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딸에게로

by운촌
7.jpg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졸업한 뒤로 한 번도 연락한 적은 없지만 종종 생각나는 제자가 있다.

내가 담임을 맡았거나 생물수업을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문득

아! 그런 학생이 있었지...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학생들이 있다.


25년 전 서울 왕십리에 있는 여고에 근무할 때 일이다.

3월 학기 초는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정신없이 바쁜 시기다.

그래도 새로운 만남과 기대가 있어 좋은 시간이다.

그중 가장 설레는 일은 내가 맡게 될 내 학급의 학생들과의 만남이다!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올해는 아이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생물 수업도 재밌게 해야지.

동아리 활동도 특색 있게 운영하여 아이들의 꿈을 찾아줘야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여 훌륭한 여성 인재들을 키워야지.

하는 불타는(?) 의지가 있었다.


그 바쁘고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전화가 왔다. ○○○ 학생 보호자인데 담임교사 면담을 하러 학교에 잠시 방문하고 싶으시단다. 아직 학급 학생들과 상담하기 전이라 학생에 대해 파악이 안 되어 있어 부모님 방문하기 전 학생 기록부와 가정환경 조사서를 얼른 찾아보았다. 그 당시엔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도 부족할 때였고 한 학급당 학생 수도 50명이 넘었던 시절이라 빨리 학생들을 파악하기 위한 간단한 조사서를 미리 제출하도록 했었다. 학생의 집 주소, 연락처, 형제 관계, 부모님 직업, 좋아하는 과목이나, 진로 등을 묻는 간단한 질문지였다.

그런데 ○○의 가정환경 조사서를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는 70이 넘은 나이고 30대의 언니가 한 명 있었다. 궁금했다. 그래서 미리 오시나 싶기도 했다.


수업을 다 마치고 면담 시간이 되자 교무실 문이 열리며 맑은 얼굴의 비구니 스님 한 분과 30대 온라인 게임인처럼 보이는 여성이 공손하게 들어오셨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의 가족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반 학생인 ○○의 어머니인 노스님은 경상도 시골의 작은 절에서 수행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젊은 어머니 한 분이 강보에 싸인 아기를 데리고 와서 절에서 키워달라 부탁하며 눈물을 흘리고 돌아섰다고 한다. 이유인즉 그 어머니가 남녀 쌍둥이를 낳았는데, 시댁에서는 기집애가 귀한 장손의 운을 뺏어 가면 안 되니 사내아이만 낳은 걸로 하고, 계집아이는 집안에서 못 키우게 하셨다는 것이다.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경상도 산골 양반 입네 하는 집안에서 그렇게 절에 버리다시피 한 아이를 거두어 스님이 이미 데리고 있던 비슷한 사정의 여자아이와 함께 딸 둘을 자녀로 입양하여 가족이 되신 것이다.

처음 보는 가족의 형태였다.

그녀들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의 학생 ○○와 언니는 당당했고,

스님 엄마는 매우 따뜻하였으며

어느 가정보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였다.


참으로 특별했던 가족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도 저런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아들이 태어나길 바랐는데 딸이 태어나

3일을 엄마가 젖을 물리지 않았다는 등,

배가 고파 우는 아기를 윗목으로 밀어 놓았다는 등,

이불로 덮어 놓았다는 등...

아들 하나에 내리 딸 다섯을 낳은 나의 엄마도,

내리 딸 다섯을 낳고 막내로 겨우 아들을 낳았다는 내 친구의 어머니도 그러셨단다.

지금은 그렇게 서글프게 낳은 딸들로부터

노후에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시는데 말이다.


그렇게 여인들이 다시 딸에게로 슬픈 운명을 넘기지 않아 다행이다.

자신이 낳은 딸이 아들의 앞길에 해가 될까 봐 절에다 버리는(?) 폭력적인 문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다.

정말이지 나의 엄마도, 내 학생의 생물학적 엄마도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엄연한 아동 학대다. 무시무시한 범죄행위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족 문화가 많이 달라지고, 딸들의 위상이 엄청나게 변한 것도 사실이다.

에겐 남, 테토 녀 커플이 대세이고,

결혼도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장가가는 것으로 인식될 만큼

남자에서 여자로 가정의 중심축이 많이 이동하였다.


나는 아들만 둘이다.

요즘 가장 불쌍한 엄마다.

딸이 있는 엄마랑은 중년 이후의 삶이 엄청 다르다.

딸과 함께 쇼핑하고, 여행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뭐 어쩌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지...


딸만 둘을 낳은 채운은

딸을 낳으며

다시 딸에게로

서글픈 운명의 배턴(바통)을 넘기는 기분이었을까?






채운의 시 <다시 딸에게로>를 운촌 쓰다









다시 딸에게로

채운


어미의 몸밖으로 내쳐져

몰캉한 젖꼭지 한번 물지 못한 채

이틀을 윗목으로 떠밀렸었다는 어린것

당신이 버리고 간 시간 속에서

탯줄은 끊어도 인연의 끈, 질기게 이어져

회복실 창 너머 산도 열리듯 더디게 아침은 오는데

비좁은 진창길 헤치고 온 발가숭이에게

다시, 건네주는 서글픈 배턴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