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연예인 놀이에 빠진 한국 정치

유튜브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국회, 어디로 갈 것인가

byFrancis Lee

한국 정치가 어느 순간부터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클릭을 얻는 정치로 변하고 있다. 국회의원실 앞에 유튜브의 ‘실버 버튼’이 걸리고, 국회 회의장에서는 의정활동보다 유튜브에 올릴 장면을 만들기 위한 촬영이 벌어진다. 정치인이 자신의 의정활동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유튜브가 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정치의 목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보도된 국회의원들의 ‘유튜브 정치’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당수 정치인이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며 사실상 개인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어느 정당이 유튜브를 더 잘하느냐”가 아니다.

“한국 정치가 유튜브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정치는 원래 느린 것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타협하고, 때로는 자신의 지지자에게도 인기가 없는 결정을 설명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유튜브는 정반대의 논리로 움직인다.

짧아야 한다.

강렬해야 한다.

자극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클릭을 받아야 한다.

정바카라의 복잡성은 조회수를 올려주지 않는다. 세금제도의 구조를 30분 동안 설명하는 영상보다 상대방 의원이 화를 내는 30초짜리 영상이 훨씬 쉽게 확산된다. 경제정바카라의 장단점을 설명하는 영상보다 “누가 국민을 배신했는가”를 외치는 영상이 훨씬 강력하다.

이것이 바로 정치와 유튜브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근본적인 충돌이다.

정치는 국민의 이성을 설득해야 하지만, 알고리즘은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선호한다.

정치인이 알고리즘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정치의 언어 자체가 변한다.

“이 정바카라이 왜 필요한가”보다 “저 사람이 얼마나 나쁜가”가 중요해진다.

“어떻게 타협할 것인가”보다 “누가 이겼는가”가 중요해진다.

“국민 전체에게 무엇이 이익인가”보다 “우리 지지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 정치인들의 특정 유튜브 방송 출연이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김어준의 방송이나 최욱이 진행하는 유튜브·시사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출연하는 모습이다.

물론 정치인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언론과 미디어에 출연해 자신의 정바카라을 설명하고 국민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정치인의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문제는 출연의 빈도와 방식, 그리고 그 방송이 정치인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가에 있다.

특정 정치 성향을 공유하는 방송에 반복적으로 출연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지지층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출연 장면이 다시 짧은 클립과 쇼츠로 만들어져 SNS와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단순한 언론 출연과는 성격이 달라진다.

그 순간 방송은 정치인에게 일종의 ‘정치적 홈구장’이 된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진행자와 패널이 있고, 자신의 지지자들이 시청하며, 자신의 발언을 반박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공간이다.

정치인에게 이보다 편안한 정치 무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이 가장 자주 만나야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정바카라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이다.

그런데 정치인이 자신의 지지층이 모여 있는 방송에만 반복적으로 출연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치인은 점점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된다.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 국민 전체의 여론인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진영 안에서만 형성된 여론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팬덤 정치의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팬덤은 정치인을 끊임없이 강화한다.

“당신이 옳다.”

“당신이 잘하고 있다.”

“문제는 당신이 아니라 상대방이다.”

이러한 메시지가 반복되면 정치인은 자신의 판단을 성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정치인이 언론에 출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이 ‘자신을 검증해 줄 수 있는 언론’을 피하고 ‘자신을 지지해 줄 가능성이 높은 플랫폼’만 찾아다니는 것이 문제다.

김어준의 방송이든 최욱의 방송이든 마찬가지다.

그 방송들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느냐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

진보 정치인에게 김어준의 방송이 편안한 공간이 되고, 보수 정치인에게는 보수 성향의 유튜브가 편안한 공간이 되는 현상 자체가 문제다.

정치인이 자신에게 편안한 미디어 생태계 속에서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상호 검증’이 무너진다.

정치인은 점점 국민 전체가 아니라 자신의 미디어 공동체를 향해 말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유튜브와 팬덤 정치가 결합한다.

정치인은 방송에 출연한다.

방송에서 강한 발언을 한다.

그 장면이 쇼츠로 만들어진다.

지지자들이 퍼 나른다.

조회수가 올라간다.

정치인은 다시 그 방송에 출연한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정치적 순환고리가 만들어진다.

정바카라보다 캐릭터가 강해지고, 의정활동보다 방송 출연 장면이 유명해진다.

결국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정치적 능력도 변한다.

법률을 제대로 읽는 능력보다 방송에서 말을 잘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정바카라을 설계하는 능력보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한마디가 더 큰 정치적 자산이 된다.

이쯤 되면 정치인은 국회의원이면서 동시에 방송 연예인이 된다.

국회에서 무엇을 했는지보다 어느 방송에 나왔는지가 더 중요한 경력이 된다.

이것은 정치의 연예화다.

그리고 정치의 연예화는 민주주의의 질을 떨어뜨린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치인이 방송에서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얼마나 통쾌한 말을 했는지, 얼마나 상대방을 압도했는지가 정치적 평가의 기준이 된다면 정바카라은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 현상이 여야 모두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진보는 진보 성향의 방송으로, 보수는 보수 성향의 방송으로 몰려간다.

서로 상대방의 유튜브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한다.

결국 한국 정치 전체가 서로 다른 채널에 갇힌 채 같은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단순한 미디어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다.

민주주의는 자기편끼리 박수를 치는 제도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반박하고, 수정하고, 때로는 타협하는 제도다.

그러나 정치인이 자신의 지지층이 모인 방송에만 출연하면 상대방과 대화할 필요가 없어진다.

오히려 상대방을 자극할수록 조회수가 올라간다.

상대방 지지자가 분노할수록 영상은 더 많이 퍼진다.

정치적 갈등이 콘텐츠가 되고, 갈등 자체가 수익이 된다.

이것이 유튜브 정치가 가진 가장 위험한 구조다.

국회가 유튜브 콘텐츠의 촬영장이 되고 정치인이 유튜버가 되는 순간 정치의 목적은 조금씩 변한다.

“이 행동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가?”

가 아니라

“이 장면이 조회수가 나오는가?”

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정치인이 특정 방송의 단골 출연자가 되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사라진다.

“나를 비판할 사람과도 대화하고 있는가?”

정치인은 점점 자신의 세계 안에서만 말한다.

자신의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말을 하고, 자신의 지지자들이 싫어하는 사람을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은 국민 전체의 대표라는 사실을 잊는다.

국민은 정치인의 팬이 아니다.

국민은 주권자다.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행동을 옹호하지만, 시민은 자신이 뽑은 정치인에게 바카라임을 요구한다.

따라서 정치인이 특정 방송에 출연하는 것 자체를 금지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더 많이 출연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층이 좋아하는 방송에만 출연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방송에도 출연해야 한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도 나가야 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들의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의 의무다.

정치인은 박수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검증받기 위해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앞으로 정치인의 미디어 활동을 평가하는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몇 명이 구독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몇 번 방송에 출연했는가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을 얼마나 설득했는가가 중요하다.

복잡한 정바카라을 얼마나 쉽게 설명했는가가 중요하다.

자신의 지지층에게 불편한 사실도 얼마나 솔직하게 말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정치적 오류를 인정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정치는 인기 경쟁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시청률 경쟁이 아니다.

국회는 방송국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유튜버가 아니다.

유튜브는 훌륭한 정치적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도구가 목적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정치인이 유튜브를 이용해야지 유튜브가 정치인을 이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방송에 출연해야지 방송 출연이 정치인의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팬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팬덤이 국회의원을 지배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 정치가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유튜브 자체가 아니다.

유튜브가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는 순간이다.

정치가 콘텐츠가 되고, 국회가 스튜디오가 되고, 국회의원이 크리에이터가 되고, 국민이 시청자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아주 조용히 다른 것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국민은 정치인의 구독자가 아니다.

국민은 정치인의 팬도 아니다.

국민은 주권자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그 주권자를 즐겁게 해주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주권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공복이다.

이것을 잊는 순간 대한민국 국회는 민주주의의 전당이 아니라 거대한 유튜브 스튜디오가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유튜브가 국회를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국회가 유튜브를 민주주의의 도구로 통제할 것인가.

그 선택의 시간이 이미 시작됐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Francis Le···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1,42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0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두개의 꼬리를 가진 강아지가 일으킨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