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610년 무렵, 아라비아반도 메카 근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도시 불빛에서 떨어진 히라산 동굴은 어두웠다. 바위는 낮 동안 품었던 열을 조금씩 내보내고 있었다. 멀리 메카가 잠들어 있었다.
한 남자가 홀로 앉아 있었다. 무함마드. 마흔 살 무렵이었다. 그는 종종 이곳으로 올라와 혼자 머물며 생각하고 기도했다고 이슬람 전승은 전한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부족과 부족. 고아와 약자. 우상으로 가득한 성소.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질문들이 있었다.
그날 밤, 침묵 속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이슬람 신앙에 따르면 천사 지브릴이 나타나 그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했다.
“읽어라.” 또는 ‘낭송하라’는 뜻으로 이해되는 명령이었다.
그 순간을 역사학이 신앙과 동일한 방식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이슬람 전통에서 전해지는 최초 계시의 이야기다. 하지만 전승이 전하는 무함마드의 반응은 흥미롭다.
그는 처음부터 확신에 찬 영웅처럼 동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두려워했다. 몸을 떨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길은 확신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두려움 속에서도 외면할 수 없었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무함마드는 570년 무렵 메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라이시 부족의 하심 가문에 속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압둘라는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어머니 아미나 역시 그가 어린 나이에 죽었다. 할아버지의 보호를 받았고,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삼촌 아부 탈리브의 보호 아래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빈자리가 있었다. 아버지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기도 전에 먼저 배워야 했던 것이 이별이었다. 이 경험 하나로 훗날의 모든 사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슬람 경전과 전통에서 고아와 가난한 사람, 슬롯적 약자를 돌보는 일이 반복해서 강조된다는 사실을 바라보면 그의 삶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아팠던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을 얻기도 한다. 물론 모든 상처가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고통은 누군가를 더 따뜻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 거칠게 만들기도 한다. 상처 자체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으로 바꾸는지가 중요하다.
젊은 무함마드는 상업 활동에 참여했다. 대상들과 함께 이동하며 거래를 경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막의 길에서는 신뢰가 중요했다. 한번 약속을 어긴 사람과 다시 먼 길을 함께하기는 어렵다.
이슬람 전승에서는 그가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사람이라는 뜻의 ‘알아민’으로 불렸다고 전한다.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인물 가운데 카디자가 있었다. 카디자는 무함마드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인이었고, 자신의 교역 업무를 그에게 맡겼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은 이후 결혼했다. 무함마드의 삶에서 카디자는 단순히 배우자로만 남지 않는다. 훗날 그가 가장 두려운 순간에 돌아간 사람이었다.
히라 동굴에서 첫 계시를 경험했다고 전해지는 밤. 무함마드는 집으로 내려왔다. 그는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을 덮어달라고 말했다고 이슬람 전승은 기록한다.
카디자는 그를 덮어주었다. 천이 몸 위로 내려온다.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를 믿었다.
이슬람 전통에서 카디자는 최초의 신자로 여겨진다. 이 장면에는 거대한 종교가 아직 없다. 모스크도 없다. 수많은 신자도 없다. 역사바카라도 없다. 두려워하는 한 사람과 그의 이야기를 듣는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오래 남는다. 사람이 자신의 길을 처음 믿기 어려울 때, 먼저 그 사람을 믿어주는 한 사람이 삶 전체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용기만 기억한다. 하지만 용기 뒤에는 종종 누군가의 조용한 신뢰가 있다.
괜찮아. 네 이야기를 들어볼게. 작은 문장이 사람을 다시 일으킨다.
무함마드가 전하기 시작한 메시지는 당시 메카 슬롯와 충돌했다.
하나의 신. 인간은 그 앞에서 근본적으로 바카라임 있는 존재라는 것.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 부와 권력만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
심판과 바카라임. 자비. 이런 가르침은 개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종교적 메시지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메카의 종교적·경제적·부족적 질서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처음 그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롱이 있었다. 반대가 있었다. 박해도 이어졌다.
그런데 그는 계속 말했다. 한 번. 또 한 번. 목소리는 처음부터 크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도 처음에는 한 사람이 떨면서 꺼낸 한 문장이었을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가치와 행동이 일치할 때 삶에서 더 강한 의미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두려움이 사라져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을 용기라고 부를 수 있다. 용기는 두려움의 반대말이 아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에게는 애초에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무함마드 얘기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 동굴에서 내려온 사람이 처음부터 모든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반대가 기다리는지. 고향을 떠나게 될지. 전쟁을 겪게 될지. 자신의 말이 수백 년 뒤 세계 곳곳에서 낭송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은 완성된 미래의 지도라기보다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하는 확신이었다. 길 전체가 보이지 않아도 다음 한 걸음의 방향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계속 어두워졌다. 무함마드를 보호해 주던 삼촌 아부 탈리브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였던 카디자도 세상을 떠났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이 시기를 ‘슬픔의 해’라고 기억한다. 두 사람이 떠났다. 자신을 지켜주던 사람이 사라졌다. 자신을 믿어주던 사람이 사라졌다.
어떤 상실은 사람의 삶에서 의자를 하나 비우는 정도가 아니다. 방 전체가 비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사람은 다시 아침을 맞는다.
먹는다. 걷는다. 해야 할 일을 한다. 상실을 극복했다기보다 상실을 데리고 살아가기 시작한다.
슬픔을 이겨낸다는 말보다 슬픔과 함께 다시 걷는다는 말이 삶에는 더 정확할 때가 있다.
622년.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메카를 떠나 야스리브로 이주했다. 훗날 메디나로 알려진 도시다. 이 사건을 ‘히즈라’라고 부른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익숙한 고향을 떠나는 일이었다.
집. 거리. 추억. 사람.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뒤에 남겨야 했다. 사람들은 떠남을 패배라고 생각하기 쉽다.
끝까지 버티는 것이 용기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떠나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지킬 수 있는 것도 있다.
히즈라는 이슬람 역사에서 너무 중요했기에 훗날 이슬람력의 출발점이 됐다.
흥미롭다. 승리한 날도 아니었다. 태어난 날도 아니었다. 처음 계시를 받은 날도 아니었다. 떠난 사건이 새로운 시간의 기준이 되었다.
때로 인생의 새로운 달력은 무언가를 얻은 날이 아니라,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곳을 떠난 날부터 시작된다.
메디나에서 무함마드의 역할은 달라졌다. 그는 종교적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인 동시에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가 됐다.
서로 다른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했다. 규범을 만들고 분쟁을 해결해야 했다. 메카 세력과의 무력 충돌도 이어졌다. 이 부분을 빼놓고 그의 삶을 평화와 자비만의 이야기로 만들 수는 없다.
역사적 무함마드는 종교 지도자인 동시에 7세기 아라비아의 정치적·슬롯적 지도자였고, 전쟁과 동맹, 법과 권력의 현실 속에서 활동했다.
그의 생애에 대한 평가 역시 종교적 전통과 현대 역사학, 서로 다른 문화적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한 인물을 존중한다는 것은 불편한 부분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빛을 제대로 보려면 그 빛이 지나온 시대의 어둠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630년 무함마드는 추종자들과 함께 메카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자신을 박해하고 떠나게 했던 도시였다. 이슬람 전승은 이때 비교적 광범위한 사면이 이루어졌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메카 정복 역시 정치적·군사적 사건이었으므로 그것을 아름다운 화해 장면 하나로만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한때 떠나야 했던 도시. 자신의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도시. 이제 그는 훨씬 큰 힘을 가진 채 돌아왔다. 사람은 약할 때보다 강해졌을 때 더 어려운 시험을 받기도 한다.
약할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적다. 힘을 가지면 선택지가 많아진다. 복수할 수도 있다. 용서할 수도 있다. 독점할 수도 있다. 나눌 수도 있다.
그래서 권력은 사람의 본성을 새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더 크게 드러내는 확대경과 비슷할 때가 있다.
힘이 없을 때 무엇을 꿈꾸었는가 보다, 힘을 얻은 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더 어려운 질문이다.
무함마드는 632년 메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직접 한 권의 바카라을 집필해 남긴 것은 아니다.
이슬람 신앙에서 꾸란은 무함마드가 오랜 기간 받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그것이 암송과 기록을 통해 보존되고 후대에 정리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말과 행동에 관한 전승 역시 이후 하디스 문헌 등을 통해 전해졌다.
따라서 오늘날 무함마드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는 초기 자료와 후대 전승 사이의 시간적 거리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신앙은 신앙의 언어로 존중하고, 역사는 역사의 방법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둘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지 않아도 한 사람의 삶이 던지는 질문은 남는다.
그는 무엇을 들었다고 믿었는가. 믿음 때문에 무엇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두려웠음에도 왜 계속 걸었는가.
우리에게도 히라 동굴 같은 시간이 있다. 아무도 없는 밤. 진로를 바꾸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순간.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실패가 두려운 순간. 잘못된 관계에서 나오고 싶은데 혼자가 될까 두려운 순간. 모두가 한쪽으로 가는데 나만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반복된다. 이건 아닌 것 같다. 한번 해보고 싶다.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이제 떠나야 할 것 같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물론 마음에서 들리는 모든 목소리를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충동도 있다. 착각도 있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생각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일수록 사실을 확인하고,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믿을 만한 사람과 이야기해야 한다.
무함마드에게 카디자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자기 목소리를 따른다는 것은 혼자 모든 답을 안다는 뜻이 아니라, 중요한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바카라임 있게 다음 걸음을 선택하는 일이다.
우리는 확신이 생기면 움직이겠다고 말한다. 두렵지 않게 되면 시작하고, 실패하지 않을 것 같으면 도전하고, 길이 모두 보이면 떠나겠다고 한다. 하지만 무함마드의 이야기가 전하는 첫 장면에는 완벽한 확신보다 떨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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