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체제 복원력(State Resilience)이 핵심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인 전쟁은 현대 국가의 생존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한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최첨단 정밀타격 능력을 가진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심 군사시설과 지휘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최고지도자와 고위 군사 지휘부까지 제거됐다. 그럼에도 이란의 국가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물론 이란이 전쟁에서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군사시설과 핵 관련 시설이 파괴됐고 경제는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국민이 감당해야 할 전쟁의 비용도 막대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따로 있다.
폭격으로 국가의 일부를 파괴할 수는 있어도 국가체제 전체를 반드시 붕괴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을 국가체제 복원력(State Resili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싶다.
국가체제 복원력이란 전쟁이나 외부의 군사적 공격, 경제제재, 자연재해, 정치적 혼란과 같은 엄청난 충격을 받더라도 국가의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손상된 기능을 복구하며, 국가공동체의 질서를 계속 유지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력과 다르다.
군사력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막는 능력이다. 그러나 국가체제 복원력은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적의 공격으로 대통령이 지휘할 수 없게 되었을 때도 정부가 작동하는가.
군 지휘부의 일부가 파괴되었을 때도 군사 지휘체계가 유지되는가.
전력망과 통신망이 공격받았을 때 국가 전체가 마비되지 않는가.
금융시스템이 흔들려도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가.
물류가 차단되어도 국민에게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할 수 있는가.
사이버공격으로 행정망이 마비되어도 국가가 다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이 위기의 순간에도 정부를 신뢰하고 국가를 지킬 의지가 있는가.
이 모든 것이 국가체제 복원력이다.
이번 이란전쟁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지도부와 핵심 군사시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이란이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국가는 지도자 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군대가 있고, 관료제가 있으며, 행정기관이 있고, 정보기관이 있으며, 지방정부와 금융기관, 에너지와 물류 시스템이 있다. 정치지도자가 사라져도 국가를 구성하는 수많은 조직이 계속 작동한다면 국가체제는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이 국가체제 복원력의 핵심이다.
국가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한다면 지도자는 그 생명체의 중요한 기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국가 전체는 수많은 조직과 사람, 제도와 규칙이 서로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다.
따라서 현대전에서 가장 위험한 착각 가운데 하나는 지도자를 제거하면 국가도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과 국가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란은 바로 이 차이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을 이란의 승리라고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란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경제적 압박도 심각하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국민의 생활고가 커지고 정치체제의 정당성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란의 국가체제가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이란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전쟁이 보여준 것은 현대전의 승패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시설을 얼마나 많이 파괴했느냐만이 아니다.
상대방이 받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얼마나 오래 기능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점에서 이번 이란전쟁은 대한민국에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도권과 국가 핵심시설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의 공격을 막는 데 집중해 왔다.
강력한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군사력을 강화하고, 미사일 방어능력을 높이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북한의 공격을 막지 못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전쟁을 예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국가체제 복원력(State Resilience)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공격을 받았을 때 대통령이나 일부 정부기관이 공격을 받더라도 국가 지휘체계가 계속 작동해야 한다. 수도권의 일부 지역이 마비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행정기능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전력망이 파괴되어도 국가 전체가 정전 상태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통신망이 끊겨도 대체 통신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금융망과 물류망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은행의 기능이 모두 멈추고, 국민에게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할 수 없게 된다면 군사적으로 아무리 강한 국가라도 슬롯적으로는 빠르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체제 복원력은 국방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방과 행정, 경제와 금융, 에너지와 통신, 의료와 물류, 사이버안보와 지방정부가 모두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히 중요하다.
권위주의 국가는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의 자발적인 협력 없이는 위기를 견디기 어렵다.
전쟁이 발생했을 때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정부의 발표를 의심하고,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확산되고, 금융시장에서 대규모 불안이 발생하고, 사재기가 시작된다면 적의 미사일보다 슬롯적 혼란이 더 큰 피해를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국가체제 복원력은 단순히 무기를 많이 보유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강력한 군사력과 함께 안정적인 행정체계가 필요하고, 분산된 전력망과 통신망이 필요하며, 금융과 물류 시스템의 연속성이 필요하다. 사이버공격에 대한 방어능력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슬롯적 신뢰다.
국민이 국가를 믿고, 국가가 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정치권이 국가적 위기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을 때 비로소 국가체제의 복원력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이란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핵심이다.
우리가 이란의 정치체제를 배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란이 엄청난 외부 충격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국가체제 복원력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란보다 훨씬 개방된 민주주의 국가이고 세계경제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복원력은 권위주의적 통제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법치, 투명한 행정, 강력한 국방, 안정적인 경제, 효율적인 재난대응, 국민의 신뢰가 서로 결합된 형태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국가체제 복원력이 만들어진다.
특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이것이 더욱 중요하다.
북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억제력은 강력한 무기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공격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북한에 주는 것이야말로 강력한 억제력이다.
정부가 마비되지 않고, 군이 붕괴하지 않고, 금융시장이 작동하고, 전력과 통신이 복구되고, 물류가 유지되고, 국민이 정부를 신뢰한다면 북한이 대한민국을 공격해서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은 크게 줄어든다.
이것이 진정한 억제력이다.
결국 이번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대한민국은 얼마나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가.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얼마나 강한 국가체제 복원력(State Resilience)을 가지고 있는가.
전쟁은 언제나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지도부가 공격받을 수도 있고, 통신망이 끊길 수도 있으며, 금융망과 전력망이 동시에 공격받을 수도 있다. 북한의 미사일과 드론, 사이버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영웅 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한 사람이 사라져도 작동하는 국가, 어떤 한 기관이 파괴되어도 기능을 이어가는 국가, 어떤 지역이 마비되어도 다른 지역이 국가 기능을 떠받치는 국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가체제 복원력이다.
이번 이란전쟁은 우리에게 하나의 역설을 보여주었다.
강대국의 폭격도 국가체제가 견고하면 국가 전체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무기를 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강한 군대를 만드는 동시에 더 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기관을 분산하고, 핵심 인프라를 다중화하고, 전력과 통신망의 복원력을 높이고, 금융과 물류 시스템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사이버공격에 대비하며, 지방정부까지 포함한 국가 전체의 위기대응 능력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이 국가를 믿을 수 있는 슬롯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안보의 최종 목표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국가가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힘이 바로 국가체제 복원력(State Resilience)이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우리는 중동에서 벌어진 먼 나라의 전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반도의 미래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다.
북한의 공격을 막는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공격을 견뎌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대한민국으로.
이제 대한민국의 안보전략도 바로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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