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에서

by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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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날씨가 마음을 쿡쿡 찔러대서 집을 나섰다.

우리의 목적지는 부안 내소사 그리고 변산 채석강

남편이 채석강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하여 정해진 목적지였다.


차창 밖으로 내달리는 5월의 봄산이 아름답다.

몽글몽글한 초록의 덩어리들이 온산에 가득하다.

문득문득 연보라색 꽃을 예쁘게 피운 벽오동 나무도 보이고 고속도로 주변으로는 아까시 꽃들이 한창이다.

마치 신이 커다란 붓을 들고 점묘화 한 폭을 멋들어지게 그려 놓은 듯하다.

초록을 실컷 보니 눈에 초록의 물이 드는 듯 시원하다.


채석강을 언제 보았을까?

다녀 가긴 했을까?

TV속 연예인을 마치 잘 알고 지내는 지인처럼 생각하듯

사진으로 너무 자주 봐서 다녀갔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안 절벽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어렸을 때 읽은 소설을 나이가 들어 읽으면 또 다른 감동이 있듯

젊었을 때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면 이전에는 안 보이던 훌륭한 조연들이 보이듯

멋진 풍광들도 그러하다.


나이가 드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된다.

시퍼런 동해 바다와는 다르게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서해 바다는 여전히 우아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닷물에 둘러싸인 멋진 지층으로 이루어진 해안 절벽이 기가 막혔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정단층, 부정합, 습곡 같은 지형들이 마구마구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중생대 백악기에 저 돌 위를 공룡 가족이 거닐었을까?

수억 년의 세월을 겹겹이 쌓아 올린 퇴적암의 지층과 화산과 땅의 운동, 그리고 밀물과 썰물로 바위와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만들어 낸 자연의 위대한 합작품인 해안절벽 앞에서 잠시 넋을 잃었다.


모처럼 서해에 간 김에 젓갈을 사러 곰소에 들렀다.

그런 것도 안 하던 일이다. 경치만 보고 지역 맛집에서 맛있는 식사만 하고 오던 내가 젓갈을 산다고 기웃거리는 모습도 좋았다. 내가 김치를 얼마나 담근다고 소금이나 새우젓을 살 생각을 했겠는가?


세월은 자연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파도를 겪으며, 화산만큼은 아니어도 자잘한 삶의 고비들을 넘기며, 사람도 변한다. 짠 바다 냄새를 맡고 바다를 보니 짭짜롬한 것들을 사 오고 싶어졌다. 내일 있을 가족 모임에서 언니랑 동생들에게 한 통씩 나눠주고 싶어 자하젓을 여러 통 사서 차에 실으니 기분도 좋아졌다.





몇 년 전 신안에 가서 염전을 보고 멋진 풍광에 놀란 기억이 났다. 황금빛 노을이 지는 태평 염전은 정말 아름다웠다. 염전 가장자리에 눈처럼 쌓여있던 하얀 소금도, 염전에 가두어 놓은 바닷물도 황금빛으로 물들었었다. 황금빛으로 변해버린 바다로 붉은 해가 떨어지고, 황금빛 염전으로도 붉은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바닷물이 천천히 마르며 소금 결정이 생기는 염전의 모습도 처음 보는 풍광이었고, 소금을 만드는 사람들의 실루엣도 인상적이었다.



태평염전 by 운촌






욕심 많은 영감과 맷돌이 등장하는 옛날이야기도 생각났다.

욕심쟁이 영감은 당시엔 귀했던 소금을 팔아 부자가 될 욕심으로 바다로 도망쳐서 훔쳐 온 요술 맷돌에게 `소금아 나와라!` 하고 외쳤다. 요술 맷돌은 소금을 멈추지 않고 쏟아냈고 배는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때 바닷물 아래로 가라앉은 맷돌이 지금도 계속 소금을 만들고 있어 바닷물이 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옛날이야기는 매우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맷돌이 암석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강물에 의해 오랜 세월 육지의 암석에 있는 성분들이 녹아 바다로 모였으니 말이다. 바닷물 속에서 맷돌이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각의 암석들 안에 있는 나트륨이나 염소 이온들이 빗물과 강물에 의해 녹으며 수억 년 동안 바다로 운반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해저 화산의 폭발로 인해 염소나 황산염 같은 염분 성분이 배출되기도 하고, 바닷물이 증발하여 농도가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금은 우리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하다. 모든 살아있는 세포막에서는 나트륨-칼륨 펌프가 작동되어야 한다. 특히, 신경 세포인 뉴런의 세포막에서 흥분이 전도되는 과정에는 나트륨이 매우 중요하다.

소금의 짠맛은 주로 염화나트륨, 쓴맛은 염화마그네슘 때문이다. 그래서 간수를 잘 뺀 소금으로 요리를 하면 맛있다. 고기를 구워 좋은 소금을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래서 좋은 소금을 만드는 곳에 맛있는 젓갈을 담가서 팔고 있나 보다.


오늘은 애호박과 양파를 썰어 들기름으로 달달 볶다가 쌀뜨물을 넣어 끓인 후, 오늘 사 온 곰소 자하젓으로 간을 하여 맛있는 애호박 국을 끓여야겠다.






채운의 시 <염전에서>중에서 운촌 쓰다



채운의 시 <염전에서>중에서 운촌 쓰다










염전에서



채운



살을 말리고

피를 말리고

여러 날 마음을 말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바다의

흰 뼛조각들을 추리다

햇볕과 바람이 빚어내는

쓰거움 무릅쓰고

일평생 바다의 영혼을 거두는

사람들, 있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