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유의 스승'

엄마의 유산

by지담

오늘은 누가 먼저 나를 부를까.

엄마는 마당에 하루의 첫발을 디딜 때 엄청 기대된다!

지금 마당에서는

'계승'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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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록스는 아직 꽃망울을 모으고 있고,
범부채는 길게 꽃대를 세웠어.
비비추는 하늘을 향해 봉오리를 밀어 올렸고,
연못의 부레옥잠도 잎 사이로 올해의 첫 보라를 올리고 있지.


모두 이제 첫꽃을 피우고 있어.

참 이상하다.

엄마는 꽃이 피는 것만 기다렸는데,
꽃은 피기 직전의 시간을 더 오래 살아내.


요즘 엄마는 마당에서 자기 계절을 누리고 있는

범부채와 플록스, 부레옥잠, 비비추를 매일 보며

하나씩 자연의 이치를 배우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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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부레옥잠 / 우> 비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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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플록스 / 우> 범부채


범부채와 부레옥잠은 1년에 딱 하루만 피는 꽃이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사라져.

처음엔 짧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니었어.


짧은 것이 아니라

이어지고 있었어.


범부채는

하나의 꽃대에서 여러개의 꽃을 피우는데

한 송이가 하루를 살고 자기몸을 돌돌 말아.

그러면 그 다음 날 다른 한 송이가 이어서 펴.


자연은...

오래 피는 것이 아니라

오래 이어가더라...


만약 범부채가 모든 꽃을 같은 날 피웠다면

가장 화려한 날은 하루였을거야.

하지만 범부채는

화려함을 포기하고 시간을 선택했어.

한 송이를 보내고 다음 송이를 열고.

생명을 그렇게 계승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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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1,2,3> 하나의 꽃대에서 여러개의 꽃이 피는 범부채. 하나가 하루만 피고 다음날 돌돌말면 그 옆의 꽃이 핀다. / 우> 부레옥잠


범부채가 '차례'의 질서를 보여준다면

플록스는 '함께'의 질서를 보여줘.


처음에 핀 한송이가 다음, 다음을 이어 마지막 꽃이 필때까지

버티며 기다려.

그렇게 한송이는 한무리가 돼.


수십 송이가 함께 피어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아.


혼자 아름답지 않고
함께 아름다워.


조화는
가장 큰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의 꽃이 되는 것이라고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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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록스. 하나가 먼저 피고 마지막이 필 때까지 기다려 쿤 무리의 하나가 된다.


비비추는

이제 꽃대를 다 세우고

옆으로 보라꽃을 하나씩 밀어 올리고 있어.

봄부터 수개월간 계속 잎을 펼치고 꽃을 기다린단다.

꽃보다 먼저 받침이 자라지.


자연은 늘 결과를 위해
준비에 얼마나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는지를
비비추가 가르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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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추. 꽃받침을 먼저 오랜 시간 만들고 한번에 꽃대를 밀어올리고 꽃을 피운다


엄마가 '엄마의 유산'을 쓴 후 엄마들의 편지가 계승되고 있잖아.

처음엔 '계승'이라는 단어를 글자로만 알았던 것 같아.

지식을 읽고, 철학을 읽으며 배웠지

그런데

이제 마당이 엄마를 가르치고 있어.


엄마의 마당은

사유의 스승이야...


계승은

오래 남는 것이 아니더라.

먼저 피는 것도 아니더라.
다음 꽃이 필 자리를 남겨 두는 일이더라.


플록스는 함께 피는 방식으로,
범부채는 차례로 피는 방식으로,
부레옥잠은 하루만 피더라도 이어가는 방식으로,
비비추는 기다리며 준비하는 방식으로

계승해 나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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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루크베키아는 한달이 지나도록 꽃이 그대로야.

엄마는 모든 꽃이 그렇게 오래 피는 줄 알았어.


하지만

범부채나 부레옥잠과 같이 계속 피고 지며 이어가는 꽃도 있고

플록스처럼 기다리며 '함께'를 만드는 꽃도 있고

비비추처럼 준비를 끝까지 마친 후 꽃이 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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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전에 핀 꽃이 여전한 루크베키아.


결국, 꽃도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더라.

그래서 엄마는

그 꽃들 사이에서
비로소 엄마가 왜 엄마의 유산을 쓰고 있는지를 더 깊이 알게 됐어.


엄마가 오래, 계속 쓰는 것이 아니라

바통을 넘겨가며 다음 엄마, 또 다음 다음 다음...

이렇게 이어가는 계승.


결국, 계승은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더라구.

사람도 꽃처럼 오래 피는 존재가 아니라,

다음 사람이 피어날 계절을 남기는 존재인 것 같아.


엄마의 역할을 채우고

그 다음 주자를 위해

바통을 제대로 넘겨주는 것.

그것이

계승을 위한 엄마의 몫이더라.


아이야.

사람은 오래 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어 피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지도 모르겠어.

자기 계절을 끝까지 살아내고,

다음 계절이 올 자리를 남겨주는 것.

자연은 그것을 꽃이라 부르고,

사람은 그것을 계승이라 부르더라.

- 2026. 07. 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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