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마을의 소동?

by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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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의 할아버지는 몸은 건강한 치매 환자다.

일흔의 할머니는 반신불수로 누워 있다.


밤꽃 내 낭자한 유월 어느날


고요하던 은빛마을에 소동이 있었다.

치매의 여든이 반신불수 일흔에게 돌진했던 것이다.

세상에......

밤꽃 내음만큼이나 진저리 쳐지는 소동이었다.


치매로 이성이 마비되고,

날것 그대로 남은 여든 할아버지의 서글픈 본능,

그리고

그로 인한 수치심으로 우울증을 겪어야 했던 반신불수 칠순 할머니의 서글픔.


인간 세상의 질펀하고 씁쓸한 소동이었다.






요즘 나는 공주에 자주 간다.

지난 3월부터 공주진로교육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공주로 가는 길에 나는 늘 고개를 길게 빼고 계절마다 바뀌는 산의 주인공을 찾는다.

연초록의 신록과 함께 벚꽃에서 시작하여 아까시 나무를 거쳐

요즘 유월의 공주 산자락은 온통 밤나무로 가득하다. 흐드러지게 꽃이 핀 밤나무가 단연코 유월 초여름 산의 주인공이다.

공주는 밤이 엄청 유명하다.


보통의 꽃들이 꽃잎을 동그랗게 틔워 아름다움을 뽐낸다면,

밤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피어난다.

6~7월에 꽃이 피는 밤나무는 암수한그루이나 암꽃과 수꽃이 따로핀다. 우리가 보는 밤꽃의 대부분은 수꽃이다. 수십 센티미터 길이의 하얗고 노르스름한 꽃줄기가 사방으로 길게 늘어지는 형태를 띠고있다. 이렇게 꼬리모양으로 꽃이 달리는 것을 미상화서(尾狀花序)라고 한다. 암꽃은 수꽃 아래 보통 3개씩 모여 달린다. 이 암꽃 속에 밑씨가 숨어있고 가을이면 토실한 열매인 밤이 달리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산에 은빛 눈이 내린 듯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꽃줄기들이 엉켜 실타래처럼 질펀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밤꽃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코를 찌르는 특유의 짙은 꽃향기이다.

수더분한 모양의 꽃과는 다르게 밤꽃 향은 매우 강렬하다.

밤꽃 향은 남성의 정액 냄새(스페르민 성분)와 비슷해 예로부터 양기가 강한 꽃으로 불렸다.

가장 노골적인 양기(陽氣)이자 생명의 냄새로 통했다.

과거 조선 시대에는 밤꽃이 활짝 피는 유월이 되면,

부녀자들이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만 머물게 했을 정도로 인간의 억눌린 본능을 자극하는 향으로 여겨졌다.


밤꽃의 하얗고 긴 꽃줄기에서 진한 꽃내음이 낭자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식물학 교수님이 밤꽃의 꽃차례 구조를 설명하다가

`우리 여학생들은 어디가서 밤꽃 냄새 좋다고 하면 안돼요.`

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시던 기억도 난다.






밤꽃 향이 온 산에 질펀하게 퍼지는 것은,

곧 본격적인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자연의 신호탄이다.

밤꽃은 봄꽃들이 다 지고 난 유월의 초여름에 피어난다.

유월은 봄의 화사함이 끝나고, 녹음이 짙어지며 대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시기다.

밤꽃은 그 뜨거워지는 여름의 문턱에서 가장 절정의 향을 뿜어내며 피어났다가,

장마가 시작되면 아주 지저분하고 눅눅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썩어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밤송이라는 단단한 결실을 맺게되는 것이다.




오늘도 대전 현충원을 지나 공주의 산자락을 지나며 차창을 내린다.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눈이 내린 듯 하얀 산자락에서

코를 찌르는 끈적하고 짙은 밤꽃 향이 달려든다.


여든의 치매 할아버지의 통제할 수 없었던 원초적 생명의 몸부림은

초여름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밤꽃 때문이었을까?

칠순의 반신불수 할머니의 설움과 우울도

이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낭자한 밤꽃 향기 속에서

자연의 생명력으로 치유되여 자연스럽게 씻겨 내려갔길 바래본다.



계절은 부끄러움도 없이 뜨거운 여름을 시작하고 있다.








KakaoTalk_20260606_164840154_01.jpg채운의 시 <모일> 중 운촌 쓰다








모일(某日)



채운



밤꽃 내 낭자한 은빛마을

그날 한낮의 고요가 진저리를 쳤대요


몸이 달아 달려든 치매의 여든이

반신불수 일흔 앞에

팍 엎질러버린 거죠


하여 여든은 독방으로 떠밀리고

일흔의 설움 깡그리 달랜 뒤에야

그 소요 잠잠해졌대요


밤꽃 내 질펀한 은빛마을

그날의 뒷담화는 피고 또 피어나고요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