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엄마 새끼손가락에 가시가 박혔어.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 않은데 살짝만 건드려져도 아파. 어제 바늘로 빼야지 하다가 안 아파서 냅뒀어. 그런데 오늘 아침 밭에 나가려 장갑을 끼는데 살짝 스치니 아프더라. 나중에 샤워하고 빼야지 하다가 또 미루고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데 또 살짝 아파. 눈에 보이지도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은 녀석이 아주 귀찮게 해. 중요하지도 않은데 계속 성가셔.
장갑끼고 마당을 가로질러 밭으로 가려면 엄마는 여러번 멈춰.
잔디 사이에 솟은 풀들이 눈에 띄거든. 그러면 쭈그리고 앉아서 뽑아. 어떤 때엔 딱 10개만 뽑자 정하기도 해. 뽑다 보면 하염없이 앉아 있게 되거든.
가시와 풀.
당장 어떻게 하지 않아도 큰일나지 않아.
사실 그냥 내버려둬도 사는 데에 지장도 없어.
그런데 계속 성가셔.
어제부터 손으로 뭘 하려고만 하면 계속 '아! 가시 뽑아야지!'하며 멈추고
마당에 한발짝 디디려 해도 '쟤 뽑아야겠네'하며 멈춰.
딸아, 네가 이제 한국에 오지.
너 오면 먹일 채소들을 키우는 게 엄마가 요즘 제일 신경쓰는 일이기도 해. 여름이라 벌레가 많아. 가지랑 고추에도 벌레가 붙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손으로 잡고 발로 밟고 있어. 간단히 처리할 약품들도 있겠지. 하지만 아날로그인 엄마답게 손으로 매일 잡아. 잡는 동안 엄마는 모기를 비롯한 수많은 벌레들에게 계속 물려. 따끔하고 간지러워서 여기저기 긁으면서도 계속 잡아. 벌레를 잡는만큼 벌레에 물려.
가시부터 뽑아야 하는데
풀부터 뽑고 있고
벌레를 잡으면서 벌레에 물리고.
엄마는 아무래도 머리보다는 손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같아.
가시를 확 뽑아버리면 되는데 왜 그걸 계속 미루는지.
풀은 며칠에 한번씩 뽑아도 되는데 왜 매번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지.
벌레는 왜 일일이 손으로 문지르고 비벼가며 잡고 있는지
엄마도 엄마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지 잘 몰라.
채소를 키우지 않고 사 먹으면 벌레를 잡지 않아도 돼.
마당도 제초제를 뿌리면 풀 안 뽑아도 되고
글을 안 쓰고 그냥 교수하면 퇴고를 안해도 돼.
이렇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않아.
풀은 인간을 이겨. 또 자랄거야.
벌레도 또 생길거구.
글은 오늘 내일 당장 결과가 오지도 않아.
그러고 보니 이상하지?
왜 굳이 안 해도 되는 일들을
엄마는 왜 자꾸 스스로 찾아가는 걸까.
사는 게 말이야.
어쩌면 이렇게 귀찮고 성가신 일들의 연속인 것 같아.
양치질도, 샤워도 얼마나 귀찮니. 오늘 해도 내일 또 해야 하잖아. 출근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래. 매번 특출난 성과가 있는 것도 아냐. 그냥 하는 거야. 해야 하니까 그냥 하는 거. 사람을 살게 하는 일들은 대부분 끝없이 하염없고, 매일 계속 반복되는 것들로 이어져.
어쩌면 우리 모두는
매일 반복되는 걸 알면서도,
내일 또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미룬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는 걸 알면서도
그냥 오늘 주어진 것을 하면서 살아.
눈앞의 그것을 하는 것만으로 또 뿌듯하기도 해.
작은 행복감이 밀려오지.
벌레에 물려가며 키운 채소들을
사랑하는 네가 맛있게 먹어주는 행복.
글을 감사히 읽어주고 독자들의 삶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행복.
풀을 뽑아 꽃들이 이쁘고 건강하게 빛을 내는 행복.
봐봐.
매일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하염없는' 성가신 일들이다.
바카라읽고 글쓰고 밥하고,
먹고 씻고 자고.
다 하염없지?
그런데 이걸 빼면 삶이 아니야.
시간도, 정성도, 마음도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지 하나에,
꽃 한 송이에,
문장 하나에 모두 담겨.
사람들은 결과를 보지만 우린 알잖아.
그 안에는 수없이 반복된 성가심과
미루지 않은 손길이 담겨 있다는 걸 말야.
엄마는 이 글을 쓰고
해질녘에 또 마당을 지나며 풀 10개를 뽑고
텃밭으로 가서 벌레를 잡고
다시 들어와 글을 마무리하겠지.
끝이 있어서가 아니야.
사랑은
원래 성가심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것이니까.
-2026. 07. 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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