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에는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말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멀어지곤 한다.
한마디라는 말
마디는 대나무의 마디이고
손가락의 마디이고
말의 마디다.
마디는 짧다.
하지만 마디가 있어야
손가락은 굽혀지고
대는 이어지고
하루는 다음 하루로 건너간다.
위로의 한마디도 그렇다.
짧지만
끊어질 뻔한 마음을 잇는
작은 마디가 된다.
위로(慰勞)의 위(慰)는
마음 심(心) 위에
벼슬 위(尉)를 얹은 글자다.
'설문해자'에 따르면 위(尉)는 본래
불을 쥐고 위에서 눌러
비단의 구김을 펴는 일을 뜻했다.
오늘날 다림질이다.
그러니 위로란
구겨진 마음을
따뜻하게 눌러 펴는 일이다.
다리미는 뜨거워야 하지만
너무 뜨거우면 옷을 태우고
눌러야 하지만
너무 세게 누르면 자국이 남는다.
"힘내"라는 말이
때로 아픈 까닭이 거기 있다.
구김이 펴지기도 전에
다리미 무게부터 느껴지기 때문이다.
좋은 위로는
알맞게 데운 손바닥처럼
가만히 얹힌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애썼어"
구김을 다리는 말은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마음을 다리는 말이
마음과 마음의 다리가 된다.
짧아서 닿고
가벼워서 스미고
조용해서 오래 남는다.
긴 충고는 귀에 머물고
짧은 위로는 가슴에 머문다.
충고는 고치려 하고
위로는 곁에 머물려한다.
위로는 답을 주는 말이 아니다.
답을 몰라도
함께 모르겠다고 말해주는 말
그리고 가끔은
한마디조차 필요 없다.
등에 얹은 손 하나가
가장 따뜻한 한마디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구겨진 하루 앞에서
말을 아끼고 온도를 고른다.
많은 말 대신
알맞게 데운 한마디를
마음 위에 가만히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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