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필 무렵

by운촌


5.jpg



얼마 전 공주에 있는 공산성에 다녀왔다. 일본의 교토나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오래된 도시들은 매력이 있다. 한때 잘 나가던 공간, 수없이 흘러간 시간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도시가 주는 매력이 있다.


오래된 도시의 산성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막 산성을 올려다보니 나의 시야에 꽃망울을 막 터트리려고 하는 노오란 산수유가 먼저 들어왔다. 아직은 활짝 피지 않은 노오란 작은 꽃숭어리들~~

일찍 핀 봄꽃이 반가웠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발아래 놓고 우아한 곡선으로 뻗어있는 산성 위를 거닐었다. 40여 년 전에도 이랬나?

40여 년 전에도 이 공간에 내가 있었다.

젊었을 땐 풍광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중요했던 것은 관계와 의미였던 것 같다.

처음 접한 여러 현상들과 목표들을 탐색하느라 산성을 지키는 나무들이 어떤 꽃을 피우는지, 그 아래 강물은 시시각각 어떤 빛깔로 흐르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나이 들어 다시 찾은 공간이 그래서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막 대학생이 되어 매일같이 삶에 대한 희열과 슬픔이 널뛰던 젊은 20대의 나.

신입생 환영회를 한다고,

동아리 모임을 한다고

시험이 끝났다고

누군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누군가의 사랑이 끝났다고

또는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어지간히 몰려다니며 시끌벅적하였다.

저 유유히 흐르는 강물 옆에서

우린 많이도 웃고 많이도 울었었다.


하지만

그 시끄러운 웃음들과 과잉된 표정 뒤에는 늘 우울이 묻어왔었다.


왜 젊은 우리들은 온전히 즐거워하지 못했지?

왜 우리의 젊은 날은

행복하면 왜 죄를 짓는 기분이었을까?

사랑하면 왜 죄를 짓는 기분이었을까?


우리 젊은 학생들에게는 시대의 아픔에 대한 부채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80년대 우리들의 청춘은 그러하였다.


과거의 시간 속을 헤매며 상념에 빠져 걷다가

어딘가 눈에 익은 곳이 있었다.

여기였나?

무슨 연유였는지 몰라도 나는 내 친구(여자)랑 선배(남자)랑 셋이서 이곳에 놀러 왔었다. 왜 셋의 조합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저녁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떤 주제였는지 모르지만 셋이서 쫑알거리며 열심히 토론하며 걷고 있는데 우리 앞에 시커먼 남자들이 나타났다. 한 대여섯쯤 되었을까? 갑자기 나타난 그들의 분위기는 분명 친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순간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뭘까?

셋이서 그들과 대적한들 승산이 없다.(게다가 우리 중 둘은 여자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그래!!!

나는 내 친구와 눈짓을 주고받은 후 친구의 손을 잡고 걸음아 날 살려라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대입 체력장 100미터 달리기도 이보다 빠르진 않았을 것이다.

뒤에 남겨진 선배가 걱정이었지만(진심으로!)

우리가 그곳에 있다고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잘 피해 주는 것이 선배를 위한 길이라고 그 와중에도 생각했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그 선배를 만났지만 굳이 어떻게 했었냐고 묻지 않았다.

다행히도 선배의 얼굴에는 상처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었다.


훗! 정말이지 오랜만에 떠오른 추억에 난 웃음이 났다.

그 이후에도 이곳의 산수유는 몇 번이고 꽃을 피웠다가 졌을 것이다.

해마다 노오란 희망을 품고......







채운의 산수유 필 무렵 일부를 운촌이 쓰다










산수유 필 무렵


채 운



떠나던 겨울이 느닷없이 뒤돌아서


3월 문턱에 풀어놓은 꽃샘추위


그 시새움이 그러쥔


앳된 봄의 발목에 돋는 푸른 힘줄



머묾과 밀어냄의 엇갈린 속내에


걸음 더디어도 올 것은 끝내 오고야 말지



볕바른 들녘마다 소문처럼 번져가며


샛노란 멀미 토해낼 자디잔 꽃숭어리들


눈부시어 내 마음 글썽이게 하리니



고통 없이 오는 사랑


그건 가짜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