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제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를 처음으로 구체적인 숫자로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안에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더 주목할 것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할 것이냐는 질문에 트럼프가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는 사실이다.
57이라는 숫자가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북한이 약 50기의 핵탄두를 조립할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고, 스웨덴의 SIPRI 등은 약 60기 수준을 추정한다. 한국 국방 당국의 추정치는 80~120기로 더 높다. 따라서 트럼프가 말한 57기를 북한 핵무기의 정확한 실물 숫자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숫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를 ‘몇 개’라고 숫자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더 이상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강력한 신호다.
트럼프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허용해서는 안 됐다고 했다.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미 무기를 갖게 됐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 한마디에 미국 대북정바카라의 현실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
과거 미국의 공식적인 대북정바카라의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였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제재를 유지하고 압박을 계속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 사이 핵무기를 계속 늘려왔다.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고, 미국이 북한의 핵을 실제로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현실성이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선택해야 한다.
비핵화를 계속 요구하면서 아무런 변화도 없는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핵을 가진 북한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관리할 것인가.
트럼프의 최근 발언은 후자 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북한을 이란과 다르게 취급한다는 점이다.
이란에 대해서 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김정은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왜 그런가.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핵확산을 막는 것과 이미 핵무기를 가진 국가의 핵능력을 제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란이 핵무기를 갖기 전에 막는 것과 북한이 수십 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그것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난이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 생존의 보증서로 여기고 있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정권의 안전보장이 사라진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협상은 앞으로 ‘비핵화냐 아니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훨씬 복잡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핵무기의 추가 생산을 동결하는 대신 제재를 완화할 것인가.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는 대신 경제적 보상을 제공할 것인가.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어느 수준까지 인정하고 관리할 것인가.
이것은 과거의 비핵화 협상과는 전혀 다른 게임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북한을 ‘Nuclear Power’, 즉 핵보유국으로 부르고 57개의 핵무기를 언급한 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미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연합뉴스도 이번 발언이 미국의 대북정바카라을 비핵화 중심에서 거래적 접근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다.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의 축소를 지시했고,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과 김정은의 관계가 좋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올해 안에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군사적 긴장 완화 → 북미 정상회담 → 북한 핵능력 관리 → 제재와 핵동결을 맞바꾸는 거래.
물론 아직 이것이 미국의 공식적인 새로운 대북정바카라으로 확정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정은의 실제 의도도 알 수 없다. 북한 역시 최근 한미연합훈련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현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었다.
국제법적으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 인정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법적 선언만이 아니다.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계속 생산할 능력이 있으며, 이를 체제 생존의 핵심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국제슬롯는 결국 그 현실을 전제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미국에 북한 핵무기는 관리 가능한 전략적 문제일 수 있다.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을 억제하고 북한의 핵능력을 일정 수준에서 동결시키는 것으로 목표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게 북한 핵무기는 단순한 전략적 관리 대상이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바로 겨냥할 수 있는 실존적인 안보 문제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의 핵을 사실상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한국은 단순히 미국의 결정을 따라갈 수만은 없다.
특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비핵화’라는 말을 포기하는 순간 북한의 핵보유가 국제적으로 정상화될 가능성이다.
처음에는 핵무기 보유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다음에는 핵무기 생산 동결을 협상한다. 그다음에는 제재 완화를 논의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북한의 핵무기가 ‘없애야 할 무기’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때 북한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목표에 상당히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상의 지위를 확보하면서 미국과 직접 협상하고, 한국을 북미 협상의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되, 그것을 국제적으로 합법화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말하자면 북한의 핵보유라는 de facto 현실은 인정하더라도, 핵보유국이라는 de jure 지위를 성급하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북한과 협상할 때 한국의 안보가 협상 대상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는 이제 과거와 같은 비핵화 협상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57개’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예고하며, 비핵화를 목표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새로운 북핵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57개라는 숫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숫자가 이제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핵을 갖지 않은 국가가 아니다.
이미 핵을 가진 국가다.
그리고 이제 세계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북한이 핵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핵을 가진 북한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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