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상어가 더 무섭다

스티븐 스필버그

by은파랑

1974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바다. 카메라가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가 흔들렸다. 스태프들은 장비를 붙잡았다. 바닷물이 선체에 부딪혔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가 바닷속에서 올라와야 했다.

거대한 상어. 그런데 올라오지 않았다. 기계장치가 말썽을 일으켰다. 다시 준비했다. 바다에 넣었다. 또 고장 났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에게 맡겨진 영화는 '죠스'. 상어가 사람을 공격하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간단했다. 상어 영화인데 상어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젊은 감독에게 그것은 재앙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장 때문에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상어를 보여줄 수 없다면, 상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 되지 않을까.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관객은 바닷속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1946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널드는 전기공학 분야에서 일했고, 어머니 리아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한쪽에는 기계가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음악이 있었다. 스필버그는 그 사이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가족은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과 소외를 경험했다고 훗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집 안도 완벽하게 평온하지 않았다. 부모의 관계는 흔들렸고 결국 이혼했다. 어린 스필버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었다. 8mm 카메라. 친구들을 세운다. 장난감 기차를 움직인다. 모형을 만든다. 카메라를 돌린다.

영화 속에서는 현실과 달리 자신이 장면의 순서를 정할 수 있었다. 어디서 시작할지. 누구를 보여줄지. 언제 끊을지. 무엇을 숨길지.

창작은 현실을 마음대로 바꾸는 능력은 아니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선택하는 능력은 될 수 있다.

스필버그의 젊은 시절 역시 흔히 하나의 성공신화로 정리된다. 영화학교에서 여러 번 떨어진 청년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몰래 들어가 빈 사무실을 차지하고 감독이 되었다는 식이다.

실제 이야기는 그보다 복잡하다. 그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롱비치에서 공부했고, 젊은 시절부터 영화를 만들며 업계로 들어갈 기회를 찾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오가며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었던 경험도 있었지만, 어느 날 담을 넘어 빈 사무실을 차지해 감독이 되었다는 식의 전설은 과장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신화가 아니다. 그가 계속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1968년 단편영화 '앰블린'을 만들었다. 그 작품은 업계 관계자의 눈에 들어왔다.

TV 연출 기회가 생겼다. 1971년에는 TV영화 '듀얼'을 연출했다. 도로 위에서 평범한 운전자가 거대한 트럭에게 이유도 모른 채 쫓기는 이야기였다. 흥미롭게도 여기에서도 공포의 핵심은 ‘보이지 않음’이었다.

트럭은 보인다. 하지만 운전자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누가 운전하는지 모른다. 왜 쫓아오는지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섭다.

그는 이미 배우고 있었다. 공포는 괴물을 많이 보여줄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상상력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둘 때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리고 '죠스'가 찾아왔다. 피터 벤츨리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프로젝트였다. 스필버그는 실제 바다에서 촬영하기를 원했다. 문제는 바다는 스튜디오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파도가 달라졌다. 배가 흔들렸다. 구름이 움직였다. 수평선에 원하지 않는 배가 나타났다.

촬영 일정은 길어졌다. 예산은 불어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계 상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촬영팀은 상어를 ‘브루스’라고 불렀다. 육지와 수조에서 시험할 때와 실제 바다는 달랐다. 바닷물과 기계장치의 조합은 수많은 문제를 만들었다.

감독이 원한 장면을 찍을 수 없었다. 상어는 없다.
다시. 또 없다. 영화감독에게 ‘찍고 싶은 것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제약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영화의 문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상어를 충분히 보여줄 수 없자 스필버그와 제작진은 상어가 없는 장면으로 상어를 만들어야 했다.

물속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점. 갑자기 흔들리는 부표. 물 위를 미끄러지는 노란 통. 배 아래에서 들려오는 충격. 그리고 음악.

존 윌리엄스가 만든 두 음의 반복.
둠. 둠.
처음에는 느리다.
둠. 둠.
조금씩 빨라진다.

관객은 아직 상어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몸이 먼저 긴장한다. 바닷물이 평범하게 흔들리고 있을 뿐인데 아래에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물 자체가 무섭다. 보이지 않는 괴물은 관객의 머릿속에서 완성된다. 영화 제작의 실패가 표현 방식의 발견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창의성 연구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때 제약이 반드시 창조를 방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다.

조건이 무한하면 선택도 무한해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수 있다. 반대로 조건이 제한되면 질문이 구체적으로 바뀐다.

상어를 보여줄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상어를 느끼게 할 것인가.

돈이 부족하다. 그러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장소가 좁다. 그러면 프레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장면은 무엇인가. 제약이 있다고 자동으로 창의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조건이 지나치게 나쁘면 작품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적당한 제약은 익숙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다른 길을 찾게 한다.

창의성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상태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려 할 때 태어나기도 한다.

'죠스'에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었다. 상어가 등장하기 전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본다. 아이들이 논다. 해변은 평범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관객은 알고 있다. 어딘가에 상어가 있을 수 있다.

기다린다. 언제 나올까. 저 그림자인가. 아닌가. 저 물결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다시 기다린다. 스필버그는 보여주는 것만큼 기다리게 하는 법을 배웠다.

1975년 '죠스'가 개봉했다. 영화는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었고 현대적인 여름 블록버스터의 형성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게 됐다.


관객들은 상어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그런데 정작 가장 무서웠던 순간들 가운데 상당수에는 상어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아이러니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기계가 영화의 가장 강력한 표현법 가운데 하나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그렇다고 《죠스》의 성공을 ‘상어가 고장 나서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고장만 난다고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필버그에게는 이미 단편과 TV 연출을 통해 쌓은 경험이 있었다. 촬영감독이 있었다. 편집자가 있었다. 배우들이 있었다. 제작진이 있었다. 그리고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 있었다. 소설이라는 원작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판단과 노동이 한 작품에 들어갔다. 우리가 성공한 영화의 감독 이름 하나를 기억한다고 해서 영화가 한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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