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신각신

by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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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형님은 도대체 왜 그러셨대? 인물만 좋으면 뭐 하냐고."


엄마의 잔소리 레퍼토리는 오십여 년이 지난 일도 마치 엊그제 일인 양 생생하다.

옛날이야기를 나누던 두 분은 무슨 이야기 끝에, 꺼내지 말아야 할 옛 기억을 또 들추신다.

주인공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큰아버지다.

큰아버지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호인이자 미남이었지만,

수려한 외모만큼이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던 분이었다.

그리고 그 뒷감당은 늘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몫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딱 한 번 우리 집에도 송아지가 있었다.

엄마는 큰맘 먹고 장에 가시는 아버지에게 암송아지 한 마리를 사 오라는 미션을 주셨다.

아마 아버지는 처음으로 송아지를 사보셨을 것이다.

참으로 순하고 예쁘게 생긴 송아지였다.


두 분은 송아지 키우기 프로젝트를 계획하며 얼마나 꿈에 부풀었을까.

부지런히 키워 암소가 되면 송아지를 낳게 해야지.

한 마리, 두 마리 늘어날수록 살림도 늘어나겠지.

육 남매 옷도 새로 사 주고, 중학교도 보내야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도시로 유학을 보내야지.

달콤하고 멋진 꿈을 꾸며 지극정성으로 송아지를 키우셨다.

송아지도 잘 먹고 토실토실 살이 올랐고, 엄마는 연일 싱글벙글하셨다.


송아지가 어느 정도 자라자 '코뚜레 뚫기'라는 거사가 거행됐다.

보통 송아지가 7~8개월 정도 지나 힘이 세어지면, 사람이 부리기 좋게 만들기 위해 거치는 대작업이다. 단단하고 잘 부러지지 않는 노간주나무나 물푸레나무를 휘어서 고리를 만들고, 소의 신체 부위 중 가장 예민한 콧등(비중격)에 구멍을 뚫어 사람에게 순종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동네 아저씨들이 우리 집 마당에 모여 제법 자란 송아지를 둘러쌌고, 이내 어찌어찌 코뚜레를 뚫어주었다.

아파서 서럽게 울던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매일같이 밥을 주며 돌보던 엄마도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뒤돌아섰었다.

이제 어엿한 일소가 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풍경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농경 슬롯에서 일을 시킬 큰 동물을 부리기 위한 인간의 잔인한 기술 중 하나이다.

사람이 고삐를 당길 때마다 소는 얼마나 아팠을까? 소가 순한 동물이어서 노인이나 어린아이의 작은 손으로도 부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코 속의 엄청난 통증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송아지는 외양간을 떠나야 했다.

철없는 큰아버지가 저지른 큰 사고 뒷수습을 위해 송아지를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그 송아지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새 옷 하나, 연필 한 자루 더 쥐여주고 싶어 밤낮으로 여물을 먹여 키운 눈물겨운 살림 밑천이자 희망이었다.

송아지가 끌려가던 날, 어머니는 얼마나 속을 끓이셨을까 짐작이 간다.

그 서글프고 억울했던 마음이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앙금처럼 남아,

노년의 어머니 입을 통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내가 억울해서 그래요, 억울해서! 그때 팔려 간 우리 송아지가 아직도 눈에 선해.

얼마나 잘 먹고 잘 컸는데…… 조금만 더 키우면 새끼도 낳았을 텐데……."


"아무렴 사람은 쉽게 안 변해.

준치는 얼어 죽을, 굴뚝에 묻어둔 흰 개꼬리 삼 년이지."


엄마는 사람 본성은 안 변한다는 속담까지 섞어가며 바락바락 바가지를 긁으신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고개를 돌리거나, 이내 "에이, 시끄러워" 하며 텔레비전 볼륨을 높이신다.


젊은 날에는 이 옥신각신이 집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진짜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칠십이 넘은 두 분에게 이 말싸움은 조금 다른 의미였다.

엄마에게는 "그때 내가 참 고생 많았지? 내 마음 좀 알아달라"는 애달픈 투정이었고,

아버지에게는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에게 차마 미안하다는 말을 다 하지 못해 웅얼거리는 묵직한 답변이었다.


한바탕 폭풍 같은 옥신각신이 지나간 자리.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두 분은 나란히 앉아 일요일 점심에 하는 <전국노래자랑>을 재미있게 보시곤 했다.

평생을 티격태격, 미움과 정으로 엮여온 세월.

비록 "흰 개꼬리 삼 년"이라며 서로 타박할지언정,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를 알고 등을 토닥여줄 사람은 결국 이 세상에 서로뿐이었던 것이다.


주말에 친정에 내려갈 때면 나는 이 장면 속에 있는 것이 참 싫었었다. 지난 일을 끄집어내어 아버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반복하는 엄마와, 당신 형님 때문에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하고 불편하여 오히려 큰소리로 윽박지르는 아버지.

왜 두 분은 나이가 들어서도 평화롭지 못하실까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옥신각신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지난 세월의 고생을 알아달라는 어머니의 투정이자 미안함을 퉁명스러움으로 가려버리는 아버지의 답변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이제 두 분의 그 정겨운 옥신각신도 옛일이 되어버렸다.

아버지가 떠나신 빈자리에는 이제 깊은 그리움만 남아있다.

이젠 송아지 이야기를 꺼내며 타박할 남편이 더이상 없다.


엄마는 그 옥신각신이 얼마나 그리우실까……











채운의 시 <옥신각신> 중에서 운촌 쓰다







옥신각신



채운



팔순의 백부 곁엔 언제나 속내 모를 여인들로 복닥거렸

지 어느날 육십 초반의 여인과 새살림 차렸다고, 온 집안

온 동네 들썩이게 팔순 잔치도 벌렸대 이윽고 딱 사흘 지

나 도로 홀몸 되셨겠다, 사내는 아픔만큼 성숙해지는 법

여전히 세상의 절반은 여자이고 준치는 썩어도 준치라는

울 백부님의 지론

젊은 날의 백부가 큰일 저질러 우리 집 송아지 한 마리

꿀꺽해 드셨대 그러고도 바람 잘 날 없었다지, 오십여 년

지난 일도 엊그제 일인 양 울 아버지 귀에 딱지 내려 앉도

록 바락바락 바가지 긁으시는, 아무렴 사람은 쉽게 안 변

해 준치는 얼어 죽을. 굴뚝에 묻어 둔 흰 개꼬리 삼년*이

라는 울 어머니의 지론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