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팬덤 문화, 병폐가 심각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된 1년 동안 무려 17억1470만137원의 영치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숫자만 보면 놀랍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횟수다.
2025년 7월 10일부터 2026년 7월 10일까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들어온 영치금은 모두 3만9829회였다. 하루 평균으로 계산하면 약 109회다. 1년 동안 거의 매일 100번이 넘는 송금이 이루어진 셈이다. 총액을 입금 횟수로 나누면 한 번에 평균 약 4만3052원이다.
17억 원이라는 거대한 돈이 한두 명의 거액 후원자로부터 들어온 것이 아니라 수만 번의 소액 송금으로 쌓였다는 데 이 사건의 본질이 있다.
더구나 이 돈은 일반적인 수감자의 영치금과는 비교 자체가 어렵다. 같은 기간 서울구치소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영치금을 받은 수감자는 1억3135만3317원으로, 윤 전 대통령의 약 13분의 1에 불과했다. 입금 횟수 역시 윤 전 대통령이 약 10배 많았다.
도대체 누가 이 돈을 보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보냈는가.
영치금은 원래 수감자가 구치소 안에서 생활필수품이나 간식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는 돈이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에게 1년 동안 17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왔다. 교정시설의 영치금 보유 한도는 400만 원이기 때문에 이를 초과하는 돈은 석방 때 지급되거나 신청을 통해 개인 계좌로 이체할 수 있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511회에 걸쳐 17억552만3330원을 인출했다. 전체 수령액의 99.46%다.
계산해 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511회의 인출로 빠져나간 돈은 1회 평균 약 334만 원이다. 반면 입금은 3만9829회다. 즉 수만 명에 가까운 지지자들의 돈이 구치소의 영치금 계좌로 들어오고, 그것이 반복적으로 인출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3만9829회가 모두 서로 다른 3만9829명이 보낸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같은 사람이 여러 차례 송금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석열에게 3만9829명이 돈을 보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윤석열이라는 정치적 상징을 향해 엄청난 횟수의 금전적 지지가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17억 원 자체보다 3만9829회라는 숫자가 한국 정치의 병리 현상을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
정치가 정바카라의 경쟁이 아니라 정체성의 경쟁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공적 대리인이다. 따라서 국민은 정치인을 지지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지지했던 정치인이 잘못하면 가장 먼저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팬덤 정치에서는 이것이 거꾸로 된다.
정치인이 공격받으면 지지자가 결집한다.
정치인이 법적 바카라임을 지면 지지자는 ‘탄압’을 이야기한다.
정치인이 실패하면 지지자는 오히려 더 강하게 지도자를 감싼다.
그리고 지도자를 비판하는 사람은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라 배신자가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적 신앙에 가까워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년 동안 17억 원이 모였다는 사실은 바로 이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이 돈이 하루 평균 약 109회의 입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후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평균 입금액이 약 4만3052원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거액 자산가 몇 명이 정치 지도자를 지원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소액을 반복적으로 보내는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것은 팬덤 정치의 전형적인 작동 방식이다.
팬덤은 거대한 자본이 없어도 움직인다.
한 사람이 1만 원을 보내고, 또 다른 사람이 3만 원을 보내고, 또 다른 사람이 5만 원을 보낸다. 각각의 금액은 크지 않다. 그러나 수만 번 반복되면 17억 원이 된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감의 문제다.
‘나는 당신 편이다.’
‘당신이 감옥에 있어도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을 공격하는 것은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와 지지자의 관계가 이런 단계로 발전하면 민주주의는 매우 위험해진다.
왜냐하면 정치적 판단이 감정적 충성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돈의 규모가 당시 대통령 연봉의 6.3배에 달한다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의 연봉이 2억7177만 원인데, 수감된 전직 대통령에게 1년 동안 그보다 6배 이상 많은 돈이 모였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불법적인 돈’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영치금 자체가 합법적인 제도이고, 보도된 자료만으로 입금자 개개인의 동기나 자금 출처를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합법이라는 것과 정치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것은 ‘17억 원이 불법인가’가 아니다.
‘왜 한 정치 지도자에게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금전적 충성이 집중되는가’다.
더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도 같은 기간 서울남부구치소에서 1억7123만878원을 받았다. 입금 횟수는 8119회였고, 92회에 걸쳐 1억6180만7075원, 전체의 약 94.5%를 인출했다.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모인 돈을 합치면 약 18억8600만 원에 이른다.
이쯤 되면 이것은 개인의 영치금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윤석열 지지층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정치 전체가 이미 팬덤 정치에 깊숙이 빠져 있다.
민주당에도 팬덤이 있고 국민의힘에도 팬덤이 있다. 정치인을 중심으로 지지층이 결집하고,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지지자들의 행동을 결정한다. 정치인은 국민 전체를 설득하기보다 자신의 핵심 지지층을 자극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유리해진다.
그 결과 정치의 수준은 낮아진다.
중도층을 설득할 필요가 없어진다.
반대편을 이해할 필요도 없어진다.
정바카라의 실패를 인정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적을 강하게 공격할수록 지지층이 결집한다.
정치 지도자가 사과하면 약해지고, 싸우면 강해진다.
이것이 팬덤 정치의 함정이다.
그리고 결국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팬덤의 우두머리가 된다.
윤석열에게 17억 원을 보낸 사람들이 모두 맹목적인 팬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들 가운데는 정치적 신념 때문에 돈을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후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슬롯에서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충성을 구분해야 한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어떤 정치인도 위험해진다.
윤석열에게 충성하는 것과 대한민국 헌법에 충성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이재명에게 충성하는 것과 민주주의에 충성하는 것도 같은 일이 아니다.
한동훈에게 충성하는 것과 보수의 가치에 충성하는 것도 같은 일이 아니다.
정치인은 언제나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정치인을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치인을 믿음의 대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당을 지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당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정바카라을 지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바카라을 추진한 정치인의 모든 행동까지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17억 원이라는 숫자는 그래서 무섭다.
그 돈이 불법이어서가 아니다.
그 돈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적 감정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3만9829회의 송금은 한국 정치가 얼마나 강력한 팬덤 구조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숫자다.
정치가 합리적 판단의 영역에서 감정적 충성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선거는 치러지지만 시민은 사라진다.
정당은 존재하지만 토론은 사라진다.
정치인은 존재하지만 바카라임은 사라진다.
그리고 결국 남는 것은 ‘우리 편’과 ‘적’뿐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윤석열에게 누가 17억 원을 보냈는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더 무서운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한국 슬롯에는 한 정치인을 위해 수만 번 돈을 보내고, 정치 지도자의 실패와 몰락까지 자신의 실패와 몰락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윤석열 지지자들에게만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민주당 지지자에게도, 국민의힘 지지자에게도, 모든 정치 팬덤에게 똑같이 던져야 한다.
정치인은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가 고용한 공적 대리인일 뿐이다.
그가 대통령이든 전직 대통령이든, 감옥에 있든 권력의 정점에 있든 마찬가지다.
17억 원보다 더 비싼 대가를 한국 민주주의가 치르지 않으려면 이제는 정치인에 대한 충성보다 정치에 대한 비판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팬덤이 민주주의를 대신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죽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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