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널드 슈워제네거

사람들은 그의 이름부터 바꾸라고 했다

by은파랑

1968년, 미국 캘리포니아. 체육관 안에는 쇠 냄새와 땀 냄새가 섞여 있었다. 거울 앞에는 덤벨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바벨이 바닥에 내려앉을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한 청년이 바벨 앞에 섰다. 스물한 살.

영어는 서툴렀다. 억양은 강했다. 몸은 당시 영화배우의 기준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그리고 이름은 길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Arnold Schwarzenegger.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한 번에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훗날 그가 배우가 되려 하자 주변에서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몸이 너무 크다. 억양이 너무 강하다. 이름은 너무 어렵다.


영화배우가 되려면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청년은 다시 바벨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는 대신 사람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게 만드는 쪽으로 걸어갔다.


약점이 사라져서 강점이 된 것이 아니라, 약점보다 큰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다르게 부르기 시작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1947년 오스트리아 탈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아버지 구스타프는 경찰관이었다. 가정환경은 엄격했다. 어린 아널드는 자신이 태어난 작은 마을보다 훨씬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그곳은 미국이었다. 영화. 큰 도시. 자동차. 그리고 근육질의 남자들이 등장하는 잡지. 특히 보디빌더 레그 파크는 그의 중요한 우상이 됐다. 레그 파크는 몸을 만들었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소년에게 처음으로 하나의 연결이 보였다.


몸. 보디빌딩. 영화. 미국. 남들에게는 서로 떨어져 있던 점들이 그의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길이 됐다. 꿈은 때때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머릿속에서 먼저 연결해 보는 일이다.


그는 운동을 시작했다. 근육은 생각만으로 생기지 않았다. 바벨을 들었다. 내렸다. 다시 들었다. 철컹. 어제 들었던 무게를 오늘 다시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무거운 것을 들었다.


보디빌딩은 이상할 만큼 정직한 운동이다. 한 번의 의욕으로 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울은 오늘의 결과만 보여준다. 어제 했던 운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몸은 기억한다. 반복을.


한 번. 또 한 번.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볼 때 마지막 사진을 보는 경우가 많다.


무대 위의 몸. 영화 포스터. 트로피. 박수.


하지만 결과의 대부분은 사진에 찍히지 않은 날들에서 만들어진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특별한 하루 하나보다 특별할 것 없었던 하루의 반복일 때가 많다.


슈워제네거는 보디빌딩 대회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유럽에서 활동했고, 196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가 꿈꾸던 장소였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했다고 꿈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영어. 억양. 연기 경험. 문화. 그리고 이름.


그는 영어를 공부했다. 연기를 배웠다. 발성과 대화를 연습했다. 사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동시에 보디빌딩을 계속했다.


1970년 처음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우승했고 이후 여러 차례 정상에 올랐다. 몸은 이제 약점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디빌더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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