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찾아오면 나는 올갱이 된장국이 먹고 싶어진다.
맑은 개울물에 고개를 숙이고 올갱이를 잡고 싶어진다
올갱이는 충청도와 강원도 등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로, 다슬기가 표준어이다.
올갱이는 자갈이나 바위에 낀 초록색, 갈색 이끼를 갉아먹고 살거나 물속에 가라앉은 낙엽이나 동물의 사체, 유기물 찌꺼기 등을 먹어 치워 수질을 깨끗하게 정화해 준다. 올갱이의 이런 먹이습성으로 하천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청소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다슬기가 지나간 자리의 물과 돌이 깨끗하다.
시골 조무래기들의 여름 놀이터는 동네 냇가이다.
우리 고향인 충청도 시골 마을 앞에는 홍골이라는 제법 큰 천이 있었다.
엄마들의 빨래터이기도 하고, 동네 꼬맹이들의 여름 놀이터이기도 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또는 바카라보따리를 집에 던져두고 냇가에 모여 놀았다.
물에서 놀면 쉬이 배가 고파진다. 해가 뉘엿뉘엿 안산 너머로 붉은 꽃물을 들일 때쯤이면,
배고픈 동네 조무래기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 자매에게는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그 어떤 놀이보다도 재미있는 바로 올갱이 잡기가 시작된다.
다슬기는 주로 물살이 세고 산소가 풍부한 깨끗한 하천의 바위나 자갈 틈에 무리 지어 산다.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단단한 발을 이용해 돌 표면에 강력하게 흡착하여 산다. 올갱이는 민물에 사는 연체동물로 복족류에 속한다. 낮에는 물고기나 새, 사람과 같은 천적의 눈을 피하고, 강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 주로 큰 돌 밑이나 자갈 사이에 숨어 지낸다.
그래서 올갱이를 잡으려면 돌맹이를 하나씩 뒤집어야 한다. 돌을 뒤집었을 때 토실토실한 올갱이가 붙어있으면 그것을 돌에서 잘 떼어내면 된다. 어떤 돌들은 꽝!인 경우도 많았다.
종아리를 간질이며 흐르는 물살을 느끼며 허리를 굽혀 돌을 뒤집는 우리 자매는 그 어느 순간보다 진지한 사냥꾼이었다.
낮에는 돌 밑에 숨어 있다가, 해가 지면 활동을 시작하는 올갱이의 습성 때문에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이제 돌을 뒤집을 필요도 없다. 어둑어둑해지면 올갱이들이 숨어 있던 돌 밑에서 나와 돌 위나 모래밭 위를 기어 다니며 본격적으로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하나둘 모습이 나타나면 우리들의 손놀림은 바빠진다. 낮동안 돌밑에 은신해 있던 올갱이를 잡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이 분주해진다. 우리의 손놀림도 바빠진다.
그날은 유독 올갱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물속 자갈마다 토실토실한 올갱이들이 까맣게 붙어 있었고, 마음이 급해진 언니와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올갱이를 줍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그만 두 손으로 감당하기엔 올갱이가 너무 많았다. 주머니도 없고 마땅한 소쿠리도 가져오지 않은 상황, 다급해진 언니 눈에 들어온 것은 물에 들어오기 전 가지런히 벗어놓았던 자신의 검정 고무신이었다.(그 시절 우리들의 신발은 대부분이 검정 고무신이었다)
검정 고무신은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신고 다녔는지 모를 만큼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포장도 되지 않은 시골길은 온통 울퉁불퉁 작은 돌들이 많았다. 충격흡수 제로인 얇은 밑창의 고무신을 신은 어린 발바닥은 지금의 에어나 미드솔이 충격을 흡수해 주는 운동화에 비하면 매우 아팠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고무의 특성상 바람이 통하지 않아 맨발로 고무신을 신은 여름에는 땀이 차서 미끈거렸을 것이고, 보온 효과가 전혀 없어 겨울에는 땅의 냉기가 그대로 전달되어 얼음장이었을 것이다.
"여기 있다!" "여기 또 있다!" 하며 언니는 정신없이 잡은 올갱이들을 자신의 고무신을 간이 소쿠리 삼아 냇물 위에 둥둥 띄워놓고, 두 손으로 올갱이를 주워 담기 시작했다. 난 언니의 놀라운 솜씨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고무신 소쿠리까지 준비하여 기고만장하던 언니의 모습도 잠시, 올갱이 잡기에 너무 몰입했던 탓일까. '아! 어떡해!!!'
하는 비명과 함께 언니의 고무신 소쿠리가 중심을 잃고 물살을 타며 저 멀리 유유히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고무신! 내 올갱이!"
언니는 맨발로 첨벙거리며 쫓아갔지만, 야속한 고무신은 잡은 올갱이를 물속에 다 쏟아버린 채 저 멀리 흘러가 버렸다. 그날 저녁 한쪽 발에만 고무신을 신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언니는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을까? 다음날 학교는 어떻게 갔을까?
미소가 지어지는 그 여름날의 에피소드다.
여름이면 근대와 아욱을 팍팍 넣은 올갱이 된장국을 자주 먹었다.
마당에 커다란 멍석이 깔리고 배부르게 올갱이국에 밥을 말아먹고 나면, 진짜 하이라이트인 올갱이 빼먹기 시합이 시작된다. 이쑤시개 같은 세련된 도구는 필요 없다. 마당 울타리에 자라고 있는 탱자나무 가시면 된다.
달콤 쌉싸름한 냄새가 나는 올갱이를 손에 쥐고, 초록빛 탱자나무 가시 끝으로 살점을 콕 찔러 돌려 빼면, 쫄깃하고 들큰한 살점이 쏙 이끌려 나왔다. 끊어지지 않고 내장까지 완벽하게 한 번에 빼내는 사람이 승자였다. 된장국에 담겨있던 올갱이를 한참 빼먹다 보면 손이 쪼글쪼글해지곤 했다.
올갱이를 잡으며 여름 냇가에서 놀고
탱자나무 가시로 올갱이 살점을 빼먹던
아무 걱정 없던 어린 날의 여름밤
우리 머리 위로는
파르스름한 올갱이 살점 같은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며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