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빠져 본 적이 있는가?
평생을 살면서 우물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우물 안에서 고개를 들어
파랗고 동그란 하늘을 본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몇 살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학교에 가기 전이었고, 앞자락에 감물이 든 원피스를 입었을 때이니 예닐곱 살 무렵이다. 그즈음의 여러 사건들은 기억이 또렷하다. 내가 태어나서 4학년 여름까지 자란 우리 동네의 길과 집의 전체 모습도 그림을 그리라면 그릴 수 있다.
과자와 라면 등 몇 가지 생필품을 팔던 가게를 했던 우리 집이 동네 제일 앞에 있었고, 장독대와 닭장, 토끼장이 있던 뒤뜰 담장 너머에는 마당에 개미집이 많았던 송자네 집, 그리고 그 뒤엔 대문이 엄청 컸던 병춘이네 집이 있었다.
우리 동네엔 우물이 두 개 있었다.
큰집 가까이에 있던 깊고 큰 우물(옆엔 미나리밭이 있었고 우물 위엔 지붕도 있었다)은 우리 집에서 동선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비슷한 거리지만 우린 냇가 근처 방앗간 옆에 있던 우물을 사용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우물은 비를 막아주는 지붕도 없었다. 특별한 정수 장치도 없었던 것은 당연하고 매번 물을 끓여 먹지도 않았는데도 우리가 병에 걸리지 않고 잘 살았던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요즘처럼 위생에 유난을 떨고, 조금이라도 상한 음식을 먹거나 찬 것을 먹으면 바로 탈이 나는 데 말이다.
여름이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가물었다.
논바닥도 마르고 냇물도 마르니 그리 깊지 않은 우리 우물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줄어 있었다. 내 가슴께까지 오는 우물턱으로 고개를 밀어 넣고 내려다보니 우물 바닥의 돌도 보이고, 내 얼굴이 어른거리는 우물의 물은 그리 깊지 않았다.
내가 무얼 하려고 우물 물을 길어 올리려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동생 채운과 함께 우물가에서 놀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옆에선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열무 같은 야채를 씻고 계셨다. 내가 물을 길어 올리려고 두레박 줄을 아래로 내리니 두레박이 물에 닿지 않는다. 물이 많이 줄어 두레박에 물을 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내 딴엔 머리를 썼다.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낑낑거리며 그것들을 끌어다가 우물턱 중간 높이까지 쌓아 올렸다. 그런 후에 내가 돌 위에 올라가 두레박 끈을 내리니 드디어 물을 한가득 담을 수가 있었다. 끈에 반동을 줘서 끝에 매달린 두레박에 물을 채우는 요령을 어린 나이에도 터득하고 있었다.
자, 이제 힘껏 두레박 끈을 당겨 올리고, 차례차례 손을 바꿔가며 두레박을 위로 올리면 된다.
바로 힘껏!
위로 두레박을 당겼다.
그러나!!!!!!!!!! 이런!
작용 반작용의 법칙!!!!!!!!!
두레박도 나를 당겼다.
같은 크기의 힘으로
방향은 반대로!
내가 돌을 쌓아 우물턱 안쪽으로 우물 속을 향하여 상체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두레박이 위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두레박이 나를 우물 안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우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내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찰랑거렸고
정말로(진짜로) 동그란 하늘이 보였다.
내가 우물에 빠진 것이다.
난 있는 힘을 다해 동그란 하늘을 보고 외쳤다.
엄마! 엄마!! 엄마아아아!!!
잠시 뒤에 열무를 씻고 있던 동네 아주머니와 동생의 얼굴이 동그란 하늘 안쪽으로 나타났다. 그러고 얼마나 흘렀을까? 동생 채운이 데리고 온 놀란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의 얼굴이 동그란 하늘 안쪽으로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우물 밖으로 나왔을까?
난 아버지가 내려준 두레박에 올라타서 선녀처럼 동그란 하늘을 향해 위로 올라왔다. 신기한 것은 내가 하나도 안 다친 것이다. 떨어지면서 우물 벽에 튀어나온 돌이나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을 텐데도 상처 하나 없었다. 멀리 외출했다 돌아온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놀란 어린것을 진정시키느라 청심환을 먹었는지 참기름을 한 숟가락 먹었는지 어른들이 뭔가를 내 입에 넣어주셨다.
내가 빠졌던 우물의 물은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 이후로도 계속 우리 가족의 밥을 짓고, 마른 목을 축이고, 씻기 위해 길어 올리던 물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우물 바로 옆에 있던 냇물과 하나가 되고 또 다른 냇물들과 만나 큰 강에 합쳐져 흘러 흘러서 바다로 갔을까?
그 여름 우물 속에 찰랑거리던 물분자들은 어쩌면 댐이 들어서며 호수가 되어버린, 지도에서조차 지워진 어느 서글픈 마을의 언저리로 흘러들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황망한 그곳에서, 내가 마시고 나를 품어주었던 그 우물물들이 지금은 하찮은 갈대들을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우물 바닥에 떨어지고도 머리 하나 부딪히지 않고 밖으로 나왔던 기억.
어쩌면 나에게도 어린 날부터 삶을 붙잡아 준 모질고도 단단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채운의 시를 읽으며 문득 얼음장 밑으로 푸른 힘줄을 돋우는 갈대의 부동의 힘을 떠 울려 본다.
차가운 허허벌판에서 서로 뭉쳐 흔들리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갈대들처럼,
일곱 살, 우물 속에 빠졌던 계집아이도 그렇게 짱짱한 목숨을 품고 오늘까지 걸어왔나 보다.
어릴 때는 우물 속 동그란 하늘 같은 좁은 고향 동네가 전부였지만,
자라나 마주한 세상에서
나는 홀로 서 있지 않고 한데 뭉쳐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어른의 삶을 배웠다.
그리고 삶의 벌판에서 갈대들처럼 더불어 흔들리며
여기까지 잘 살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