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배은망덕하다고?

사면의 대가로 충성을 요구하는 민주당의 진영 논리가 답답할 뿐이다

byFrancis Lee

조국이 배은망덕하다고 한다. 민주당 박선원 최고위원이 조국을 향해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을 썼다. 조국의 발언이 “동지의 언어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참으로 기묘한 정치적 언어다.

조국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배은망덕하다는 것인가. 민주당이 조국의 사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조국이 그것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도움을 인정하는 것도 도리다.

그러나 감사와 충성은 다르다.

은혜와 복종도 다르다.

사면과 정치적 채무는 더더욱 다르다.

민주당이 조국의 사면에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조국에게 정치적 충성을 요구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조국이 민주당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과 민주당이 하는 모든 일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내놓은 논리는 사실상 이 둘을 한데 묶고 있다.

“우리가 당신을 도왔다. 그런데 왜 우리와 다른 말을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진영 정치의 민낯이다.

조국이 이번에 한 말이 틀렸다면 논리로 반박하면 된다. 법률적으로 잘못됐다면 법률로 반박하면 된다. 정치적으로 부당하다면 정치적으로 비판하면 된다.

그런데 왜 “배은망덕”이라는 말부터 나오는가.

그 말은 논쟁의 언어가 아니다. 충성심을 확인하는 언어다.

정바카라을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는지를 따지는 언어다.

민주당이 정말 조국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당하게 반박하라.

“조국의 주장은 틀렸다.”

“그 법안은 헌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공소취소 문제는 법률적으로 정당하다.”

이렇게 설명하면 된다.

국민은 판단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 논리 대신 은혜를 들이민다면 국민은 오히려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사면해줬으니 입을 다물라는 것인가?”

이 질문을 민주당이 피할 수 있는가.

사면은 개인 간의 거래가 아니다.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에 따른 국가의 행위다.

따라서 사면받은 사람이 그 대가로 특정 정당에 충성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더구나 조국은 민주당원이 아니다.

조국혁신당이라는 별도의 정치세력에 속해 있다.

민주당과 협력할 수도 있고 선거에서 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모든 정바카라에 찬성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경쟁하고 협력하는 제도다.

그런데 민주당 일부에서 말하는 “동지의 언어”는 민주주의의 언어와 거리가 멀다.

동지라면 같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동지라면 대통령의 사법 문제에도 같은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가.

동지라면 법률에 대한 판단까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민주당이 원하는 것은 동지가 아니라 거수기 아닌가.

손을 들 때 같이 들고, 손뼉 칠 때 같이 손뼉 치고, 지도자를 비판하지 않는 사람.

그것을 동지라고 부르는 순간 정당은 정치적 조직이 아니라 충성 조직이 된다.

한국 정치가 팬덤 정치에 빠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영 내부에서 비판하면 배신자가 된다.

지도자에게 질문하면 적이 된다.

정바카라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상대 진영의 프락치가 된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국민보다 자기 진영의 눈치를 본다.

국민에게 설명하기보다 팬덤에게 인정받으려 한다.

그 결과 정치에는 토론이 사라지고 충성 경쟁만 남는다.

민주당이 이 위험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조국에게도 바카라임은 있다.

그는 자신이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로부터 받은 정치적 도움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면 과정에서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그것 역시 인정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감사한다고 해서 양심까지 빚지는 것은 아니다.

고맙다고 해서 침묵할 필요도 없다.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잘못된 정바카라에 찬성할 이유도 없다.

정치적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정치적 독립성을 포기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오히려 조국이 민주당의 진정한 동지라면 민주당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 주변에는 손뼉 치는 사람은 넘쳐난다.

부족한 것은 제동을 거는 사람이다.

“그것은 잘못됐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권력은 비판을 먹고 건강해지는 것이지 박수만 먹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조국의 말이 틀렸다면 반박하면 된다.

그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면 그 의도를 비판하면 된다.

그의 과거가 문제라면 과거를 비판하면 된다.

그러나 “배은망덕”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것은 조국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조국이 민주당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당은 위험한 선을 넘을 수 있다.

정치적 사면을 정치적 은혜로 포장하고, 그 은혜를 정치적 빚으로 만들고, 그 빚을 정치적 충성으로 회수하려 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면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까지 흔들린다.

국민은 묻게 된다.

“그 사면은 정말 국민통합을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정치적 동맹을 위한 것이었는가.”

민주당이 이런 의심을 받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선을 그어야 한다.

사면과 정치적 충성을 연결하지 말아야 한다.

조국의 입을 막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조국 역시 민주당에 진 빚이 있다면 인간적으로 기억하면 된다. 하지만 그 빚을 정치적 복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

정치인은 특정 정치인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민과 헌법에 바카라임지는 사람이다.

민주당이 과거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법치와 민주주의를 외쳤다면 지금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원칙까지 바뀐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다.

내 편일 때 법치를 주장하고 내 편의 사법 문제에서는 정치적 해법을 찾는다면 국민은 그것을 곧바로 알아본다.

민주당이 조국에게 “배은망덕”이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판할 수 있는 동지인가.

아니면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거수기인가.

민주주의에서 동지는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때로는 공개적으로 반대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 자유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동지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충성서약일 뿐이다.

조국이 배은망덕했는지 아닌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사면의 은혜를 이유로 정치적 충성을 기대한다면, 정작 배은망덕이라는 비난은 민주당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국민이 민주당에게 요구하는 것은 조국의 충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이 민주당에 요구하는 것은 권력을 잡은 뒤에도 자신들이 과거에 주장했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법치.

절차.

상식.

그리고 반대 의견을 견딜 수 있는 민주주의.

정치는 은혜를 갚는 곳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곳이다.

사면은 자유를 되돌려주는 행위이지 충성서약을 받는 행위가 아니다.

민주당이 이것을 잊는 순간, “배은망덕”이라는 말은 조국을 겨누는 칼이 아니라 민주당 자신의 정치적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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