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도로 살아도 괜찮다

by은파랑

1965년, 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사람들이 인생의 일들을
언제쯤 해내야 한다고 믿는지 물어보았다.

몇 살에 일을 갖고
몇 살에 가정을 이루고
몇 살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시간표

그것을
슬롯적 시계라 불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 마음 안에서 똑딱이며
지금 늦었는지, 빠른지를 알려주는 시계

시계에 맞춰 걷는 사람은 안도했고
시계보다 느리게 걷는 사람은 조급해졌다.

그러나 시계는
누구 손목에도 채워진 적이 없었다.
시대가 만들었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물려주었을 뿐

오래 그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또래의 소식이 들려오는 날에는
내 걸음이 갑자기 느려 보였다.

나는 아직 여기인데
저들은 벌써 저만치 갔다는 생각에
가던 길 한가운데서 멈춰 서곤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멈춘 것이 아니었다.

넘어졌다 일어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울고 난 뒤 숨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고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보는 데
남들보다 조금 더 걸렸을 뿐

늦게 핀 꽃이 있고
일찍 지는 꽃이 있고
겨울을 지나서야 꽃망울을 여는 나무도 있다.

그것들을 한 계절에 세워놓고
왜 같은 날 피지 않느냐고 묻는 일은
꽃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가혹했다.

귓가의 시계 소리를 가만히 내려놓는다.

대신 내 숨의 속도를 듣는다.
내 걸음이 땅에 닿는 소리를 듣는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돌아가도 괜찮다.
오늘 내가 걸은 만큼이
오늘의 나에게는 정확히 알맞은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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