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봄은 천천히 온다

by은파랑

1920년대, 식물학자 가너와 앨러드는
담배 잎이 언제 꽃을 피우는지를 오래 지켜보았다.

온도가 오르면 피어날 것이라 믿었지만
식물이 기다린 것은 따뜻함이 아니라
낮의 길이였다.

밤이 조금씩 짧아지고
빛이 조금씩 길어질 때
식물은 변화를 몸으로 읽고
꽃눈을 틔울 때를 알았다.

그것을
광주기성이라 불렀다.
꽃은 하루아침의 햇살이 아니라
수없이 쌓인 낮의 길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가 있었다.
어떤 씨앗은 겨울 추위를 지나야만
봄에 싹을 틔웠다.

추위는 식물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깨어날 준비를 시키는 시간이었다.

마음 계절도
닮아 있었다.

오래 겨울 안에 있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이어졌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괜찮아지려고 애쓸수록
봄은 더 멀리 물러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돌아보니
아침이 조금 일찍 밝아 있었다.

밥맛이 돌아왔고
창밖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의 안부에 웃음이 먼저 나왔다.

어느 하루가 바꾼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던 날들이
조용히 낮을 길게 만들고 있었다.

땅속뿌리가
아무도 모르게 물을 끌어올리듯
내 안 무엇도
느리게, 그럼에도 쉬지 않고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꽃은 재촉한다고 피지 않으니까

볕이 드는 쪽으로 의자를 조금 옮겨 앉는다.

봄은 천천히 오고
천천히 안에서
이미 조금씩
피어나고 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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