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주. 그 이후
우여곡절 끝에 지옥주가 지나고 그 다음주는 회복주였다.
닷새간 잠도 못자고, 옷도 못갈아입고, 신발도 못갈아신으면서 훈련 받다보니, 어쩔 수없이 몸에는 엄청난 데미지가 쌓여있을수밖에 없다. 특히 바닷물에 젖은 신발을 5일내내 신다보니, 어쩔수 없이 발이 탱탱부었었고. 신발을 벗는게 아닌 칼로 잘라내는 동기들도 있었다. 더 심한 동기는 발이 검게 썩어서 걸어다니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옥주 다음 주는 회복을 위한 '회복주'를 지낸다.
회복주는 체력 훈련이 아닌 실내에서 앉아서 강의를 들었다(덕분에 미친듯이 졸아서 회복주는 기억이 잘 없다. 필기 시험 성적은 당연히도 바닥을 밑돌았다)
그리고나서 전술학, 폭파학, 잠수학등을 단기과정으로 시험보고 수료하게 되었다.
사실 UDT에서의 내용을 너무 많이 적고 싶지는 않다. 추억이 많은 곳이지만, 한평생 군생활 한것도 아닌데, 너무 내세우는 것이 부끄럽다.
어쨋건 그렇게 수료를 하고 얼마지나지않아서 포항 해병대로 공수교육을 갔다(해병대 밥이 참 맛이 없었다)
이후 나는 직무를 지원 할수있는 기회를 얻었다.
누군가는 UDT에서 병들은 훈련을 하는 작전팀으로 가지 못하고, 행정만 본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물론, 작전팀에 배속되어도 보통의 부사관처럼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병들은 할 수없는 여러 경험들을 할 수있는 작전팀에 지원도 가능하고, 들어갈 수있다.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작전팀으로 지원하지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UDT 교육 때가 너무 힘들어서 자대에 배치되고 나서도 그런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다.
매일 아침 체조 구보의 압박감.
수영의 추위.
얼차려 뺑뺑이.
매일 아침에 맞닥트려야하는 이 모든 압박감이 나는 두려웠다. 게다가 나는 UDT교육을 정말 간신히 했기에, 심신이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당시에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었던 것. 그것이 내가 근무지원대에 지원한 이유이다.
당시 교관님께서 작전팀이 아닌 지원팀에 지원한 아이들에게 멋이 없다고 한마디 하셨는데 그걸 듣고 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그렇게 나는 근무 지원대중 하나인 참모실로 가게 되었고 몇몇의 친구들은 1대대, 특임대 등 대부분이 그쪽으로 갔다.
그렇게 우연히 가게된 작전참모실
절대 참모실에서 배울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남영우 중령님, 미국 네이비실까지 다녀오신 그분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분께서 나에게 특별하게 '직접' 가르쳐주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분을 모시고 지켜보면서 그분께서 삶을 대하는 태도나 자기관리, 평소의 행동, 밑에 계급일지라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방법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부터 나는 깨달았다.
하나 하나 세심하게 가르쳐 주는 것도 선생이지만. 그런 것보다 더 가르침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의 평소의 행실이라는 것을.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기술적으로 잘 가르쳐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학생들이 보고 배우는 것은 이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와 평소의 행동이라는 것을. 마치 바카라읽으라고 잔소리하는 부모님 말은 안듣지만, 평소 바카라 읽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을 따라서 바카라을 읽는 것처럼. 나의 부모님이 그랬기에. 나는 더욱 더 와 닿는다.
어쨌든 그곳에서의 생활은 배운 것도 많았지만 아쉬운 것이 사실 더 많았다. 나와 같이 수료한 내 동기들은 총을 쏘아도 더 쏴보고, 뭐라도 조금 더 배웠는데. 진짜 UDT들이 할 만한 무언가를 해보았을 텐데. 그 시간 동안 나는 바카라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몸이 편했기에 좋았지만, 나중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내가 이렇게 추락하고 있구나. 후회하고 있구나.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두려움이나 무서움 때문에 도전하지않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나중에 무조건 후회되는 선택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물론 개개인의 취향은 다르듯 안전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이후로 항상 도전하는 삶을 선택해왔다. 갈림길에서 짧든 길든 고민하고, 결정의 순간망설인적은 있었지만, 결국 선택은 도전인 삶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도전이 성공이던 실패던 상관없이
단 한번도 후회한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