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형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얼굴에 마취크림을 잔뜩 바르고 누워있다.
잠시 후에 찾아올 엄청난 통증을 기다리면서
벌써부터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으으~ 아프다.
정말 아프다.
각오는 했지만
촘촘한 바늘들이 내 얼굴을 지나갈 때마다 엄청난 통증이 덮친다.
하지만 어쩌랴,
견뎌야 한다.
곧 있을 작은아들의 결혼식 날 혼주로서 환하게 빛날 내 모습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대가는 기꺼이 치러야 한다. 거금을 투자하고 통증을 견디며 예뻐지고 싶다는 중년 엄마의 욕망을 꺼내 본 참이다.
작은아들의 혼사를 앞두고,
찾아와 줄 고마운 손님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환하고 고운 모습을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K-뷰티와 대한민국 피부과 의술이 세계 최고라는데,
나도 그 눈부신 의학 기술의 혜택을 누려보기로 한 것이다.
시술대에 눕기 전,
공부하듯 열심히 검색해 둔 리쥬란의 원리를 떠올려 본다.
내가 받으려고 하는 리쥬란 시술은
연어의 DNA를 주입하여 피부 자체의 재생 능력을 끌어올리는 스킨 부스터의 일종이다.
연어의 DNA는 인간의 염기 조성과 매우 유사하여 피부에 주입했을 때 면역 반응이나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안전한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PN(폴리 뉴클레오타이드)이 피부 진피층에 들어가면 피부의 세포에게
"얘들아,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일해! 부지런히 콜라젠과 엘라스틴을 합성해" 하고 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합성된 물질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잔주름이 펴지고 젊은 피부로 만들어 주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신통방통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안티 에이징은 모든 인류의 소망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신체적인 노화와 질병은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 얼굴이 치러야 할 엄청난 통증이 문제다.
리쥬란은 피부 진피층에 직접 주사하기 때문에 시술 시 통증이 꽤 강한 편에 속한다.
`고생했다. 아픈 거 잘 참았어~`
시술을 마친 친구가 웃으며 말한다.
의사인 친구 병원을 요즘 얼굴 시술 때문에 자주 찾고 있다.
`아이고, 예뻐지기 참 힘들다!`
폭풍 같은 시간이 그래도 잘 지나갔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아마 올록볼록 엠보싱 화장지처럼 변해 있을 것이다.
주삿바늘이 촘촘히 지나간 자리를 진정시키며 문득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 한구석에서 빛바랜 바카라장 속 위인들의 노년 사진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는 특이하게도 도서관에서 인류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다윈이나 니체 같은 인물들의 노년 사진을 찾아보는 걸 좋아했다.
백발의 머리와 함께 눈가와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을 보며,
치열한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멋진 훈장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날의 나는 그 세월의 흔적을 짐짓 동경하기까지 했었다.
당시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들의 화려한 업적이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엔 인생이 담겨있었다. 눈가와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 그 세월의 굴곡이야말로 그들이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가장 아름다운 훈장이자 삶의 무늬처럼 보였다.
어린 날의 나는 그 깊은 흔적들을 동경했었다.
그 동경을 현실에서 만난 것은 아흔이 넘은 엄마 얼굴을 마주했을 때다.
모진 세월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삼켜온 속울음이 새겨놓은 엄마 얼굴의 깊은 주름살.
동생 채운도 여든 살의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며 썼던 시처럼,
엄마 얼굴의 주름은 해묵은 백자 찻잔에 뉴런처럼 뻗어 있는 실금들을 닮았다. 황토 가마의 고온을 견디느라 비어져 나온 백자의 신음처럼, 엄마의 얼굴엔 삶의 곤고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 주름 중 몇 개는 아마도 둘째 딸 나로 인한 것일 수도 있을게다.
가정 형편 빤한데 수학의 정석 사달라고 조르던 일,
수학여행 갈 때 예쁜 옷 사달라고 조르던 일,
반찬이 맘에 안 든다고 도시락을 그냥 놓고 등교했던 일......
철딱서니 없던 여고생 둘째 딸은 그렇게 엄마 얼굴에 근심의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 오늘,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나 역시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세월의 파도를 맞아왔고,
이제는 장성한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위인들의 주름에 감탄하고 엄마 얼굴의 흔적에 가슴 아파했던 내가,
정작 내 얼굴에 찾아온 세월을 1밀리미터라도 붙잡아두고 싶어 주삿바늘을 견디고 있다니!!!
인간의 마음이란 참 이렇게 간사하다.
하지만 이 통증은 단순히 젊어지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다.
아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며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본다.
엄마가 새겨놓은 생의 무늬를 이어받아,
나 역시 내 삶의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늬를 그려나가는 중이다.
오늘 내가 견딘 통증이 지나간 자리에,
곧 다가올 기쁜 날의 환한 햇살이 가득 스미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