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보다 낮은 식탁에 머물렀다

예수

by은파랑

서기 1세기, 갈릴리의 어느 저녁. 해가 낮아지고 있었다. 작은 집 안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식탁은 높지 않았다. 빵이 놓여 있었다. 포도주가 있었다. 등잔불이 사람들의 얼굴을 흔들며 비추었다.

사람들의 옷에는 하루의 먼지가 남아 있었다. 어부가 있었다. 세리가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 슬롯에서 죄인이라 손가락질받던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예수.

그에게 사람들이 기대했던 자리는 어쩌면 더 높은 곳이었을지 모른다. 스승의 자리. 지도자의 자리.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자리.

하지만 복음서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예수의 모습은 이상할 만큼 낮은 곳에 있다.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 병든 사람에게 가까이 간다. 아이들을 받아들인다. 소외된 사람들과 식탁을 나눈다. 빵을 떼어 건넨다. 한 조각. 그리고 또 한 조각.

그에게 사람의 크기는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 보다, 누구의 곁까지 낮아질 수 있는가에 가까웠다.

역사적 예수는 대략 기원전 1세기말에서 서기 1세기 초, 로마의 지배를 받던 유대 지역에서 태어나 갈릴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유대인 종교 지도자였다.

그의 탄생을 둘러싼 베들레헴과 구유, 목자와 별의 이야기는 기독교 복음서가 전하는 신앙의 서사다.

역사적으로 그의 삶과 가장 강하게 연결되는 장소는 나사렛과 갈릴리다. 예수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기록이 많지 않다. 복음서에는 그가 목수 또는 장인의 집안과 관련된 인물로 묘사된다. 그래서 기록되지 않은 세월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함부로 채울 필요는 없다.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채로 남겨두는 것이 한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그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 가장 가까이에 모인 사람들은 당시 슬롯의 권력자들만이 아니었다.

어부들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철학 용어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씨앗을 이야기했다. 등불을 이야기했다. 양을 이야기했다. 동전을 이야기했다. 포도나무를 이야기했다. 빵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매일 만지고 보던 것들이었다. 씨앗 하나. 흙 속으로 떨어진다. 빵 한 조각.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다. 거대한 진리를 말하면서도 재료는 작았다. 아마 그것이 그의 가르침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사람들은 철학바카라을 펼치지 않아도 씨앗을 알고 있었다. 배고픔을 알고 있었다. 길을 잃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는 마음도 알고 있었다. 깊은 말은 어려운 말일 필요가 없다. 가장 깊은 진실은 때때로 빵과 씨앗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습으로 찾아온다.

당시의 식탁에는 음식을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누구와 함께 먹는가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런데 복음서 속 예수는 세리와 슬롯적으로 배척받던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그 때문에 비판도 받았다. 왜 저런 사람들과 함께 먹는가. 왜 가까이하는가. 사람들은 경계를 만들었다. 괜찮은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깨끗한 사람. 부정한 사람. 우리 편. 저쪽 사람. 예수는 경계 앞에 식탁을 놓았다. 그리고 의자를 하나 더 만들었다. 사람들은 경계를 만들었고, 그는 식탁을 조금 넓혔다.

이것은 모든 행동을 무조건 괜찮다고 인정했다는 뜻과는 다르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승인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에는 사랑뿐 아니라 회개와 바카라임, 정의에 대한 요구도 함께 있었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의 잘못까지 눈감아줘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니다. 사람의 존엄을 인정하면서 행동에는 분명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사람을 버리지 않으면서 잘못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람과 잘못을 같은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것 역시 사랑의 어려운 기술이다.

어느 날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에게 데려왔다고 복음서는 전한다. 제자들은 그들을 막으려 했다. 당시 슬롯적 위계에서 아이들은 오늘날처럼 중심적인 존재로 대우받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는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했다. 또 병든 사람에게 다가갔다. 당시 사람들이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했던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전해진다.

그 장면들을 따라가면 반복되는 움직임 하나가 보인다. 가까이 가는 것. 사람은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멀어진다. 아래의 얼굴이 작아진다.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누군가의 눈높이까지 몸을 낮추면 얼굴이 보인다. 표정이 보인다. 상처가 보인다. 목소리가 들린다.

낮아진다는 것은 자신을 작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멀리 있던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거리까지 가는 일이다.

복음서 가운데 요한복음은 예수가 마지막 식사를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을 전한다.

당시 먼지 많은 길을 샌들을 신고 걸었던 사람의 발은 깨끗하지 않았다. 물을 가져온다. 대야에 붓는다. 몸을 낮춘다. 발을 잡는다. 물을 끼얹는다. 닦는다. 스승이 제자의 발 앞에 앉았다. 높고 낮음의 질서가 뒤집힌다.

그는 지도자의 자리를 버린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의미를 바꾸었다. 사람들 위에 서는 사람에서, 사람을 위해 몸을 낮출 수 있는 사람으로.

권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지만, 품격은 힘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가에서 드러난다.

심리학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감정을 세심하게 읽는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자신이 말할 기회는 많아진다. 반대로 들을 필요는 줄어들 수 있다. 사람들이 먼저 인사한다. 먼저 길을 비켜준다. 내 말을 끝까지 듣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타인의 세계를 자신의 자리에서만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낮아지는 행동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 것. 아이의 눈높이에 앉는 것. 후배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 직함이 없는 사람에게도 같은 예의를 갖추는 것.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내가 이길 수 있는 사람 앞에서 힘을 과시하지 않는 것.

사람의 인격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대할 때보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을 대할 때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예수가 말한 사랑은 감정만을 뜻하지 않았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준다.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준다. 낯선 사람을 맞아들인다. 병든 사람을 찾아간다. 용서한다. 곁에 머문다. 동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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