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너는 100% 격투기 때려친다

그 말을 들은 날, 나에게로 쓴 편지.

by김상욱
앳된 UDT 시절

그렇게 자대에 배치되고 한 5개월 정도 이후, 우리는 서해와 동해로 나뉘어서 가기로 했다. 그곳에 들어가면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무조건 다 팀생활을 해야 했다.


물론 마음에 맞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마음에 맞지 않는 동기도 있었는데. 나는 머피의 법칙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 동기와 한 팀이 되었다. 그 당시의 나의 스타일은 처음 하는 일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맡은 일은 꾸준하게, 열심히,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하는 스타일이었다. 나와 같은 팀이었던 한 동기는 눈치도 빠르고 운동도 잘하는 믿음직한 형이었다. 어떤 일이든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나와는 다른 스타일의 동기. 내가 답답해서였을까? 먼바다의 빠지나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처럼 먼 곳으로 출동을 나가서 팀생활을 하던 중, 그 팀원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방이라고 해봐야 3-4평 정도밖에 안되고, 그마저도 2층 침대 위아래를 쓰는 사이인데. 인사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나의 성격은 무리에서 한 사람만 나를 싫어해도 그것 때문에 무리 전체에서 소외받는 느낌을 받곤 하는 성격인데, 그 한 사람은 심지어 무리를 이끌어오고 있는 형이었다.

나를 대놓고 왕따 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여렸던 탓일까. 나는 엄청난 소외감과 자존감의 하락을 겪었다.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가르쳐 주지 않으며 무시했다. 마치 투명인간 대하듯이 했다는 말이 정답일 것이다. 또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내가 전역하면 격투기를 하겠다고 얘기를 했을 때, 다른 동기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무슨 격투기냐. 내가 보기에. 너는 100%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얼마가지 못해서 그만둔다, 봐라" 이렇게 대놓고 얘기했었다. 또 다른 형은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이런 말을 하며 나를 너무나도 무시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격투기는 왜 하냐? 너는 친한 친구도 없고 일머리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고 옷도 없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며 너 자신밖에 모른다"

정말 사랑했던 동기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서 힘들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일부러'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했던 그 말들이 모두 진실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힘들었다.
매일 밤 힘들어했고, 매일 밤 무너져 내렸다.
같은 동기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조언을 들은 순간은 괜찮았지만 그뿐이었다.
내면이 단단해지지 않는 이상. 무조건 다시 무너져가는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때쯤 힘든 순간을 버티기 위해 점호가 끝나고 군대 연등시간만 되면 도서관을 갔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바카라이 바로 니체의 말이다. 우연히 꺼낸 그 바카라의 첫 장, 첫 구절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한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감동적인 니체의 말 첫장

첫걸음은 자신에 대한 존경심에서

첫걸음은 자신에 대한 존경심에서. 자신을 대단치 않은 인간이라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 같은 생각은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옭아매려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맨 먼저 자신을 존경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것이다.

자신을 존경하면 악한 일은 결코 행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손가락질당한 행동 따윈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상의 차츰 다가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인간으로 완성되어 간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꿈을 이루어 주는 데 필요한 능력이 된다.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스스로를 존경하라.

너무나도 멋진 말이다.

(이 바카라은 읽으면서 너무 감명받아 수십 번은 필사했다)

명언을 필사하는 병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군대에서 조금 잘하고 못한 것이 무슨 큰일인가? 개개인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시간을 주면 모두가 분명할 수 있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너무나도 사소한 일인데, 너무 크게 다가온 그때, 그렇게 그 바카라을 만난 것이다. 그때부터 조금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했다.

"설사 조금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머리가 조금 없다 하더라도, 몇 번 하다 보면 모두 다 잘할 수 있는 일들이다. 손가락질받을 행동이 아니고, 누군가를 속이는 일도 아니다. 맡은 일에 능력껏 최선을 다한다면, 그냥 그걸로 끝내면된다. 얼마나 잘하고는 상관없다. 맡은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면, 그리고 그 방법이 손가락질당할 일이 아니면,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내 말이 맞다.
그냥 그런 것이다. 잘한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다. 못한다면 미안해는 하되, 우울해할 필요가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힘을 내보기로 했다.

다 찢어지도록 읽었던 니체의 말

너무나도 힘들었던 나에게

남이 아무리 얘기해 줘도 들리지 않았던 나에게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 이렇게 돌이켜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당시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을까? 이것이야말로 "나에게로 쓰는 편지"가 아닐까 싶다.

그 당시 일기에는 실제로 이렇게 적었다.




2015.8.19 수요일
연평도에서 복귀를 한 날이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면서 나갈 준비를 했다.
뭐 따로 실수를 하거나 한 것은 없었고, 무사히 별 탈없이 잘 나와서 그대로 대대에 잘 복귀를 했다. 대대에 복귀해서는 운동을 했다. 데드리프트, 딥스, 무게 푸시업
사실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XX형하고 얘기를 했다. 아니 일방적으로 들었다. 형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XX형뿐만 아니라 xx, xx, xx, xx 등 꽤 많은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XX형은 이전과 다른 말을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나는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착한데, 좀 더 나이 먹으면 착한 게 아니라 병신이 될 것이고, 나이 먹고도 여자도 못 사귀는, 그리고 자기 자신을 꾸밀 줄도 모르는 그러한 인생을 내가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격투기에 대한 열정이 보이지 않으며, 악착같지 않고 뭘 해도 다 건성건성하고, 친한 친구도 없고, 식탐도 많고, 자신감도 좀 떨어지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향기가 없다고. 그렇게 말을 했다. 아 그리고 눈치도 없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고.
향기가 없는 사람이라..... 너무나도 짧은 순간 너무나도 많은 말을, 그리고 고쳐야 될 점을 들어서 어벙하다 못해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착한데 좀 더 나이 먹으면 병신이 될 것이고, 나이 먹고도 여자도 못 사귀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자기 자신을 꾸밀 줄 모르고, 뭘 해도 딱 부러지게 하지 못하고, 건성 건성하고(사실 건성건성하는 게 아니라 나름 열심히 느 하는데 잘 안되는 거긴 하지만) 식탐도 많고, 자신감도 떨어져서 남들 앞에서 목소리 높여 내 얘기를 못하고, 싸우면 꼬리 내리고,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 나의 기준이 없고 , 남의 기준에만 따라가고 자기주장은 너무나도 쉽게 꺾고
눈치도 없고 그리고 향기도 없다.

고칠 게 많다.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우선 나 자신을 좀 꾸며봐야겠다. 맨날 동네 체육관에 처박혀있으니, 뭘 꾸밀 수 있나. 꾸미는 것도 방법을 알아야 꾸미지. 이건 방법을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모자란 것은 많지만 거꾸로 말해 난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수 있고, 무엇보다 위대한 꿈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 xx형이 했던 모든 말은 다 맞는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거의 다.
나는 친한 친구도 있고, 내가 하려 하는 내 꿈에 대해 충분한, 그리고 피 끓는 열정을 가지고 있고, 피 끓게 만드는 엄청나게 높은 꿈이 있다. 격투기.
그리고 나는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좋은 사람이며 내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준비가 된 사람이며,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게 아닌 내 꿈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달려가는 중이고, 현실이라는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벽을 핑계로 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아주 어릴 때의 나, 어린아이의 나처럼 순수하게 그것이 좋아서 미치도록 하는 사람이 나다.

상욱아.
너는 정말 고쳐야 되는 게 많아.
얼마나 많은지 공바카라에 적으려면 족히 열 장은 넘을 거야. 정말 많지. 하지만, 누구에게나 다 단점은 있어. 문제는 단점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단점을 고치느냐 못 고치느냐 야. 넌 그 단점을 고치려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 지금 이곳에서 너처럼 노력하는 사람도 없을 거야. 니 꿈을 향해서든, 니 단점을 고치려고 그러는 말이야. 이렇게 노력하는데 곧 단점은 고쳐질 거야. 그리고 난 단순해, 어찌나 단순하던지 한 가지를 시킬 면 그 한 가지밖에 못하지.
하지만, 그 단순함이 널 상상하지 못한 길로 이끌 거야. 누군가는 날 위해서 격투기를 하지 말라고도 하지만, 그 사람이 나보다 격투기를 잘 알지 못하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 넌 그냥 격투기를 하려고 마음먹은 게 아니야.
유난히 겁도 많은 너는 수많은 날을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면서 이 격투기를 시작한다고 했어. 수십일은 되겠지 그렇게 결정한 거야.
그리고 네가 그렇게 결정한 이상, 넌 거기에 목숨을 걸겠지. 그래 넌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거잖아. 격투기 아니면 죽겠다는 마음가짐. 그게 너잖아. 절대 무릎 꿇지 마 절대 포기하지 마, 아직 시작도 못해봤어.
격투기 하면 헝그리 하다고? 네 부모님 생각 안 해봤냐고? 그 사람들한테 다시 한번 되물어봐. 내가 과연 그런 생각을 안 해봤겠냐고. 그리고 말해. 나는 누구보다 후회하지 않고, 부자가 되고 싶고, 하고 싶고, 열정이 강해서 이걸 했다고 말이야. 난 이걸로 성공할 거야 무조건. 후회의 여지마저도 불태우도록 열심히 할 거야 미친 듯이. 며칠 전 연습했던 쉐도우처럼.
나란 인간은 너무나도 단순해서 가장 간단한 원투 500번 등 같은 동작을 500번씩이나 반복해, 더 잘하려고, 더 열심히. 이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야. 난 이걸로 결국엔, 이 단순함으로 꿈에 대해선 어릴 때의 나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서 성공할 거야. 꿈을 이루는 것에 필요 없는 것들은 싹 다 쳐낼 거야. 그리고 강해질 거야. 매일.

남과 너를 비교하지 마.
너는 그저 어제보다만 조금 더 나아지면 돼. 오늘도 이만큼 성장했잖아. 약한 것들은 뭉쳐 다녀. 알잖아. 배웠으니까. 왜냐 혼자 있으면 호랑이한테 먹히거든. 위기가 오면 자기 친구를 호랑이 먹잇감으로 바치지. 나는 토끼가 되긴 싫어. 약한 것이니까. 죽어도 좋으니, 단 하루를 살아도 혼자 있어도 강한 호랑이가 되고 싶어. 항상 묵묵하게, 그리고 무게감 있게 제 할 일을 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 그리고 약자에겐 약하지만, 설사 강자라도 내 적이 된다면 숨겨둔 이빨과 발톱을 모두 꺼낼 수 있는 그런 사람.

상욱아. 앞으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을 거야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도 얼마나 있을지 상상도 못 할 거야. 하지만, 모두 오늘처럼 이겨내. 넌 할 수 있어. 그냥 이겨내. 그냥. 넌 내가 본 사람 그 어떤 사람 중에서도 진정 자기 가슴속을 보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가장 멋있는 사람이야. 절대 포기하지 마. NEVER NEVER NEVER GIVE UP.

그 어떤 역경과 고난이 닥쳐와도 모두 뛰어넘어. 너를 죽일 수 없다면, 그건 널 더 강하게 해 줄 뿐이야. 말 많고 사교성 좋은 떼 지어 다니는 약한 늑대보다는, 고독하지만 강하고 멋있는 호랑이가 되도록 해.
그리고 미쳐. 네가 할 것에. 모두가 안될 거라고 하지. 상관없어. 넌 할 수 있으니까. 너만 그렇게 생각하면 돼
2015 8. 19 일기


그렇게 힘들지만, 나는 다시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필사를 하면서 버텨낸 힘들었던 순간
꿈을 부정당하는 순간 적었던 글. 역시 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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