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엄마에게
백목련이 피려고 한다.
아니, 밤사이에 기어이 꽃망울을 터트렸을 것이다.
한결 부드러워진 공기는 커다란 꽃눈을 감싸고 있는 솜털들을 간지럽혔을 것이고
따뜻해진 봄햇살은 통통한 꽃눈 껍질을 벌어지게 했을 것이다.
백목련꽃이 피면 나에겐 비로소 봄이다.
거친 나뭇가지에서 올라온 자잘한 노란 산수유는 아직 추워 보이고
추위 속에 피어난 매화에도 아직 겨울이 머물러 있다.
하지만 하얀목련이 피면,
저 커다란 꽃숭어리가 벌어지고 나면
이제 계절은 어찌할 수 없다.
며칠 전 친구와 산바카라하며 만난 수목원의 백목련들도 파란 하늘을 이고 설렘과 기다림을 품은 커다란 꽃망울들이 막 터지려고 하고 있었다.
백목련을 보면 나도 채운도 큰엄마를 떠올린다.
큰엄마는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았었다. 큰집은 우리 동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정남향으로 자리를 잡아 마당 위쪽에 있던 마루는 하루종일 햇살이 따뜻했다.
마루는 잘 닦여져서 늘 반들거렸고, 내 기억 속에 큰엄마는 늘 종종거리며 일을 하셨다. 사랑방에선 할아버지와 동네 다른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고 계셨었다. 긴 담뱃대와 마른기침소리도 함께 기억난다.
큰아버지는 안 계셨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의 아버지는 사형제 중 셋째이다.
1950년에 발발한 비극적인 전쟁으로 작은 시골 동네에도 이념과 갈등의 바람이 몰아쳤을 것이고, 젊고 활기 넘치던 젊은이들은 그 거대한 물결에 휩쓸렸을 것이다. 전쟁이 끝날 무렵 큰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릴 때는 어려서, 나이가 들어서는 나 사느라 늘 정신없이 바빴으니 다른 이의 지난 삶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엄마에게 여쭤 본 적이 있다.
`엄마는 큰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큰엄마에게 들은적 없어요?`
`전쟁 때 젊고 똑똑했던 큰아버지는 무슨 대장인가를 했었대. 전쟁이 끝나고 큰아버지는 자신이 한 일이 동생이나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고 큰엄마가 말해 줬어. `
`그때 큰아버지가 몇 살이었어요?`
`아마 서른 여섯인가...? 칠남매를 두고 어떻게 세상을 뜨셨는지....
그래도 그랬기 때문에 둘째 큰아버지가 우체국장도 할 수 있었고 아버지도 공직에 있을 수 있었어.`
아주 오래전 어떤 연유로 고향 면사무소에 가서 원적(그때는 호적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 원적에는 아버지의 형제들과 그 자식들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을 것을 떼었던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의 형제 중 어린 나이에 죽은 고모의 이름과 사망신고가 되어 있던 큰아버지의 이름을 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당시 공부하느라 보은 도시에 나가있던 어린 아버지를 기어이 시골집으로 데리고 오셨단다. 전쟁 통에 또 아들을 잃을까 봐....
전쟁은 큰엄마의 젊은 남편(집안의 장남)을 앗아가며 끝났고, 남편을 잃은 큰엄마는 홀로 집안의 그 많은 제사를 치르고, 칠남매를 키우고, 시동생들의 혼례를 치르고, 홀시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했다.
기억이 난다.
큰집 마루 위 가족사진이 빼곡히 꽂혀있던 커다란 액자 속에 효부상을 받고 있는 큰엄마의 사진이 있었고, 그것을 뭔가 우리 집안의 큰 영광인 듯 자랑하시곤 했다.
큰엄마는 작고 예뻤다.
참으로 착하게 생겼었다. 조금은 센 아랫동서인 우리 엄마에게도 시어머니 대신 참 잘해 주셨고 어린 조카인 우리 남매들도 잘 챙겨주셨었다.
하지만, 한 여성으로서의 큰엄마의 삶을 생각해 보면 뭔지 모를 슬픔이 묻어난다. 속속들이 그분이 살아온 삶의 내면을 알 수는 없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큰엄마의 모습들은 슬프다.
그래, 청순한 이미지 속에 청승맞음이 들어있다.
마치 백목련이 피었다가 질 때의 모습처럼.....
오래 전 큰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볼 때도 백목련이 질 때의 그 청승맞음이 생각났었다.
난 아직 당신의 이름도 모른다. 그냥 큰엄마다.
소녀였을 큰엄마, 아내로서의 큰엄마, 엄마로서의 큰엄마, 여자로서의 큰엄마.....
올해도
청순하고 우아한 자태로 하얀 목련이 핀다.
그리고
결국엔 청승맞은 모습으로 꽃잎이 지겠지...
큰엄마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