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 좋아하는 일 고찰하기

by프리여니v

인간을 정의하는 다양한 말 중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이 있다. 이는 네덜란드 인류학자 요한 하위징아(1872-1945)가 정의한 말로,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요한 하위징아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 인간은 놀이를 통해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근본적인 존재라고 기록했다.


놀이란 말 그대로 노는 것, 또는 그런 활동을 뜻한다. 그런데 놀이에도 가짜 놀이와 진짜 놀이가 있다. 아동 발달학자 펠레그리니(A. D. Pellegrini)는 진짜 놀이를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고, 현실 세계와는 다른 비기능적이며, 가상적 성격을 띤 자발적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즉, 놀이란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무언가를 얻기 위한 목적이 없으며, 온전히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놀이. 언젠가부터 그 말이 이토록 생소해졌을까.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내야 한다는 바카라임의식이 강해질수록, 삶을 더 잘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커질수록 그 말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내 인생에 놀이와 함께했던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자칭 모범생이었던 나, 늘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며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져온 나,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집착 아닌 집착을 일삼던 나는 언젠가부터 내 안의 의도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그것도 무용(無用)한 일을 하는 법을 까먹고 살기 시작했다. 나는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했고, 한시도 시간을 허투루 써서는 안 됐다. 내가 투자하는 시간엔 반드시 무언가 얻을 것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돈이든, 관계든, 건강을 위한 것이든 말이다.


이러한 나의 집착은 몇 가지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어찌어찌 해내며 쫓기듯 성과를 내던 내신과 달리, 나에게는 수능으로 승부를 볼만한 실력이 전혀 없었다. 공부 방법을 알지 못했고 동기 부여도 부족했기에 방대한 공부량은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그 시간 나는 앉아서 괴로움을 고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수능’이라는 목적이 있었기에, 나는 그 목적을 향해 정신과 노력을 할애했다. 비록 그 과정이 ‘나는 왜 공부가 안될까’ 혹은 ‘운이라도 좋게 해 주세요’라는 헛된 바람을 담아 보내는 내적 활동이 전부였을지라도.


둘째, 과거의 나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순간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이야 성적을 잘 받거나 집안일을 해냄으로써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으로 가치를 입증할 수 있었지만, 대학생이 된 후에는 그야말로 입증할만한 것이 없었다. 4년제를 나온다고 당장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고, 공부에 자부심을 느낄 만큼 학교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 2~3년은 따로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아 주머니는 늘 빈약했고, 학비는 국가 제도나 장학금으로 해결한다 쳐도 생활비는 엄마가 주는 돈을 받아야 했기에 그 갈망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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