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굳게 문을 닫아걸던 시절에도
단 하나 열려 있던 항구가 있었다.
나가사키
바다 건너온 배들이
낯선 말과 낯선 물건을 부려 놓고
항구 가까이에는
중국 사람들의 거리가 생겨났다.
1892년
중국 푸젠 땅 푸저우의 한 청년이
설탕을 사고파는 동향 상점 하나를 믿고
이 항구에 내렸다.
그는 짐을 지고
거리를 떠돌며 물건을 팔았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터지자
이 땅의 중국 사람들을 향한 눈길은
하루아침에
차가워졌다.
그는 찬바람을 견디며
한 푼 두 푼 모았고
1899년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사해루라는
작은 식당을 열었다.
그 무렵 이 항구에는
공부하러 건너온 중국 청년들이 많았다.
주머니는 비었고
끼니는 늘 초라했다.
낯선 땅에서
고생이 무엇인지 알았던 그는
청년들의 보증인이 되어주고
그들을 먹일 국수를 궁리했다.
싸고
배부르고
몸에 좋고
무엇보다 맛있는 것
고향 푸젠에서 먹던
고기 넣은 탕면을 떠올리며
나가사키의 바다와 산이
내어주는 것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커다란 무쇠 냄비를
뜨겁게 달군다.
돼지고기를 먼저 볶고
오징어와 새우를 넣고
양배추와 숙주
분홍빛 어묵을 한데 넣어
센 불에
재빨리 뒤집는다.
그 위로
닭뼈와 돼지뼈를 오래 고아낸
뽀얀 육수를
콸콸 붓는다.
굵고 노르스름한 면을
냄비에 그대로 넣어
재료와 국물과 면이
한 솥에서 함께 끓는다.
잿물로 반죽한 면은
국물을 머금으며 은은한 향을 낸다.
커다란 그릇에 담고
가늘게 채 썬 노란 달걀지단을 얹는다.
처음엔 중국 우동이라 불렸다.
그러다 한데 뒤섞는다는
이 땅의 말을 빌려
짬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07년 기록은
이 국수를 학생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 적었다.
학생들 사이에는
노래 한 자락이 돌았다.
미끄러지고 넘어져도
사해루 앞에서 짬뽕 한 그릇 먹으면
금세
일어설 수 있다.
한 그릇 먹으면
얼굴의 여드름이 열 개는 줄어든다.
1914년의 안내서는
이 국수를 나가사키 명물의
맨 첫머리에 올렸다.
시인과 소설가들도
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배달을 나갈 때
국물을 흘리지 않도록
국물 없이 볶아
넓은 접시에 담아낸 국수는
사라우동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되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먼저 떠 마시면
뽀얀 국물이 부드럽게 혀를 감싼다.
돼지뼈의 고소함과
해산물 단맛이
맵지 않게
그러나 깊게 우러나 있다.
양배추는 달큰하고
숙주는 아삭하고
오징어는 쫄깃하게
사이에서 튕겨 오른다.
통통한 면발은
국물을 한껏 머금어
후루룩 빨아들일 때마다
바다와 들의 맛을 함께 실어 온다.
바다 건너 한반도에도
짬뽕이라는 이름이 건너왔다.
그러나 그곳 짬뽕은
고춧가루를 풀어 붉고 맵게 끓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같은 이름 아래
하얀 국물과 붉은 국물이
각자의 항구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끓이고 있다.
나가사키의 짬뽕 한 그릇에는
낯선 땅에서 찬바람을 견딘
한 이방인의 고생과
가난한 청춘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던
따뜻한 마음과
두 나라의 바다와 들이
뽀얗게, 넉넉하게
한데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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