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엄마는 어제
오랜만에 엄마들을 많이 만났어.
엄마의 바카라 [엄마의 유산]을 읽은 1분이
주변의 10분에게 바카라을 권했고
그 10여분이 모여서 엄마를 초대한거야.
"노트북, 빔프로젝트, 칠판. 뭘 준비할까요?"라는 물음에
그저 준비할 것은
서로를 믿는 마음,
존중하는 자세만 가지고 만나자고 했지.
강의도 아니고
북콘서트도 아니고
그냥 수다도 아니고
정체성이 약간 모호한 상태에서
엄마는 그냥 흐르는대로 가기로 했거든.
편하게.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자.로.
운동화에 편한 티와 바지, 배낭을 메고 갔어.
20여분 일찍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엄마를 아주아주 반갑게 맞아주시며
꼭 끌어안아 주시더라.
그리고.
놀랐어.
바카라상마다 엄마의 바카라이 펼쳐져 있고
바카라마다 형광펜으로, 포스트잇으로 공부한 흔적들에
울컥하더라구.
엄마가 오늘 네게 전하고 싶은 것은
감동적이더라, 울컥하더라, 기분 좋더라가 아니야.
엄마가 이런 초대에 임하는 마음이 바꼈다는 거야.
그리고
엄마는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예전같았으면 설레이고 들떴을거야.
무슨 옷을 입을까,
어떤 말을 할까.
많은 추측과 예상들로 결과를 만들러 갔을거야.
그런데 이번엔 아니더라.
내면에서 뭔가 떠미는 느낌이 강했어.
어제는
그냥 가야 해서 갔어.
가치를 보는 눈들과 마주하고 싶었어.
엄마는 그간
동쪽에서 뿌린 씨가 서쪽에서 싹이 난다는. 말을 많이 했었어.
머리로, 그리고 몇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거든.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 엄마를 떠밀었다고 할까...
실제 그래.
작년에 버스정류장 근처에 핀 수레국화가 너~무 이뻐서
일부러 매일 꽃씨를 받아서 마당 왼쪽 소나무 아래에 뿌렸거든.
그런데 봄이 됐는데도 하~~나도 싹이 안 나더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느 날, 깜짝 놀랐어.
마당 오른쪽 끝, 두룹 옆에서 수레국화 한송이가 혼자 피어 있는거야.
놀랐다! 정말!
거기엔 씨를 뿌린 적이 없거든.
물론 새가 물어다 놨을 수도 있고 바람에 날려갔을 수도 있고 원인이야 있겠지.
엄마는 소나무 밑에만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정성을 다했어.
작년 여름끝자락에 거의 매일 씨를 받아서 뿌리고 물 주고
봄이 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쳐다봤어.
놀랍게도
쳐다보는 눈 뒤쪽, 마당 오른쪽 끝으로
한 송이가, 바라보는 눈길없이 홀로 피어있더라
정말 상상도 못했어.
그 이후 소나무 아래에서도 수레국화가
한뺨크기로 자라고 있더라구.
씨를 뿌리는 사람의 일은
꽃을 피우는 게 아니더라.
꽃은 사람의 손길을 떠나서
자연이, 세상이 피우더라.
사람은 씨를 뿌린 곳에서 열매를 기대하지.
그런데 자연이 그게 아니라고 말해줬어.
뜻이 가는 길도 그렇지 않을까.
묵묵히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서 싹은 나는 걸 자연이 사실로 보여줘.
오늘의 모임이 엄마에겐
마치 홀로 핀 수레국화같았어.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매일 글을 써서 발행했고
엄마를 찾아온 이들과는 정성을 다해 대화를 나눴어.
엄마를 초대한 그 1분은
엄마의 오래된 독자지만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는 아니었어.
엄마가 출간했다고 직접 말씀드린 적도,
바카라을 보내드린 적도,
주변에 알려달라고 말씀드린 적도 없었어.
엄마는 원래 그런 성격이잖아.
그런데
2년이 넘도록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던거야.
그 시선을 지닌 1분이 10분이 되어 나타난 것이구.
부채질하느라 팔이 아파도 계속 했어.
그런데 어느 날,
부채질도 해주지 않은 쪽에서 미풍이 불기 시작한 거야.
바람이, 바람을 타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바람을 일으킨거야.
직접 연결이 없었지만
세상의 손길이 있었지.
그 미풍은
순풍이야.
아이야.
그저 해야할 그것에 지금의 너를 쏟아라.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냥 해라.
일상의 그저 작은 행위라도 계속 쌓아 봐.
동쪽에서 씨를 뿌려도 서쪽에서 싹이 튼단다.
작은 기척은 큰 기적으로 이어진단다.
소나무 아래에 뿌린 씨가
두룹 옆에서 꽃을 피우는 것처럼,
정성을 쏟은 일이
늘 예상한 자리에서 네게 얼굴을 보여주지는 않아.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꽃이 피느냐가 아니라
꽃이 피기까지 네가 해야 하는 그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
세상은 누군가의 눈을 통해 네가 쌓아가는 시간에 응답을 준단다.
마치, 어제의 그 분처럼 말이야.
엄마는 그냥 매일 썼을 뿐인데 누군가는 계속 보고 있었던거야.
세상이 필요로 하는 뜻은
세상의 힘에 의해
예상할 수 없는 어떤 이유에 의해서 실체로 드러나.
왜 여기서 애썼는데
저기서 현상이 드러나?
그치?
세상은 무질서하지.
아이야,
여기에 뿌렸는데 저기서 싹이 나듯
여기서 애썼는데 저기서 보상이 주어지기도 해.
그 무질서의 이면에는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철저하게 계산된 질서가 있더라구.
세상은 한번도 무질서한 적이 없었어.
우리가 그 질서를 보지 못할 뿐이지.
그런 질서에 의해서
네가 품은 뜻, 행한 사소한 행동의 반복이
네 예측 밖에서 길을 내는 것이란다.
어제의 모임은
무질서로 보이던 세상속 선명하고 치밀했던 질서의 증거였고
동쪽에서 팔이 아프도록 부채질한 이유를 알게 해준
하나의 사건이었어.
사랑한다.
- 2026.6.1.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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