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이덴티티
수십 번의 수정 끝에 완성된 브랜드 컬러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컬러였는가.
패션 브랜딩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조용히 일어나는 실패에 대하여.
회의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저는 이 색이 좋지 않아요.”
혹은 그보다 더 직접적인 버전인
“사장님이 파란색을 안 좋아하세요.”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수많은 대표들이,
혹은 브랜드 담당자들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설계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을 가장 먼저 꺼내놓는다.
그리고 그 순간, 브랜드의 방향은 조용히 틀어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특정 누군가를 탓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사업에 자신의 감각을 투영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인간적인 욕구다.
특히 패션은 더욱 그렇다.
패션은 애초에 개인의 미적 감각과 철학에서 태어난 산업이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앞에 내건 브랜드들을 보라.
입생로랑이 원하는 실루엣,
코코 샤넬이 싫어하던 장식의 과잉,
칼 라거펠트가 집착했던 흑과 백.
창업자의 취향은 때로 하나의 완결된 미학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당신의 브랜드를 사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다.
브랜딩을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로 이해하는 시선이
여전히 많다. 로고를 만들고, 컬러를 고르고, 패키지를
디자인하면 브랜딩이 완성된다는 생각.
그래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 기준이 된다.
하지만 브랜딩은 본질적으로 관계의 언어다.
브랜드가 누구에게 말을 거는가,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그리고 그 감정이 구매와 재구매,
그리고 추천으로 이어지는가.
이 흐름을 설계하는 것이 브랜딩이다.
색깔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당신이 30대 초반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미니멀 캐주얼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면,
그리고 그 타겟이 무채색 베이스에 포인트 아이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따뜻한 색감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브랜드 컬러 선택에서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중요한 판단을 흐리는 노이즈다.
좋은 브랜딩은 창업자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타겟 고객이 자기 자신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통해 자신이 되고 싶은 무언가를 산다.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이 사는 것은
기능성 원단이 아니라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다.
마르지엘라의 타비 슈즈를 신는 사람이 사는 것은 발가락이 갈라진 구두가 아니라 ‘나는 패션을 아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다.
당신의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고객이 당신의 옷을 입었을 때 어떤 사람이 되는가.
그 이미지를 설계하는 것이 브랜딩이고,
그 설계의 언어가 컬러이며, 폰트이고, 카피이며,
이미지 톤 앤 매너다.
고객은 브랜드의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가 설계한 자기 자신을 입는다.
패션 이커머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가장 설득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데이터가 명확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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