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오늘 미사에서도 이 어르신의 노래는 귀에 크게 들렸어.
너무 가는 목소리에 두 키 정도를 높이 올려 부르는데다 박자도 자꾸 어긋나서 성가대의 소리는 지워지기 일쑤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모두가 함게 기도문을 읊는데 역시 이 분의 목소리는 모두의 중저음보다 한옥타브 높아서 선명해.
심하지는 않지만 다소 지능이 낮아보이는 이 분은 타인 속의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목청껏 노래하고 기도해. '평화의 인사를 나눕시다.'는 신부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활짝 치아를 드러내며 '평화를 빕니다.' 큰소리로 인사를 나누셔. 그 분 주변이 더 밝게 느껴지는 것은 엄마의 착각일까?
봉헌시간에는 또 다른 어르신이 2층에서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성전 앞으로 걸어나오셔.
눈만 감겨 있을 뿐 키도, 보폭도 크시단다.
그리고 오늘은 노랑색으로 등장하신 어르신.
지난 주는 빨강, 그 전주엔 초록, 파랑, 보라, 분홍. 모자부터 신발까지 항상 같은 색으로 입으시는, 아주 작은 체구의 할머니. 하지만 결코 말이나 행동에선 화려함이 없으셔.
성전의 맨 앞줄엔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앉아 계신단다.
미사중에 일어나야 할 때에도 앉아 계시고 성체를 모실 때도 잠깐 의자에서 엉덩이만 살짝 들 뿐이지만 굽은 허리보다 더 깊이 허리를 숙이신단다.
여기 시골의 작은 성당에서 매주 미사를 드리는 엄마에게
이분들은 미사시간을 더 깊은 곳으로 이끄셔.
지능이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눈이 보이지 않지만,
허리가 ㄱ자로 굽었지만,
외양적으로 너무 튀지만.
이들은
목청껏 노래하고,
온전히 자세를 낮추고,
치아를 드러내어 활짝 웃고,
자기 모습 그대로 자리에 서 계셔.
이상한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의 결핍을 의식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눈이 보이지 않아도 주저하지 않고,
몸이 불편해도 움츠러들지 않고,
노래가 어긋나도 망설이지 않아.
마치 자신의 부족함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 여기는 사람들 같아.
그래서일까.
그분들을 보고 있으면
결핍은 몸에 있는 것이지
영혼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단다.
사실, 결핍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자체부터
엄마는 편견의 잣대가 이미 세워져 있는 것이지.
몸은 불편할 수 있어.
몸은 늙을 수 있고
몸은 남들과 다를 수 있어.
하지만 영혼은
그보다 훨씬 크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분들이 미사 내내 보여주셔.
엄마는 가끔 그분들을 바라보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머문단다.
존경도 아니고,
연민도 아니고...
사실
부러움에 가까워.
그분들의 신앙심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자유로움이 부러운 것이겠지.
있는 그대로 노래하고,
있는 그대로 울고,
있는 그대로 웃고,
있는 그대로 신 앞에 설 수 있는 마음.
매주 그분들을 보며 생각한단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은
몸의 온전함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지능도,
시력도,
곧은 몸도 아닐 거라고.
영혼의 탁도.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영혼이 엄마보다 맑다는거야.
아이야,
엄마는 부끄럽게도 이렇게 뒤늦게 알았어.
항상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애썼고
너희들도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바랐지.
엄마가 생각한 뛰어남은 결핍을 감추고
남보다 나은 사람이었어.
그런데 이제 아니야.
'뛰어난 사람'이란
다른 사람보다 잘 하는 게 아니었어.
어떤 모습의 자신이라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자기 자리에 당당히 설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런 모습의 다른 사람들도 품을 줄 아는 사람.
몸의 온전함보다 영혼의 맑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
엄마는 이제
이런 분들이 참 아름답게 보여.
- 2026. 06. 1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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