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오늘도 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웃돈다.
나는 여름이 참 싫다. 대기가 고온다습해지면 숨을 쉬는 것조차 아득해진다. 한반도 남동쪽 바다 너머 북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습기를 잔뜩 머금은 더위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밀려드는 기분이다. 나의 조상은 아마도 추운 북쪽에서 내려온 북방계인가 보다. 추위도 싫지만 그래도 겨울 추위는 더위에 비해 견딜만하다.
점심으로 시원한 오이냉국이나 해 먹을까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뿔싸, 몇 개 남은 대파가 벌써 물러져 있었다. 이 지독한 더위 앞에서는 냉장고 속도 안전지대가 아닌 모양이다. 물컹하게 녹아내린 껍질을 벗겨내고 씻어내니, 얇고 찌그러진 속살만 겨우 남았다.
손끝에 무른 대파의 감촉을 느끼며 씻어내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와 아버지의 대파가 생각났다.
겨울이 시작되어 한겨울 버틸 김장을 하던 날이면 커다란 비료 부대에 대파를 가득 담아 챙겨 주시던 아버지~
대전 우리 집 옆에는 열 평 남짓한 제법 큰 텃밭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던 엄마는 우리에게 외치곤 하셨다.
"OO야~ 밭에 가서 파 두 대공 뽑고, 매운 고추 세 개만 따와라."
오늘 저녁은 아마도 된장국을 끓이시려는가 보다. 우리는 야채를 사러 마트에 가는 대신 대문을 열고 밭으로 달려갔다. 부지런한 두 분의 손길 아래 예쁘게 자라던 온갖 채소들. 그 텃밭에서 나고 자란 것들이 쑥쑥 자라던 우리 육 남매를 키워주었다. 매일의 밥상이, 학교에 싸 가던 도시락 반찬이 모두 그 작은 밭에서 나왔다.
언 땅이 녹고 냉이와 풀들이 고개를 들면 부모님은 상추와 아욱을 심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밭의 식구들도 달라졌다. 한여름엔 옥수수를 따서 쪄 먹고, 추석이 지나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어느새 배추와 무가 푸릇푸릇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밭 한쪽 귀퉁이에는 초록빛 대파가 반듯하고 정갈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채마밭의 야채들은 김장 재료로 변신했다. 11월 말쯤 드디어 거사인 김장날이 잡혔다. 배추와 무가 뽑혀 나간 밭은 조금씩 휑해졌다. 엄마는 딸들과 며느리를 모두 소환하였고, 대략 일곱 집이 겨우내 먹을 어마어마한 양의 김치를 담갔다. 각 집으로 돌아갈 커다란 김치통들이 마당에 가득 쌓이고 하루 종일 이어진 노동이 끝날 무렵, 아버지는 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대파를 뽑기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대파를 커다란 비료 부대에 한 자루씩 담아, 김치통 옆에 나란히 줄을 세워놓으셨다.
고된 일을 마치고 찌뿌둥한 몸으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 아버지는 대파가 담긴 비료 포대를 차 트렁크에 하나씩 실어주며 당부하셨다.
"집에 가거든 큰 화분에 옮겨 심어 베란다에 두어라. 그러면 겨울 내내 싱싱하게 잘 먹는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밀리는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차 안은 금방 담은 강렬한 김치 양념 냄새와 매운 대파 향으로 가득했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올라오며 나는 철없이 속으로 투덜거렸었다.
'필요할 때마다 슈퍼 가서 사면 되는데, 이 많은 걸 어디다 두라고…'
익으면 찌개라도 끓여 먹는 김치와 달리, 아버지가 뽑아 준 대파 자루는 솔직히 다루기 곤란한 숙제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절반은 물러버려 먹지 못하고 버렸다. 아버지에게는 잘 먹고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아파트 베란다에 방치되기 일쑤였다.
이제 그 채마밭은 없다.
밭과 함께 우리의 추억이 담겨있던 동네도 재개발되어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비로소 알겠다.
자식에게 무엇이든 더 얹어주고 싶었던 마음을.
가장 좋은 것을 아껴 자식 몫으로 따로 떼어놓던 부모의 그 기꺼운 마음을.
하찮게 여겨 죄송합니다.
그 진한 사랑을 귀찮아해서 한없이 미안합니다
푹푹 찌는 여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