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임도 이만하면

by운촌

내가 배추고

내가 지렁이고

내가 아인슈타인이고

내가 사과이지 않을까?

쌤, 무슨 말이에요?


고등학교 생명과학 환경 단원에서

탄소의 순환을 가르치며 아이들과 진지하게 나누었던 수업 내용이다.


얘들아, 잘 생각해 봐~

배추는 공기 중의 이산화 탄소를 흡수해서 탄소동화작용을 하여 유기물을 합성하고

우리 동물들은 그 유기물을 영양분 형태로 먹고 에너지를 얻어 생활하잖아

그러다가 죽으면 땅속에서 미생물의 호흡 기질로 쓰여

결국은 공기 중 이산화 탄소로 돌아가잖니?


그러니 얘들아, 탄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공기 중 이산화 탄소에 있다가

배추 속에 들어갔다가

동물의 몸으로 갔다가

결국은 다시 공기 중으로 돌아오는 것!


내가 배추고

내가 지렁이인 이유

내가 사과고

내가 오래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인 이유.

다소 충격적이겠지만


결국 지구 생태계 안에서

탄소는 순환한단다.

물질은 순환한단다.


수억 년 전 어느 공룡의 숨결 속에 섞여 있던 탄소 원자가,

오늘 햇살 따뜻한 들판에서 자라는 배추 잎의 기공으로 광합성을 위해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 배추는 나의 식탁 위에 오르게 되고

배추 속에 있던 탄소는 다시 내 몸을 구성하는 유기물의 성분이 된다.

결국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도 잠시 우주를 여행하다 내게 머무는 원소의 만남들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탄소는 쉬지 않고 배역을 바꾼다.

수억 년 전 어느 티라노사우루스가 뿜어낸 숨결 속 탄소 원자가,

배추 잎사귀가 되거나 사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배추고 사과이며,

오래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숨결이 지금 내 폐부를 채우고 있다는 말이 어찌 과장이겠는가.

물질은 그렇게 돌고 돌며 서로의 생명을 지탱한다.

서로가 서로를 먹여 살리는 거대한 밥상이자, 먹이사슬이다.

물질은 그렇게 돌고 돌며 서로의 생명을 지탱한다.





며칠 전 채운에게서 비단잉어 치어지에 대해 들었다.

비단잉어 부화 과정에서 깨어난 치어들의

열에 아홉은 버려진단다

이렇게 버려지는 가여운 치어들을 위해 만든 연못이

바로 비단잉어 치어지


물질과 생명이 꼬이고 엮이는 거룩한 순환의 현장!


버려질 목숨을 건진 치어들을 위해

운 좋은 생명들이 살 수 있도록

연못에 수초도 들여놓고 거처를 만들어 주었더니

죽을 목숨이었던 치어들이 연못에서 잘 자라

시간이 흐른 후에 그들이 제법 커지고

맛있는 먹이의 존재를 알아버린

새들이 날아오고

새들이 물고기를 잡아먹는 생생한 장면을 필름에 담으려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모여들어

그곳이 명소가 되었다지.


정겨운 생명들의 물고 물리는 꼬임

치어들을 살리려 만든 연못이 도리어

물총새의 풍성한 식탁이 되는 아이러니.


생태계라는 거룩한 페어플레이의 현장







채운의 시 <꼬임도 이만하면> 중에서 운촌 쓰다











꼬임도 이만하면

-비단잉어 치어지에서




채운

부화 이후 열에 하나만이

자란고기로 남을 선택받은 목숨이란다

나머지 아홉의 부질없는 삶 따윈

수챗구멍으로 흘려보내면 그뿐,

생의 흔적은 감쪽같아진단다

이 또한 살생은 살생이라

마음 캄캄해지는 일인지라

무녀리들의 목숨 유예시키려

연못 하나 마련하였단다

그 안에 수초와 연잎들 들여놓으니

목숨 건진 치어들 꼬여들어

갈맷빛 그늘 새새로 천진난만 몰려다니고,

이 생동한 사냥감에

허기진 물총새들 꼬여 와서는

날랜 부리로 사냥감 낚아 올려

연잎식탁에 내려앉아 팔딱이는 먹잇감 패대기치며

식사 중이란다.

이 거룩한 광경을 줌인하는 무리들,

생생한 피사체가 사람들까지 꼬드겼단다.

꼬임도 이만하면

가히, 페어플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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