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

by은파랑

1997년 가을, 뉴욕 잡지에
와이오밍의 바람을 닮은 단편 하나가 실렸다.
애니 프루가 쓴 '브로크백 마운틴'

양을 치던 두 청년이 산에서 만나
짧은 여름을 나눠 가졌고
그 여름을 평생 지고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면 끝나는 줄 알았으나
끝나는 것은 계절일 뿐
마음은 해마다 그 산으로 되돌아갔다.

세월이 흘러 영화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한 문장 앞에서 말을 잃었다.
당신을 잊는 방법을 알고 싶다.

잊는다는 말을 가만히 굴려 본다.
잊을 망(忘), 망할 망(亡)에 마음 심(心)
마음이 망한다는 글자, 마음이 꺼져 간다는 글자

그러니 잊는다는 것은
마음 한 채를 내려 앉히는 일
불 켜진 집 하나를 꺼 버리는 일

그런데 어떤 집은 꺼도 꺼도
창가에 불빛이 남아서
어둠 속에서도 제 자리를 기억한다.

방법이라는 말도 곱씹어 본다.
방향을 일러 주는 길잡이
하지만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길이 나 있지 않다.

잊으려 애쓸수록 선명해지고
지우려 문지를수록 번져서
지운 자리마다 그 사람 이름이 얼룩진다.

우리에게도 잊지 못한 계절이 있다.
돌아서면 잊힐 줄 알았던 얼굴
돌아서도 따라와 어깨에 앉던 얼굴

잊는 것은 비우는 일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덮는 일이라서
덮어도 덮어도 아래에서 숨을 쉬었다.

그래서 묻는다.
잊는 법을 모른다는 말은
어쩌면 가장 오래 사랑했다는 말이 아니냐.

잊을 수 없어서 아픈 마음과
잊고 싶지 않아서 아픈 마음은
같은 눈물이어도 무게가 다르다.

당신은 묻는다.
그렇게 아프면서 왜 놓지 못하느냐.

대답 대신
산 하나를 마음 한가운데 옮겨 심고
눈이 오는 날이면 아래 가만히 앉아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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