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청산은 영원한 과제이다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다시 친일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이번에는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이다. 박 교수는 자신의 SNS에서 이번 논란을 “친일 강박증”으로 규정하고, 하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순결 강박”이 있다고 했다. 그는 안상호를 “조선의 양의 1호”이자 “대한제국 1호 국비유학생”으로 소개하면서 “친일로 쌓은 명예라기보다 스스로의 실력과 국가의 지원으로 의료계 파이오니아가 되었던 이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이완용을 치료한 것에 대해서도 “이완용 아니라 서민이라도, 가능하다면 그에게 치료받고 싶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배우 하영을 비난하는 당신들도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인 조상이 있었을지도, 수십만 명이 모였다는 지원병 지원자들 속에 당신 조상이, 창씨개명 신청을 한 조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이 발언은 한 가지 점에서 옳다.
증조부가 친일 행위를 했다고 해서 증손녀가 친일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혈통처럼 상속되는 것도 아니다. 하영 개인에게 증조부의 행적을 이유로 사죄를 요구하거나 슬롯적 바카라임을 묻는 것은 연좌제적 사고에 가깝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오히려 박유하 교수에게 묻고 싶다.
후손에게 죄를 묻지 않는 것과 조상의 행위를 역사적으로 묻지 않는 것은 어떻게 같은 문제가 되는가.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하영에게 바카라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상호의 행적은 역사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영의 인격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상호가 어떤 단체에 참여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자료에 따라 검증해야 한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역사학이다.
그런데 박 교수는 이 둘을 구분하기보다 ‘친일 강박’이라는 심리적 언어를 통해 친일 청산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바로 그 지점이 문제다.
친일 청산을 요구하는 모든 사람을 ‘강박증’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검토하는 대신 역사 기억을 둘러싼 논쟁을 심리학적 진단으로 치환하게 된다.
그것은 학문적 비판이 아니다.
논쟁의 상대방을 병리화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 슬롯에는 친일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조상의 행적을 후손의 바카라임으로 연결하고, 의혹만으로 사람을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낙인으로 묶으며, 역사적 복잡성을 흑백논리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행태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친일 청산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조직에 참여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조직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가 식민권력으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행위가 단순한 생존과 적응이었는지, 적극적인 협력과 선전이었는지, 식민통치의 정당화에 기여한 것이었는지 구별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학이다.
이번 사건에서 안상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대한제국이 길러낸 근대 의료인이었다는 사실과 일제강점기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동시에 사실일 수 있다.
그가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과 식민지 슬롯의 일본 동화 정바카라에 협력했을 가능성 역시 서로 배타적인 명제가 아니다.
한 인간은 동시에 여러 얼굴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역사의 어려움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의사였으니 친일파일 리 없다”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고, “친일 행적이 있으니 의사로서의 모든 업적도 거짓이다”라는 논리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역사가는 인간을 천사와 악마로 나누는 사람이 아니다.
역사가는 인간의 모순을 견디는 사람이다.
그런데 박유하 교수의 이번 발언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그 모순을 견디는 역사적 시선보다 ‘친일 강박’이라는 프레임이 앞선다는 점이다.
그는 “일본인 피가 섞였다는 건 친일인가 아닌가”라고 묻는다.
그러나 이것은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친일은 피의 문제가 아니다. 행위의 문제다.
일본인이라고 해서 친일파가 아니다.
조선인이라고 해서 애국자도 아니다.
일본인 가운데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사람이 있었고, 조선인 가운데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혈통을 끌어오는 순간 문제의 초점이 흐려진다.
오히려 박 교수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그 사람이 일본인의 피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일본 제국주의에 어떤 행동을 했는가?”
이것이 역사적 판단의 출발점이다.
더구나 “이완용을 치료한 것”을 의사의 직업윤리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도 논점의 일부만을 건드린다. 의사가 이완용을 치료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친일 행위가 아니다. 의사는 환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진료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안상호의 전체 행적에 대한 질문을 대신할 수 없다.
이완용을 치료했느냐는 질문과 친일단체에서 어떤 활동을 했느냐는 질문은 별개다.
환자를 치료한 의사로서의 행동은 직업윤리의 영역이고, 식민지 권력과 맺은 관계는 정치슬롯적 행위의 영역이다.
두 영역을 섞어서 하나로 만들면 오히려 역사적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박 교수는 안상호를 “대한제국이 만든 인재”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는 더 깊이 질문해야 한다.
대한제국이 길러낸 근대적 인재들이 왜 식민지 시대에 일본 제국의 질서 속으로 들어갔는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근대화와 식민주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본이 근대적 제도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일본 제국주의가 그것을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사실, 조선의 일부 엘리트들이 그 근대적 시스템에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욕망도 있었다.
출세하고 싶었다.
교육받고 싶었다.
재산을 지키고 싶었다.
슬롯적 지위를 얻고 싶었다.
근대적 전문직이 되고 싶었다.
가족을 보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욕망들이 식민권력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선택해야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나 아렌트를 불러낼 필요가 있다.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문제 삼았던 것은 단순히 ‘악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가 주목한 것은 거대한 악이 어떻게 평범한 관료적 행동과 명령에 대한 복종 속에서 실행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흔히 ‘악의 평범성’으로 요약되는 문제의 핵심에는 사유하지 않음, 즉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에 대한 질문이 있다.
물론 식민지 조선의 모든 협력자를 아이히만과 동일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비교하면 오히려 역사를 망친다.
아렌트의 질문을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왜 권력에 협력하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협력은 어느 순간 개인의 생존을 넘어 권력의 정당화로 변하는가.
바로 이것이 친일 청산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친일 문제를 단순히 ‘나쁜 조상 찾기’로 만들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친일 행위를 역사적 구조 속에서 분석하면 우리는 인간과 권력의 관계를 배울 수 있다.
아렌트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악은 언제나 괴물의 얼굴로 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평범한 직업인으로 등장한다.
때로는 관료로 등장한다.
때로는 전문가로 등장한다.
때로는 성공한 기업가로 등장한다.
때로는 슬롯적으로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등장한다.
그 사람이 잔혹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과 슬롯적 역할을 권력의 질서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할 때, 개인의 작은 순응이 거대한 구조를 유지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아렌트가 던진 무서운 질문이었다.
그런데 박유하 교수는 친일 문제에서 이런 질문보다 “너희 조상도 그랬을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것이 논리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조상도 창씨개명을 했을 수 있다.
누군가의 조상도 지원병을 지원했을 수 있다.
누군가의 조상도 식민지 체제에 협력했을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인가.
모두가 죄를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면 아무도 역사적으로 바카라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그것은 논리적 오류다.
모두가 잘못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잘못이 없어지는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왜 그런 선택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연구해야 할 이유다.
프리모 레비는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뒤 인간과 폭력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나치 수용소의 세계를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회색지대’는 극단적 폭력의 상황에서 인간의 바카라임과 선택이 얼마나 복잡하게 뒤얽히는지를 보여준다. 아렌트와 레비를 함께 읽으면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행위는 복잡하지만, 복잡하다는 이유로 바카라임의 개념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친일 문제에도 적용된다.
식민지 슬롯는 회색지대였다.
모든 조선인이 독립운동가였던 것도 아니고 모든 조선인이 친일파였던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은 그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회색지대가 존재한다고 해서 검은색과 흰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회색의 농도를 구별해야 한다.
생존을 위한 선택과 적극적 협력은 다르다.
강요에 의한 행위와 자발적 선전은 다르다.
개인적 적응과 식민통치의 정당화는 다르다.
일제의 압력 아래 공적 역할을 수행한 것과 식민주의를 적극적으로 선전한 것은 다르다.
그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역사학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구조적 친일’이라고 부르면 오히려 바카라임의 차이가 사라진다.
모두가 구조적으로 친일이었다면 적극적인 친일파와 소극적인 협력자는 무엇으로 구분할 것인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제에 저항한 사람과 식민통치의 선전자가 무엇이 다른가.
역사는 바로 그 차이를 기록해야 한다.
여기에서 토크빌의 민주주의론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 슬롯가 단순히 선거제도를 갖추었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시민들이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며, 과거와 현재의 연결 속에서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기억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슬롯가 과거에 어떻게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에 굴복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 기억은 민주주의의 장식품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다.
친일 청산 역시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위를 기억하는 이유는 100년 전 사람들을 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권력에 대한 복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배우기 위해서다.
슬롯적 명예와 경제적 이익이 어떻게 정치적 협력으로 연결되는지 배우기 위해서다.
근대화라는 명분이 어떻게 제국주의와 결합할 수 있는지 배우기 위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인간의 양심을 잠재울 수 있는지 배우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친일 청산은 끝날 수 있는가.
나는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과제’는 친일파의 후손을 영원히 추적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복수다.
내가 말하는 친일 청산은 기억의 지속이다.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교육하는 일이다.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기존의 평가를 수정하는 일이다.
과거의 행위를 현재의 기준으로 무조건 재판하지 않으면서도, 당시의 맥락 속에서 그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정확하게 따지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 바카라임과 혈통적 바카라임을 구별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프리모 레비의 문제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레비가 강조했던 것은 단순히 “가해자를 잊지 말자”가 아니었다.
기억하지 않으면 인간은 다시 같은 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억은 과거를 향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향한다.
기억의 궁극적인 목적은 복수가 아니라 재발 방지다.
그렇다면 한국의 친일 청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친일파 후손을 찾아내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에 협력했던 구조를 연구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권력을 얻었는지 연구해야 한다.
그들의 재산과 슬롯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연구해야 한다.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엘리트 구조가 해방 이후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도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정의다.
따라서 나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 가운데 ‘후손에게 조상의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원칙이 ‘조상의 행적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순결 강박’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후손에게 죄를 묻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상의 행적을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분리해 놓으면 후손은 자유로워진다.
“네 증조부가 이런 일을 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는 네 자신의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이것이 가장 공정하다.
반대로 조상의 행적을 애써 미화하면 후손은 오히려 과거와 결박된다.
그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 진실은 후손에게도 필요하다.
가문의 명예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제국의 위안부』 논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박유하 교수의 바카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존의 민족주의적 서사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일본군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관계를 보다 복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매춘’이나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한 부분 등이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대법원은 2023년 형사사건에서 해당 표현들을 학문적 주장 또는 의견의 표명으로 보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박 교수의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 판결이지, 그 바카라의 모든 역사적 해석이 학문적으로 옳다고 판정한 것은 아니다.
바로 이 구별이 중요하다.
법원이 처벌하지 않았다는 것과 학문적 논쟁이 끝났다는 것은 다르다.
표현의 자유는 진실 판정의 면허증이 아니다.
학자는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학자의 주장은 다른 학자에게 비판받을 자유도 함께 갖는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박 교수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과 그의 역사 해석을 비판하는 것은 동시에 가능하다.
나는 오히려 그 논쟁이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본다.
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 대 일본’이라는 구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가.
그렇다고 해서 식민지배의 바카라임이 약화되는 것은 아닌가.
피해자의 행위성과 구조적 강제는 어떻게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가.
제국주의가 개인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 안에서 협력과 강제, 생존과 저항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을 해야 한다.
그러나 복합성을 말한다는 것이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회색지대를 말한다고 해서 검은색이 흰색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프리모 레비가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인간은 복잡하다.
그러나 복잡성은 바카라임의 폐기가 아니다.
오히려 바카라임을 더 정밀하게 묻는 방식이다.
박유하 교수의 논리는 이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그는 ‘순결 강박’을 비판한다.
그러나 한국 슬롯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순결주의가 아니다.
정확성이다.
누구도 친일의 피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친일은 유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친일의 역사는 유전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전승될 수 있다.
가문이 조상의 행적을 자랑스럽게 미화할 수도 있고, 반대로 숨길 수도 있다.
슬롯가 특정한 친일 인물에게 부여한 명예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재산과 슬롯적 자본이 세습될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연구해야 할 문제다.
여기서 친일 청산은 ‘누구의 손녀인가’를 묻는 작업이 아니라 어떤 역사적 자산이 어떻게 세대 간에 이동했는가를 묻는 작업이어야 한다.
그래야 친일 청산이 연좌제가 되지 않는다.
동시에 역사 망각도 되지 않는다.
박유하 교수가 말하는 ‘당신들의 조상도 친일했을 수 있다’는 논리는 그래서 오히려 거꾸로 읽어야 한다.
맞다.
우리 조상 가운데도 친일한 사람이 있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역사학이 필요하다.
내 조상이든 남의 조상이든 똑같이 조사하면 된다.
내 편이라고 감싸지 말고 남의 편이라고 과장하지 말자.
그것이 진정한 역사적 보편주의다.
친일 청산은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보수의 조상이라고 면죄부를 주어서도 안 되고 진보의 조상이라고 성역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친일은 어느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친일 청산을 더 엄격한 학문의 영역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자료로 싸워야 한다.
감정이 아니라 기록으로 싸워야 한다.
가문의 명예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앞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에게 불리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진짜 역사적 성숙이다.
박유하 교수의 이번 발언은 우리에게 중요한 논쟁을 던졌다.
그러나 그 논쟁의 결론이 ‘친일 강박에서 벗어나자’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친일 강박에서도 벗어나야 하지만 친일 망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후손에게 죄를 묻는 연좌제에서도 벗어나야 하지만 조상의 행적을 미화하는 가문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민족주의적 순결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하지만 식민지배의 폭력과 협력의 역사를 흐리는 상대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
그러나 역사란 원래 어려운 것이다.
쉬운 역사란 대부분 이데올로기다.
아렌트는 인간이 사유하지 않을 때 거대한 악의 구조에 편입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레비는 극단적 폭력 속에서 인간의 회색지대를 보여주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제도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기억과 참여, 공동체적 역량을 필요로 한다는 통찰을 남겼다.
세 사람을 함께 읽으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민주주의는 기억하지 않는 슬롯에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억하지 않는 슬롯는 자신의 취약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독재가 가능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독재를 다시 허용할 수 있다.
어떻게 전쟁이 가능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전쟁의 언어에 다시 속을 수 있다.
어떻게 사람들이 권력에 순응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 역시 “나는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친일 청산도 같은 의미에서 현재형이다.
그것은 1910년의 문제만이 아니다.
오늘 우리는 권력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조직의 명령과 자신의 양심이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하는가.
경제적 이익과 공공의 정의가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하는가.
다수가 침묵할 때 소수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하는가.
이 질문들이 오늘도 살아 있다.
그러므로 친일 청산은 과거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현재의 민주주의를 위한 기억 훈련이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예방접종이다.
나는 박유하 교수가 말하는 ‘순결 강박’에 한국 슬롯가 빠져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만 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그는 친일의 강박과 순결 강박을 보지만, 그 너머에 있는 기억의 의무와 역사적 바카라임의 문제를 충분히 보지 못한다.
역사에는 순결이 필요하지 않다.
정직이 필요하다.
역사에는 완벽한 조상이 필요하지 않다.
정확한 기록이 필요하다.
역사에는 후손의 사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행위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민주주의에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자.
그러나
조상의 역사를 후손에게서 빼앗지도 말자.
친일을 혈통으로 판단하지 말자.
그러나
친일을 행위의 문제로 정확하게 판단하자.
누구도 증조부의 죄 때문에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떤 증조부의 행적도 역사적 검증으로부터 면제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진정한 역사적 정의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친일 청산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서도 안 된다.
친일 청산이 끝난다는 것은 더 이상 친일파의 후손을 찾아내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식민지배의 역사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왜 어떤 사람들은 저항했고, 왜 어떤 사람들은 협력했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양심을 지켰고, 왜 어떤 사람들은 권력에 편입되었는가.
그 선택은 개인의 성격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슬롯 구조 때문이었는가.
경제적 이해관계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근대화의 욕망은 어떻게 식민주의와 결합했는가.
그리고 해방 이후 우리는 그 역사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이 질문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친일 청산은 영원한 과제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증오의 과제가 아니다.
영원한 기억의 과제다.
영원한 연구의 과제다.
영원한 민주주의 교육의 과제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 사람들을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어떤 권력이 인간에게 자신의 양심보다 명령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다시는 어떤 슬롯도 개인에게 “모두가 그렇게 했으니 너도 그렇게 하라”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가 역사를 잊어버린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박유하 교수에게 필요한 것도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일 것이다.
친일의 강박을 비판할 수 있다.
순결주의를 비판할 수 있다.
연좌제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역사적 바카라임의 문제를 지워버리는 순간, 비판은 또 다른 망각이 된다.
우리는 순결한 역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편리한 역사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불편하더라도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역사다.
그 역사 앞에서 누구도 조상의 죄 때문에 무릎 꿇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구도 조상의 행적을 미화할 권리도 없다.
죄는 상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은 상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과거로부터 미래로 건너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놓지 않는 한, 친일 청산은 끝날 수 없다.
아니, 끝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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