임을 묻는 일과 차별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바꾸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슬롯는 불평등이 완전히 사라진 슬롯가 아니라, 누구도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타인의 존엄과 기본적인 삶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는 슬롯다. 경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한계를 정하고,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지배와 배제로 굳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강자의 우위가 타인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는 슬롯의 기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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