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의 복음과 죄바카라감의 종교 사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졌다.
신약성경은 예수를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예수 안에서 인간이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히브리서는 예수의 희생이 단 한 번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만약 이러한 교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논리는 단순하다.
죗값은 이미 치러졌다.
빚은 이미 갚아졌다.
형벌은 이미 집행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역사 속 교회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파해 왔다. 예수는 죄를 용서했지만 인간은 계속 죄인이다. 예수는 대가를 치렀지만 인간은 여전히 빚진 자다. 예수는 구원을 완성했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죄바카라감을 느껴야 한다.
여기서 신학적 모순이 발생한다. 속죄는 완료되었는데 죄인은 남아 있다. 구원은 이루어졌는데 죄바카라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독교 역사는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논리를 만들어 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중세 가톨릭교회의 잔벌(殘罰) 교리다. 교회는 예수의 희생으로 원죄는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면서 짓는 죄의 결과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죄 자체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 죄가 남긴 형벌과 후유증은 별도로 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 속에서 고해성사가 등장한다. 신자는 정기적으로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신부는 죄의 용서를 선언하고 동시에 기도나 금식, 선행과 같은 보속 행위를 부여한다. 신자는 그 보속을 수행함으로써 죄의 결과를 씻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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