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예일 대학 강의실
고전문학을 가르치던 한 교수가
짧고 환한 소설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에릭 시걸 '러브 스토리'
바카라은 날개 달린 듯 팔려 나갔고
영화관마다 사람들은 손수건을 꺼냈다.
그 안에서 제니는 말한다.
다툼 끝에 고개 숙인 올리버에게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은 그 말을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눈이 쌓인 빈 경기장 위에서
미안(未安)이라는 말을 가만히 굴려 본다.
未는 아직 아니라는 글자
安은 편안함이니, 아직 편안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미안하다는 말은
내 마음이 아직 네 앞에서 불편하다는
조심스러운 신호이자 작은 손짓
사랑은 불편을 먼저 알아채는 일
말이 입술에 닿기 전에
눈빛이 먼저 건너가 앉는 일
네가 숨을 고르는 사이에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디가 아팠고, 어디가 서운했는지를
그래서 사과는 길어지지 않고
용서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마음이 마음을 먼저 읽고 간 자리여서
나에게도 말보다 빠른 저녁이 있다.
식은 국에 다시 불을 올리던 손
말없이 불을 낮춰 주던 밤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이미 닿아 있었다.
하지만 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은
말할 수 있어서 말하지 않는 사랑이다.
닫아걸어 말하지 않는 것과
열어 두고 말하지 않는 것은
같은 침묵이어도 온도가 다르다.
당신은 묻는다.
정말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되느냐.
대답 대신
식은 찻잔을 두 손으로 데워
당신 쪽으로 가만히 밀어 놓는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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