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버들군락이 있는 봄의 습지는

서천 봉선저수지를 소개합니다

by초록노동자


생태 가치를 전하는 초록노동자입니다. 이십 년 차 식물연구원이 보는 식물, 자연, 환경에 대한 시선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서천에서 서울로 출장 갈 때 고속도로 오른쪽 옆으로 보이는 습지가 있다. 지나다니면서 '언제 한 번 가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작년 봄 어느 날, 일정이 조금 일찍 끝나 바람 쐴 겸 슬슬 가보았다. 지방은 평일에는 차도 사람도 없다. 자연 속에서 혼자 여유 있는 오후였다.


습지 이름은 봉선저수지다. 주변에 논이 많은 걸 보니 농사용으로 만든 저수지인가 보다. 습지 둘레에 만든 일 차선의 작은 길로 천천히 운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느리게 풍경을 감상하며 가다가, 얻어걸린 행운처럼 물속에서 자라고 있는 웅장한 왕버들군락을 만났다. 주왕산국립공원 주산지에서 자라는 그 왕버들이다.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는데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많이 다니지 않아서일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바로 근처에서 일하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십 년을 그냥 보낸 것이다. 그냥 흘러 보낸 시간이 마음 쓰리게 아까웠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풍경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매년 봄, 왕버들 꽃이 필 때쯤 봉선저수지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주에 다녀왔다. 비록 조금 늦게 와서 꽃은 졌지만, 벌써 잎이 많이 자란 왕버들과 버드나무가 봄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봉선저수지의 왕버들과 버드나무, 저수지 수면 위의 왜가리와 청둥오리, 야트막한 산의 산새들과 꽃에서 열심히 꿀을 빨고 있는 벌들, 그들과 나뿐이었다.


흙길을 운전하다가 귀한 흰민들레를 발견했다. 올해 처음 만나는 흰민들레다. 샛노란 서양민들레만 보다가 노란색 잉크가 한 방울 정도 섞인 흰색의 민들레를 만나니 반가웠다. 흙길에서 바퀴가 지나가는 사이의 조금 쌓여있는 흙에서 일렬로 자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흰민들레의 꽃들을 쓰다듬었다. '애쓰고 있어.'





지나가다가 물멍터를 발견했다. 왕버들군락과 저수지 수면이 보이는 곳에 설치한 작은 평상 위에 '물멍터'라는 팻말이 있었다. 저수지를 바라보고 앉으면 뒤에는 오래된 작은 마을숲이 있다. 나무들 줄기의 굵기가 굵은 것을 보고 오래된 숲인 것을 알았다. 습지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생체 시계보다 빠르다. 숲의 나무들은 아직 잎을 틔우지 않았다.


차의 시동을 끄고 물멍터에 앉았다. 일렁이는 물결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흔들리는 버들잎을 바라봤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숙여 바카라을 읽고 있으면 조용한 가운데 온갖 자연의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았다. 딱따구리가 이쪽과 저쪽의 오래된 참나무 줄기에 부리를 부딪혀 부지런히 집을 만드는 소리, 왜가리가 호수 표면을 날개로 치며 힘차게 날아오르는 소리, 물고기가 수면 위로 올랐다가 들어가는 소리, 하늘을 날아가며 내는 새소리, 저 멀리 기차 소리와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


여기에서 생태 교육을 해야겠다. 아이들에게 눈 감고 십 분 동안 자연의 소리를 들으라고 해야겠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계음과 소음에 시달리며 살았나. 귀를 정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새는 몇 종이 있을까, 사람이 내는 소리는 몇 종류일까, 호수에서 나는 소리는 무엇이 있을까. 눈을 감고 들리는 소리들을 기록해 봐야겠다.


이번 주에 서천 초등학생들과 '봉선저수지의 식물' 교육을 한다. 사월과 칠월, 두 번 만난다.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생태교육과 다른 교육을 하고 싶어 매번 고민한다. 교실에서 하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번에는 시간도 충분해서 야외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수업으로 만들어야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