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방 안의 통제자

by날아올라

상담실의 공기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오늘 내 앞에 앉은 남자는 족히 10분째 차트 위로 고함을 쏟아내는 중이다.


병원로비까지 울려퍼지는 그의 거친 목소리가 수술비에 대한 불만을 넘어 인신공격으로 번지고 있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정교하게 조립된 비즈니스용 미소를 띤 채, 그가 내뱉는 단어들을 머릿속 빈칸에 기계적으로 분류해 넣고 있다.


“아가씨 아니 서 실장님, 사람 몸에 칼 대는 값 흥정하는데 그 빤빤한 얼굴로 속이 나 긁고 앉았어? 피한 방울 안 묻혀본 기계처럼 굴지 말고 대답을 해보라고!”


남자가 바카라상을 쾅 내려친다 모서리에 놓인 척추 모형의 뼈마디가 달그락거리며 부딪히지만, 내 시선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서늘하고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수술비가 비싸다고 화를 내시는 건 이해합니다만, 지금 아버님 무릎 인대는 그 화를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 않습니다. 고함치실 에너지를 수술 후 재활에 쓰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마우스를 딸깍여 모니터에 무릎 관절 단면도를 띄운 뒤 볼펜 끝으로 화면을 건조하게 가리켰다.


“자 끊어진 인대부터 보시죠.”


방금까지 핏대를 세우며 폭발할 것 같던 남자의 기세가 단 1분 만에 허무하게 꺾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가운 의학 용어들을 메스처럼 정확하게 꽂아 넣었다. 결국 얌전해진 남자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고 상담실을 나섰다.


묵직한 유리문이 닫히자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차라리 저렇게 대놓고 터뜨리는 분노가 다루기 수월했다. 바카라상 위의 서류 몇 장과 건조한 설명만으로 가볍게 밀어낼 수 있으니까 적어도 내 코트 자락에 숨어 덜덜 떠는 여덟 살 아이의 목덜미에 소주 냄새 진동하는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지는 않으니까.


오후 외래 진료가 끝나갈 무렵, 적막하던 로비의 공기가 찢어질 듯한 고함에 산산조각 났다.


“아니 의사가 환자한테 그따위로 말해도 되는 거야! 아파서 온 사람 취조해?”


진료실 데스크 앞의 외래간호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중이었다. 활짝 열린 진료실 문 너머로는 차트를 마우스 패드 위로 신경질적으로 던져놓는 이정우 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밖에서 길길이 날뛰는 환자를 향해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날아올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조현병 엄마 밑에서 자란 간호사 딸의 생존과 자가치유. 대물림되는 아픔을 끊고 엄마가 된 나를 응원해. 아들아, 너의 모든 순간을 사랑해.

24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1화고요라는 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