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가 저물 무렵
베트남 북쪽의 논에서
소는
사람의 한 식구였다.
쟁기를 끌고
물 댄 논을 갈고
한 해 농사를 함께 짓는
귀한 일꾼
사람들은 소를
좀처럼 잡아먹지 않았다.
돼지와 닭, 이따금 물소가
그들의 고기였다.
그 무렵
바다 건너 프랑스 사람들이 들어와
이 땅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향에서 먹던
스테이크와 스튜를 찾았고
도시마다
소를 잡는 일이 늘어났다.
좋은 살코기는
식민자들의 식탁으로 올라가고
그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소뼈와 자투리 고기가
현지 요리사들 손에
남겨졌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뼈를 큰 솥에 넣고
오래오래
고아내기 시작했다.
뼈를 고아 국물을 내는
먼 나라의 방식과
물소 고기로 끓이던
오래된 국수가 한 솥에서 만나
새로운 국수 한 그릇이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것을
퍼라 불렀다.
소뼈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큰 솥에 넣어
몇 시간이고 뭉근하게 끓인다.
양파와 생강은
불에 직접 올려 검게 그을린 뒤 넣고
계피와 팔각
카다멈 몇 알을 더한다.
향신료가 국물 깊숙이 녹아들면
비린 기운은 사라지고
맑고 달큰한 국물만이
남는다.
납작한 쌀면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커다란 그릇에 담고
위에
얇게 저민 붉은 소고기를 펼쳐 얹는다.
펄펄 끓는 국물을 부으면
붉던 고기가 순식간에
분홍빛으로
익어간다.
하노이 사람들은
이 국수를 담백하게 먹었다.
고기 몇 점과
맑은 국물
쪽파 한 줌과
라임 한 조각이면 충분했다.
1954년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둘로 나뉘자
북쪽의 수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고향의 솥을
함께 들고 갔다.
북에서 내려온 국수는
남쪽 곳곳에 퍼져 나갔다
피란민의 손을 따라
평양의 냉면이 이 땅의 남쪽으로 퍼져 나간 것처럼
남쪽 퍼는
넉넉하고 푸짐해졌다!
아삭한 숙주를 한 줌 얹고
향긋한 바질을 뜯어 넣고
푸른 고추를 썰어 넣고
라임을 꾹 짜 넣는다.
고기가 귀하던 가난한 시절에는
국물과 면만 담긴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던
날들도 있었다.
1975년
전쟁이 끝난 뒤
바다를 건너 흩어진 사람들은
파리의 골목에서, 캘리포니아의 거리에서
다시
뼈를 고았다.
그렇게 이 국수는
세계의 식탁으로 건너갔고
이제 서울 골목에서도
김을 피워 올린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먼저 한 모금 떠 마시면
팔각과 계피의 은은한 향이
코끝을 먼저 스치고
맑은데도 깊은 국물이
목을 타고 부드럽게 내려간다.
뼈에서 우러난 단맛이
혀 위에 오래 머문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리면
매끄러운 면발이 후루룩 미끄러져 들어오고
얇은 고기는
씹을 틈도 없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라임을 짜 넣으면
국물은 한결 산뜻해지고
고추 한 조각이
혀끝을 알싸하게 깨운다.
숙주는 아삭하게
허브는 향긋하게
한 그릇 안에서
맛이 겹겹이 쌓여간다.
밤새 마신 술로
무거워진 아침에도
뜨거운 쌀국수 한 그릇이면
속이 천천히 풀린다.
베트남 쌀국수 한 그릇에는
식민자들이 버린 뼈에서
국물을 길어 올린 사람들과
분단을 피해 남으로
다시 바다 건너 세계로 흩어진 걸음들과
모든 길 위에서도
불을 꺼뜨리지 않은 솥의 온기가
맑게, 깊게
함께 우러나 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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