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라고 하면
먼저 빛깔을 떠올린다.
하늘 파랑, 노을 주홍
가을 잎의 붉고 누른 것들
하지만 '설문해자'는
색(色)을 얼굴에 드러나는 기운이라 풀었다.
빛깔이기 전에
낯빛이었던 것
그러니 색을 안다는 것은
물감 이름을 아는 일이 아니라
사람 얼굴을 읽는 일이다.
말보다 먼저 번지는 마음 빛깔
우리말에는 색이 참 많이 산다.
기색, 내색, 생색, 난색
안색, 본색, 무색
모두 사람 마음에 물든 색이다.
색을 아는 마음은
기색은 살피고
내색은 아끼고
생색은 거둔다.
남의 낯빛이 흐려지면 먼저 알아채고
내 속이 쓰려도 굳이 드러내지 않고
해준 일은 조용히 잊는다.
난색을 짓기 전에 헤아리고
안색이 바뀌기 전에 다가서고
그래서 누구도 무색하게 만들지 않는다.
붉은 얼굴에서 부끄러움을 읽고
창백한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고
흐린 얼굴에서 말하지 못한 하루를 읽는다.
사람마다 제 빛깔이 있다.
누구는 연두처럼 여리고
누구는 쪽빛처럼 깊고
누구는 황토처럼 수수하다.
색을 모르는 마음은
모든 빛깔 위에
제 색을 덧칠한다.
색안경을 쓴 눈에는
세상이 한 빛으로만 보인다.
색을 아는 마음은
색안경부터 벗는다.
남의 본색을 내 색으로 지우지 않고
빛깔 그대로 곱다고 말해준다.
색이 곱다, 마음이 곱다.
같은 말이 두 자리에 앉는다.
고운 빛을 알아보는 눈이
결국 고운 마음이 된다.
물감은 섞일수록 탁해지고
빛은 섞일수록 밝아진다.
색을 아는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를 흐리지 않고 환하게 비춘다.
마주 앉은 사람 낯빛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본다.
말하지 않은 색을 읽고
묻지 않아도 될 것은 묻지 않고
따뜻한 빛 하나를
얼굴 곁에 가만히 놓아둔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