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

by운촌



요즘은 TV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일이 부쩍 줄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삶 깊숙이 자리 잡기 전, TV는 늘 우리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창이었다. 조간 신문을 펼쳐 TV편성표를 찾아보며 어느 시간에 어떤 프로가 방영되는지 찾아보기도 했었다. 여고생 시절 일찍 자라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으며 숨죽여 보던 『로마의 휴일』같은 <주말의 명화>나, 지금 보면 다소 어색하지만 따뜻했던『무진 기행』같은 <TV 문학관> 프로그램은 나의 사춘기 시절 목말랐던 감성들을 채워준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었다.


그 외에 즐겨 보던 프로그램은 <동물의 왕국>이었다.

먹고 먹히는 숨 막히는 야생,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생물들의 생존기를 숨죽여 바라보며 나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매료되곤 했다.

내 친구는 아프리카 초원의 지평선에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동물 무리를 눈앞에서 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가 이번 여름 휴가에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며 버킷 리스트 하나를 지웠다.

요즘은 과학 크리에이터들이 정교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덕분에, 그 무궁무진한 자연의 비화를 한층 더 쉽게 접하게 된다.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얼마 전에 다시 만났다.


바퀴벌레를 좀비로 만들어 번식을 하는 보석말벌 이야기~


그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자연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라.


보석말벌은 이름처럼 몸 전체가 에메랄드빛 금속성 광택으로 빛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곤충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치밀하고 잔혹한 생존 방식이 숨어 있다. 보석말벌은 우리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바퀴벌레를 사냥해 ‘좀비’로 만든 뒤, 알을 낳을 숙주로 삼아 번식한다.


자신보다 두 배나 큰 바퀴벌레를 제압하는 과정은 거의 치밀한 작전에 가깝다. 교미를 마친 암컷 말벌은 먼저 바퀴벌레의 가슴을 찌르고 앞다리를 일시 마비시킨다. 그리고는 뇌 신경절에 정확히 침을 꽂아 의지를 통제하는 신경독을 주입한다. 독에 당한 바퀴벌레는 스스로 움직일 수는 있지만, 도망치려는 자발적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가 된다. 말벌은 바퀴벌레의 더듬이마저 잘라내고는 마치 고삐를 쥔 것처럼 미리 파놓은 자신의 굴로 인도한다.

굴 안으로 끌려 들어간 바퀴벌레의 복부에 알 한 개가 얹히고 나면, 말벌은 굴 입구를 낙엽과 자갈로 꼼꼼히 봉인하여 은폐시킨다. 이로써 완벽한 제의의 공간이 완성된다.

며칠 후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살아있는 바퀴벌레의 체액과 내장을 먹으며 자라난다. 이때 애벌레는 바퀴벌레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생명을 유지해 신선함을 잃지 않도록, 생명 유지에 치명적인 장기는 가장 나중에 먹는 치밀함을 보인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거대한 희생양의 몸속에서 고치를 틀고 성숙한 말벌은, 마침내 껍데기만 남은 바퀴벌레를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영상을 보는 내내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초원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어린 사슴이 포식자의 이빨에 뜯겨 나가는 장면조차 이토록 잔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흔히 모든 탄생은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이 인정사정없는 생명의 이어짐은 그 징그럽던 바퀴벌레마저 가엽게 만들 만큼 비장함을 품고 있었다.


새로운 생명의 찬란한 탄생 뒤에 이처럼 차갑고도 완전한 파멸이 존재한다. 자연은 인간이 정의하는 도덕이나 선악의 기준을 초월해 있다. 무자비할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그 번식의 순환 속에서, 나는 생명이라는 숭고함이 거느린 또 다른 얼굴 바로 죽음과 공존하는 자연의 서늘한 서사를 본다.


어떤 것이 사라짐으로

다른 것이 살아지는

자연의 법칙!









채운의 의 <어떤 죽음>중에서 운촌 쓰다








어떤 죽음


채운



이는 오래전 미래

보석말벌이 바퀴벌레 몸속에 알 스는 순간

새 생명에게 바쳐진 신선한 제물

제의를 위한 죽음의 푸가는 시작되고


이는 파멸의 과거완료

시나브로 살아지거나 사라지는 이야기

죽을 수도 마음대로 살 수도 없이

거룩한 식사가 종료될 때까지


이는 오래된 현재이며 진행형인 과거

바스러지는 껍데기로 완결되는 죽음

이는 서서히 목숨 파 먹히는

죽음에 관한 처음이야기


이는 바로 자연사

오래전 미래에 이미 다 쓰인

마감과 마침에 관한 문법

죽음의 공식은 반쪽짜리 허구였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