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재활용 선별장에서 십 년 넘게 일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쏟아지는 물건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지나갔다. 페트병과 캔, 비닐과 종이. 재질에 맞게 분류하는 일은 단순해 보였지만, 기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쉬웠다. 잘못 분류된 물건은 다시 손을 거쳐야 했고, 한 사람의 실수는 뒤에 선 사람의 일까지 늦췄다.
그는 그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직원은 사흘째 같은 실수를 했다. 몇 번이나 분류 기준을 설명했지만, 직원은 물건을 집어 들 때마다 망설였다. 맞게 골랐는지 확인하느라 손이 멈췄고, 확신이 서지 않으면 옆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처음에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두 번째에는 목소리가 커졌고, 세 번째에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결국 사흘째 되는 날, 그는 직원에게 그만 나오라고 말했다.
직원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업대 한쪽에 놓아둔 장갑과 공구를 챙겼다. 다만 장갑 한 짝은 미처 찾지 못했는지 작업대 아래에 남아 있었다.
그는 보지 못한 척 컨베이어 벨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퇴근 무렵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가늘던 빗줄기가 금세 굵어졌다. 그는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서둘러 걸었다.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좁은 골목 안쪽에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문 안쪽으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문을 열자 작은 종이 울렸다.
가게 안에는 나무 선반이 늘어서 있었다. 선반 위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카드들이 놓여 있었고, 카드마다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담아 둔 기록처럼 보였다.
주인이 그를 바라보았다.
“비가 많이 오네요. 잠시 쉬었다 가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선반 앞에 섰다. 그러다 벽에 걸린 문구를 발견했다.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맡기면, 다른 사람의 하루를 빌려드립니다.
그는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무슨 뜻입니까?”
주인은 선반 위의 카드 하나를 내려놓았다.
“자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맡기시면 다른 사람의 하루를 빌릴 수 있습니다. 다만 맡긴 하루의 기억은 사라집니다.”
“기억이요?”
“그날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그날 느꼈던 감정까지 더는 떠올릴 수 없게 됩니다.”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빌린 하루는요?”
“다른 사람이 실제로 살아온 하루입니다. 그 사람의 시선과 감각으로 그날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선반에 놓인 카드들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날도 있었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중 어느 하나를 골라도 자신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돌아서지 못했다.
사흘 전부터 마음에 걸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직원이 물건 하나를 손에 든 채 자신을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그는 그 눈빛을 기억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대충 넘어가려는 것인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그저 또 같은 실수를 했다는 사실만 보았다.
그 직원에게 다시 기회를 주더라도 같은 실수를 견딜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가 배울 수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빨리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빌린 하루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줄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다른 사람은 아직 서툰 아이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 하루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가장 행복했던 날을 어떻게 찾습니까?”
주인은 서랍에서 작은 카드를 꺼냈다.
“억지로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대개는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날이 먼저 떠오르니까요.”
그는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 동네 자전거 수리점이 떠올랐다.
체인이 빠진 자전거를 끌고 갔던 오후였다. 그는 체인을 제대로 끼우지 못했고, 손에는 검은 기름이 묻었다. 수리점 주인은 대신 고쳐 주는 대신 작은 공구를 건네며 어디가 어긋났는지 물었다. 그는 몇 번이나 실패했다. 주인은 답답해하지 않고 옆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체인이 제자리에 들어갔을 때, 주인은 잘했다는 말 대신 자전거를 한번 돌려 보라고 했다. 바퀴가 매끄럽게 움직였다.
그날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자전거를 몇 번이나 멈춰 세웠다. 자신이 고친 체인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그 오후를 오래 간직해 왔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서툴러도 끝까지 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더 좋았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대신해 주지 않았지만, 혼자 내버려 둔 것도 아니었다.
“그날로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뒤에도 그는 한참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주인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말 맡기시겠습니까?”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에 손을 올리는 순간, 오래된 수리점의 풍경이 눈앞에서 멀어졌다. 기름 묻은 손가락도, 공구를 건네던 손도, 바퀴가 돌아가던 소리도 하나씩 희미해졌다.
그는 급히 기억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방금 무엇을 떠올렸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듯했지만, 무엇이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인은 선반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 하루를 빌리시겠습니까?”
카드에는 공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관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특별한 사건도, 대단한 성취도 없는 평범한 오후였다.
그는 카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곧 다른 사람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낮은 시야였다.
어른의 허리께에 있던 세상이 눈앞으로 내려와 있었다. 조금 고개를 들자 젊은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여자는 한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은 짧았고 손바닥은 작았다. 여자의 손을 잡고 있어도 손가락 몇 개가 겨우 맞물릴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린아이의 몸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아이의 얼굴은 둥글었고, 볼에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눈은 주변을 살피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입을 벌릴 때면 앞니 하나가 빠진 자리가 드러났다. 아이는 몇 걸음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몸이 조금씩 흔들렸고, 중심을 잡으려는 듯 한쪽 팔이 옆으로 벌어졌다.
공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아이보다 조금 앞서 걸었지만, 손을 잡은 팔은 뒤쪽으로 느슨하게 내려와 있었다. 아이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려고 몇 걸음마다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걷다가 멈췄다.
고개를 숙여 길을 살폈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아이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무심코 아이를 재촉하려 했다.
목적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습관이었다. 빨리 걸으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멈춰 있을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를 끌어당기지 않았다.
아이가 다시 걸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가 몇 걸음 나아가면 함께 움직였고, 멈추면 그 자리에 머물렀다. 어머니의 손은 아이의 손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 손으로 아이의 걸음을 대신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짧은 걸음이 몇 번 이어졌다. 발끝이 보도블록에 걸릴 듯 말 듯 흔들렸다. 아이는 잠시 몸을 기울였다가 다시 중심을 잡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앞으로 나아갔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몇 걸음 더 걷다가 또 멈췄다.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둥근 볼과 앞니 하나가 빠진 작은 얼굴에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표정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크게 웃지도, 특별한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아이가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손을 잡고 기다릴 뿐이었다.
아이는 그 웃음을 본 뒤 다시 발을 내디뎠다.
그는 아이의 몸으로 그 길을 걸으며 조금씩 다른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거리가 아이에게는 길었다. 발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몸이 기울면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다음 걸음을 내디뎌도 괜찮을지 확인해야 했다. 아이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이가 서툴다는 이유로 걸음을 대신해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혼자 해 보라며 손을 놓지도 않았다.
아이가 멈추면 함께 멈췄다.
아이가 다시 움직이면 함께 움직였다.
그는 작업장에서의 자신을 떠올렸다.
분류 기준을 설명했는데도 직원은 같은 실수를 했다. 그는 그때마다 손이 느리다고 생각했고,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직원이 무엇을 몰라서 멈추는지, 어떤 부분에서 망설이는지 충분히 살펴보지 않았다.
아이의 걸음은 느렸다. 하지만 아이는 멈춰 있는 동안에도 길을 살피고 있었다. 어머니가 대신 걸어 주지 않아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어머니가 기다려 준다고 해서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배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직원에게 무조건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작업장에는 지켜야 할 기준이 있었고, 잘못된 분류는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실수를 모른 척하는 것과 배우는 시간을 주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그 차이를 충분히 살펴보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이가 다시 멈췄다.
어머니는 재촉하지 않았다. 손을 잡은 채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함께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두 사람 곁을 스쳐 갔지만, 어머니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앞니 하나가 빠진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걸었다.
그 순간 그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기쁨과, 그것을 누군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는 안도감이 함께 밀려왔다. 아이가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자신이 혼자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어머니의 손은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지만, 아이의 발은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집이 보였다.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몇 걸음 더 걸었다. 그리고 문 앞에 이르러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바라보았고, 아이도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둘은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아이는 입을 벌려 웃었다. 빠진 앞니 사이로 작은 빈틈이 드러났다. 어머니는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손을 조금 고쳐 잡았다.
그날의 길은 거기서 끝났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다시 가게 안에 서 있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지만, 그는 한동안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던 감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주인은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는 가게를 나섰다.
다음 날 아침, 작업장에 도착한 그는 작업대 아래에 남아 있던 장갑 한 짝을 발견했다. 며칠 전 직원이 두고 간 것이었다. 장갑을 집어 들자 손바닥 안쪽에 검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 직원이 작업하던 동안 묻힌 기름때였다.
그는 장갑을 버리려다가 멈췄다.
직원은 해고되던 날, 작업대에 놓인 다른 물건들을 챙기느라 이 장갑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찾으러 오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제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그는 장갑을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연락처에서 직원의 번호를 찾아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사흘 동안 같은 실수를 반복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그에게 그만 나오라고 말했을 때, 직원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뒤늦게 마음에 걸렸다.
그는 문자를 보냈다.
‘장갑 한 짝이 남아 있습니다. 찾으러 오세요.’
답장은 한참 뒤에 도착했다.
‘네. 언제 가면 될까요?’
그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장갑을 돌려주는 것만으로는 자신이 왜 연락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나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확신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작업대 위의 장갑을 바라보았다. 손바닥 안쪽의 얼룩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내일 아침에 올 수 있습니까? 일을 다시 해 볼 생각이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이번에는 답장이 금방 왔다.
‘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다음 날 아침, 직원은 작업장 문 앞에 서 있었다. 지난번처럼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왔지만, 작업복을 갈아입고 작업대 앞에 서자 곧 분류표를 펼쳤다.
그는 직원에게 장갑을 건넸다.
“이것부터 챙겨요.”
직원은 장갑을 받아 들었다. 손바닥의 얼룩을 잠시 바라보더니 손에 끼웠다.
그는 분류 기준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했다. 직원이 물건을 고르는 동안 지켜보았다.
직원은 또 틀렸다.
그는 곧바로 정답을 말하려다가 멈췄다.
“어떤 기준으로 골랐어요?”
직원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이 판단한 이유를 설명했다. 설명에는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었다.
그는 틀린 부분을 짚어 주었다. 그리고 분류표의 해당 항목을 가리켰다.
“이걸 먼저 확인하고 골라요. 확실하지 않으면 확인하고요.”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도 일은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손이 멈췄고, 분류표를 다시 확인하는 일도 반복됐다. 그는 답답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그 감정을 그대로 내보냈을 것이다.
이번에는 잠시 기다렸다.
직원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지 지켜보았다. 틀린 판단을 했을 때는 바로잡았고, 기준을 제대로 적용했을 때는 다음 물건으로 넘어갔다.
며칠이 지났다.
직원은 여전히 실수했지만, 전처럼 매번 그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분류표를 확인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일이 조금씩 늘었다. 작업 속도는 아직 느렸다. 그래도 처음보다 멈춰 서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어느 날 그는 작업대 한쪽에 놓인 분류표가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직원이 자주 틀리던 항목에 작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정리해 둔 모양이었다.
그는 그 종이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제자리에 놓았다.
특별히 잘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직원도 아무 말 없이 다음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날 퇴근하기 전, 그는 직원의 이름이 적힌 근무표를 확인했다. 지우지 않은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맡긴 하루를 떠올리려 했다.
동네 자전거 수리점의 풍경이 생각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 공구를 건네주었던 것 같은 기분만 남아 있을 뿐,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한동안 기억을 더듬다가 그만두었다.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는 작업장을 나서기 전 컨베이어 벨트의 전원을 확인했다. 직원은 자신의 작업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장갑을 벗어 한쪽에 가지런히 놓고, 분류표를 접으려다 다시 펼쳤다. 다음 날 헷갈릴 수 있는 항목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잠시 멈췄다.
“내일도 같은 시간에 오면 됩니다.”
직원은 고개를 들었다.
“네.”
그는 더 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비는 그쳐 있었다. 젖은 길 위로 가로등 불빛이 길게 번졌다. 그는 천천히 걸었다. 오래전 자신이 무언가를 배우던 날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얼굴도 목소리도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할 수 없는 하루였다.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늦췄다가 다시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작업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갈 것이다. 직원은 또 실수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때마다 정답을 알려 주어야 할 것이고, 때로는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 그는 누군가의 손이 멈췄을 때, 곧바로 그 사람의 앞날까지 결정하지 않으려 했다.
다음 날, 작업장에 도착한 그는 문을 열었다. 직원은 이미 와 있었다. 분류표를 펼쳐 놓고 첫 번째 물건을 살피는 중이었다.
그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평소처럼 작업복을 입었다. 그리고 직원이 다음 물건을 집어 들 때까지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