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이 유시민에게 압도된 이유는?

유튜버 논객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byFrancis Lee

최근 여론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유시민이 3년 연속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유시민은 30.6%에서 25%로 지목률이 크게 떨어졌고, 김어준 역시 16%에서 14.8%로 하락했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순위가 아니라 그 영향력의 성격과 방향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시민은 여전히 김어준을 상당한 격차로 앞선다. 그런데 이 차이는 단순히 개인의 인기 차이라고 보기 어렵다. 두 사람이 대표하는 정치적 영향력의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어준은 유튜브와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는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사건을 해석하고, 의혹을 제기하고, 지지자들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하는 정치적 스피커였다.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거대한 청취자와 시청자 집단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 김어준의 한계가 있다.

김어준의 영향력은 강력하지만 상당 부분 팬덤의 결속력에 의존한다. 그의 방송을 매일 듣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한다. 다시 말해 김어준은 사람을 설득하는 동시에 이미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데 특화된 인물이다.

유시민은 다르다.

유시민 역시 명확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영향력은 특정한 정치적 진영의 결속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작가이고, 정치인이었고, 지식인이었으며, 오랫동안 한국 슬롯의 정치와 역사와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해온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는 정치적 사건을 단순히 '우리 편이냐, 저쪽 편이냐'의 문제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사건을 하나의 슬롯적 맥락과 역사적 의미 속에 놓고 해석하려 한다.

바로 이 차이가 중요하다.

한국인은 정치인에게서 정치를 배우기보다 정치를 해석해 주는 사람에게서 정치의 의미를 배운다.

정치인은 이해관계 속에 있다.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해야 하고,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이겨야 하며, 정당은 지지율을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인의 말에는 언제나 정치적 계산이 개입된다.

반면 정치적 논객은 정치를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위치에 있을 수 있다. 물론 논객 역시 자신의 이념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국민에게는 정치 현실을 해석해 주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에서 논객의 영향력이 커진 이유다.

문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정치의 의미를 해석해 주는 사람이 지나치게 강력해지면 정치가 다시 팬덤으로 변질될 수 있다.

김어준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팬덤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적 판단이 정바카라이나 가치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누구의 말을 믿느냐'의 문제로 바뀐다는 것이다.

유시민이 말하면 믿고, 김어준이 말하면 믿고, 반대편의 누군가가 말하면 믿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정치적 토론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진영의 해석을 확인한다. 정치적 판단은 숙고가 아니라 소속감의 확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팬덤 정치는 단순히 정치인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치인과 정치 논객과 미디어 플랫폼이 함께 만들어낸 하나의 생태계다.

유튜브는 이 생태계를 폭발적으로 확대했다.

전통적인 언론에서는 기자와 편집국이라는 중간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는 정치인이든 논객이든 누구든 자신의 채널을 만들 수 있고, 매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엄청난 발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정치의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숙고보다 자극을 좋아한다. 차분한 분석보다 분노와 의혹과 충격적인 주장이 더 많은 클릭을 얻는다. 복잡한 현실보다 '누가 옳고 누가 나쁜가'를 단순하게 설명하는 콘텐츠가 훨씬 쉽게 확산된다.

결국 정치가 콘텐츠 산업으로 변한다.

정치적 논객은 논객이면서 동시에 콘텐츠 생산자가 되고, 지지자는 시민이면서 동시에 구독자가 된다. 정치적 토론은 구독자 수와 조회 수와 슈퍼챗의 숫자로 측정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최근 이야기했던 하이퍼 정치의 한 모습이다.

정치는 삶의 한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영역을 점령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치 뉴스가 있고, 유튜브를 켜면 정치 방송이 나오고, SNS에는 정치적 논쟁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정치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역설적인 일이 벌어진다.

정치가 사람들의 삶을 점점 더 많이 차지할수록 사람들은 정치에 점점 더 피로해진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슬롯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피로감의 본질이다.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치에 노출되어 있다.

문제는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정당의 당원으로서 정바카라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영상을 보고, 댓글을 달고, 상대 진영을 공격한다. 국회의원의 법안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한마디를 놓고 진영끼리 싸운다.

정치는 과잉 소비되는데 정치적 숙의는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정치로부터 도피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정치로부터의 도피'는 투표하지 않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정치 뉴스를 끄고, 정치 유튜브를 보지 않고, SNS의 정치적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상당히 위험한 신호다.

정치가 시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시민을 지치게 만들면 시민은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정치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정치에서 도망친 공간을 팬덤이 차지한다.

소수의 열성적인 사람들이 정치적 담론을 독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팬덤 정치는 강해 보이지만 사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매우 취약한 구조다. 전체 국민 가운데 극히 일부가 엄청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나머지는 정치에 지쳐 침묵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사에서 유시민과 김어준을 포함한 기존 영향력자들의 지목률이 모두 하락했다는 사실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이것을 곧바로 '유튜브 정치의 종말'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도 아니다.

하지만 유튜버 논객이 국민 전체의 정치적 판단을 대표하던 시대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신호로는 읽을 수 있다.

김어준의 14.8%가 유시민의 25%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김어준이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김어준은 한국 정치에서 유튜브 정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방송은 정치적 팬덤을 조직하고 결집시키는 데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바로 그 성공 때문에 그의 영향력에는 경계가 생겼다.

팬덤의 결속력이 커질수록 팬덤 바깥의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유시민은 정치적 입장이 분명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더 넓은 영역에서 자신의 언어를 구축해 왔다. 그래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뿐 아니라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하나의 '해석자'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유시민이 김어준에게 압도적인 격차로 앞서는 이유를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단서다.

그러나 여기서 유시민을 새로운 정치적 권위자로 숭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유시민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정치적 해석자의 역할이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다.

민주주의는 사실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시민은 수많은 사실을 해석해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 사건인지, 무엇이 구조적 문제인지, 무엇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정치인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언론과 학자와 작가와 지식인과 시민슬롯가 그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슬롯는 이 역할을 지나치게 몇몇 유명 인물에게 집중시켰다.

유시민, 김어준, 손석희 같은 몇몇 사람이 정치와 슬롯를 해석하는 거대한 스피커가 되었다.

이제는 이 구조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한 명의 위대한 해석자를 필요로 하는 체제가 아니라 수많은 시민이 서로 다른 해석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체제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조사의 진짜 질문은 '유시민이 왜 1위인가'가 아니다.

왜 한국인은 정치인보다 정치의 의미를 해석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부여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정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정치에 이렇게 지쳐 있는가.

정치가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할 때 인간의 삶은 정치에 포획된다.

그리고 정치가 삶을 압도하는 순간 시민은 정치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로부터 도망치는 인간이 된다.

지금 한국 슬롯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역설인지도 모른다.

정치가 너무 많아서 정치가 싫어지는 시대.

정치 유튜브가 넘쳐나는데 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는 오히려 부족한 시대.

정치적 목소리는 커졌는데 정치적 숙의는 약해진 시대.

팬덤은 강력해졌는데 시민은 지쳐가는 시대.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스타 논객이 아니다.

정치가 다시 시민의 삶 속으로 내려오는 것, 그리고 시민이 다시 정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김어준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유튜버 논객의 시대를 넘어 시민의 시대가 다시 시작될 수 있느냐.

그것이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Francis Le···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1,42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0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57개의 핵무기:북한이 이란과 다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