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집안에 내내 생화의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꽃은 마음을 담기에 참 좋다.
(뭐 물론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이지만!)
장미도 아름답고,
카네이션도 아름답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수국이다.
부드러운 핑크색부터 쨍한 청보라색까지
다양한 빛깔의 꽃색과 그 화려한 자태는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수국꽃이라고 부르는 아름답고 커다란 꽃송이들은 사실 장식꽃이다.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 눈에 띄게 발달한 꽃받침일 뿐,
정작 씨를 맺고 생명을 이어가는 진짜 꽃은 그 가운데 아주 작고 소박하게 숨어있다.
수국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수국은 자신이 뿌리내린 토양의 pH(산성도)에 따라 꽃의 색을 바꾼다.
어떤 토양에서는 눈이 시릴 만큼 푸른색이 됙고,
또 어떤 토양에서는 포근한 분홍빛이 된다.
수국이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색이 다른 이유는 이렇다.
산성 토양에서는
토양 속 알루미늄 성분이 잘 녹고 수국이 이를 흡수하면,
이온화된 알루미늄이 꽃 속의 안토시아닌 색소와 결합하면서 푸른색 계열의 빛을 반사한다.
반대로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알루미늄이 녹지 않아 원래 안토시아닌이 가진 분홍색 계열의 빛을 띤다.
즉, 수국은 처음부터 제 빛깔을 정해두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환경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색깔을 바꾸어가는 존재인 셈이다.
수국은 작은 꽃을 위해
꽃받침을 커다랗게 피워 올렸다.
화려함 뒤에 본질을 품고 있는 것,
수국은 어쩌면
그 자체로 시(詩)를 닮았다.
내가 처음으로 내 딴에는 큰돈을 들여 샀던 그림도 수국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김영옥 작가님의 작업실에 놀러 갔다가
저 탐스런 수국에 반해 작품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지금도 우리 집을 럭셔리하게 만들어 주는 내가 아끼는 우리 집의 중요한 일부이다.
시인 채운은 두 살 터울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오빠는 아들이라 어린 시절부터 따로였지만
우리 다섯 자매는 늘 집에서 함께 복작거렸다.
소꿉놀이를 하거나 편을 갈라 베개 싸움을 할 때도
채운과 나는 한편이었다.
아래 두 동생이 언니랑 한편으로 2:3으로 우린 편을 먹고 놀았다.
채운은 중학생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고등학교 시험(국사 과목인가?)
중간고사 주관식 답안지에 시험문제의 답 대신 시를 써서 선생님에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왜 그랬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춘기 문학소녀의 일탈행위였을까.)
채운의 첫 시집은 내가 발간해 주었다.
내가 교사가 되어 첫 월급을 받고 바로 거금을 들여 구입한 것이 타자기(전동 타자기?)였다.
참으로 옛날 같다.
1990년대 초반엔 컴퓨터나 프린터가 없었다.
발령 초기에 학교에서 시험문제를 낼 때는 등사기를 썼었다.
(하~ 정말 내가 진짜 엄청 옛날 사람 같다.)
등사기는 가리방(일본말이겠지)이라고도 한다.
왁스가 코팅된 얇은 원지 위에 철필로 글자를 눌러쓰면 잉크가 그 부분만 통과하여 복사되는 방식이다.
당시엔 글씨를 잘 쓴다고 선배 선생님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았었다.
(등사기로 인쇄할 얇은 종이에 쓸 때는 글자를 틀리면 안 되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썼었다.)
나름 온라인 게임인이 된 언니가 여전히 방황 중인 동생 채운을 위해
채운의 시들을 묶어 바카라처럼 멋있게 만들어 주고 싶어 타자기를 구입했던 것이다.
전동 타자기는 수정테이프 없이 편집 가능해서 그 당시엔 신세계였다.
한 줄 한 줄 정성껏 쳐서 인쇄를 하고 여백에는 삽화도 그려 넣어 제법 시집 같았다.
시집 제목은 <새벽 강가에서>였다.
표지에 정성껏 손글씨로 썼다.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와 프린터에 밀려 전동 타자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시집은 채운이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시인은
세상이라는 대지 위에 시의 씨앗을 뿌려
한 편의 시와 같은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다.
시인의 마음밭에 뿌려진 시의 씨앗들은
시인의 사랑과 상처, 따뜻한 정성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
시인의 마음밭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핀다.
수국이 땅의 산성도에 따라 색을 바꾸듯,
채운이 세상에 시의 씨앗을 뿌려 꽃과 같은 시를 피워내듯
나 또한 내가 살아내는 환경과 내 마음에 품은 생각들에 따라
다른 빛으로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내 마음 밭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어떤 빛으로 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