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고르지 않는 빛

by은파랑

기원전 14세기, 나일 강가의 도시에서
파라오가 새벽마다 동쪽을 향해 섰다.
이름은 아케나톤, 섬긴 것은 오직 해였다.

그가 바친 찬가에는
빛이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노래가 있었다.
왕의 지붕에도 소 치는 아이의 담장에도 같은 빛이 내린다.

햇살이라는 말
해의 살, 해에서 뻗어 나온 가는 줄
부챗살처럼, 화살처럼 멀리까지 곧게 닿는 것

살은 가늘어서 하나로는 약하지만
수없이 모이면 산을 덮고
수없이 닿으면 한 사람의 하루를 데운다.

비춘다는 말
빛이 닿아 모습이 드러나는 일
그러니 비추는 것은 보여 주는 것이고, 보아주는 것이다.

새벽을 건너온 첫 빛은
누구를 골라 찾아가지 않는다.
고르지 않으니 놓치는 이도 없다.

산등성이를 어루만지고
이름 모를 들꽃 위에 내려앉고
밤새 차갑게 식은 창문을 조용히 데운다.

어루만진다는 말에는 서두름이 없다.
들꽃은 이름이 없어도 빛을 받고
빛은 이름을 묻지 않고 내려앉는다.

사랑이 그러하다.
자신을 위해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가 한 뼘 따뜻해지는 것으로 제 몫을 다하는 빛

불은 태워서 밝히고
햇살은 건네서 밝힌다.
태우는 것은 줄어들고, 건네는 것은 번져 간다.

식어 있던 마음의 창에
누군가의 안부가 말없이 내려앉던 아침

빛이 나를 위해 켜진 줄 몰랐다.
그저 방이 조금 환해졌고
오래 움켜쥐고 있던 어깨가 느슨해졌을 뿐이다.

그제야 알았다
가장 깊은 사랑은 이름을 부르며 오지 않고
다만 그곳에 와서 머물다 간다는 것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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