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지나간 자리에 조각이 남았다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by은파랑

1942년, 덴마크 빌론. 한밤중이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빛이 치솟았다. 불길이 목재를 타고 번졌다. 작업장 지붕이 무너지고, 잘라놓은 나무와 기계들이 불 속으로 사라졌다.

한 남자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목수였다. 그리고 장난감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가 오랫동안 일해온 공장이 불타고 있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남은 것은 검게 탄 목재와 재였다. 어제까지 물건이 놓여 있던 자리에 검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손으로 하나씩 만들었던 것들이 하룻밤 사이 사라졌다. 그만둘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올레는 잿더미 속에서 다시 시작했다.

무너진다는 것은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는 다시 조립해야 할 조각들이 남았다는 뜻이다.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은 1891년 덴마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많은 형제자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일을 배워야 했다. 선택한 것은 나무였다.

톱. 망치. 대패. 나무 냄새.

목수가 된 그는 1916년 빌룬에서 작업장을 인수해 집과 가구, 농가에 필요한 목제품을 만들었다. 아직 장난감 회사는 아니었다.

식탁. 문. 의자. 집.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다. 나무를 재고 자르고 다듬었다. 잘못 자르면 다시 붙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르기 전에 봐야 했다. 한 번 더 재야 했다. 손끝으로 나뭇결을 읽어야 했다.

좋은 목수에게 나무는 어디에서 힘을 받고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알아야 하는 상대다. 올레의 손에는 그렇게 시간이 쌓였다.

그의 삶은 순서대로 좋아지지 않았다. 1920년대 중반에는 작업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집과 작업장이 피해를 입었다. 다시 세웠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1930년대 초 세계대공황의 여파가 덴마크의 작은 마을에도 닿았다. 사람들은 집을 새로 짓지 않았다. 가구 주문도 줄었다. 돈이 없었다. 목수에게 일이 사라졌다.

일이 사라지면 사람은 이상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내 솜씨가 쓸모없어진 것일까. 잘못 살아온 것일까. 그러나 시장이 사라졌다고 손 기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올레는 큰 가구 대신 작은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림질판. 사다리. 생활용품. 그리고 작은 나무 장난감.

오리. 자동차. 요요. 큰 나무를 작은 조각으로 만들었다.

불황은 그에게 장난감을 만들라고 친절하게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방향을 바꿔야 했다. 변화 속에서 훗날 레고가 될 씨앗이 생겼다. 살다 보면 꿈을 따라서가 아니라 살아남으려고 선택한 길에서 뜻밖의 꿈을 만나기도 한다.

1932년 무렵, 올레는 목제 장난감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난감이라고 대충 만들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작은 나무 오리에도 손이 갔다.

깎았다. 칠했다. 말렸다. 다시 살폈다.

올레의 품질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아들 고트프레드가 나무 오리에 칠해야 할 니스의 횟수를 줄여 비용을 아꼈다고 자랑하자, 올레가 오히려 제품들을 다시 가져와 제대로 칠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가족과 회사에서 전해져 온 일화인 만큼 세부 대화를 그대로 역사적 기록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레고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한 문장은 올레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오직 최선만이 충분하다.’

작은 장난감 하나였다. 아이가 며칠 가지고 놀다가 구석에 던져놓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대충 만들지 않았다. 물건의 크기가 작다고 만드는 사람의 기준까지 작아질 필요는 없다.

1934년, 회사에는 이름이 생겼다. LEGO. 덴마크어 ‘leg godt’, 즉 ‘잘 놀다’라는 말에서 가져온 이름이었다. 짧았다. 아이들이 기억하기 쉬웠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 네 글자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장난감 이름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알지 못했다. 레고는 아직 우리가 떠올리는 플라스틱 블록의 회사가 아니었다.

나무 장난감을 만드는 작은 업체였다. 오리가 있었다. 자동차가 있었다. 요요가 있었다. 나무 조각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것을 손으로 움직였다. 올레에게 놀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 물건 하나가 아이의 상상 속에서 다른 것이 되는 일이었다. 나무 자동차는 자동차이면서 어느 순간 기차가 될 수 있었다. 작은 집은 성이 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완성된 세계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 머릿속에서 세계를 다시 만들었다. 이 생각은 훗날 레고 블록의 본질과 묘하게 이어진다. 완성된 장난감보다, 완성할 수 있는 장난감.

그러던 1942년. 다시 불이 났다. 이번 화재는 공장을 크게 파괴했다. 불길은 나무 장난감과 설계 자료, 생산시설을 삼켰다. 올레에게 불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잔인했을지도 모른다.

한 번 무너진 것을 다시 세워봤기 때문에 다시 세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고 있었다. 사람은 처음 실패했을 때보다 같은 종류의 실패가 반복될 때 더 깊이 흔들리기도 한다.

또?
왜 나에게 또?
이번에도 다시 해야 하나.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역경 이후 다시 기능을 회복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은 아무리 무너져도 아프지 않은 능력이 아니다.

강한 사람도 지친다. 절망한다. 포기하고 싶어진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 이후에도 다음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올레에게도 선택이 남았다. 그만둘 것인가. 다시 지을 것인가. 그는 다시 지었다. 회복은 무너지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남아 있는 조각으로 다음 모습을 만드는 일이다.

전쟁이 끝난 뒤 세상은 또 달라지고 있었다. 새로운 재료가 등장했다. 플라스틱. 목수에게는 낯선 물질이었다. 나무와 달랐다. 결이 없었다. 대패질할 수도 없었다. 오랫동안 나무를 만져온 사람이 플라스틱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올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1947년 레고는 플라스틱 사출성형기를 도입했다. 당시 덴마크 장난감 업체로서는 상당히 새로운 투자였다. 그리고 1949년 무렵 ‘자동 결합 블록’이라 불린 초기 플라스틱 벽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탄생한 완전히 독창적인 형태였던 것은 아니다. 영국의 키디크래프트가 앞서 만든 결합식 블록의 영향을 받았다.

레고는 이후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아들 고트프레드 세대에서 블록들을 하나의 놀이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1958년에는 오늘날 레고 블록의 핵심이 되는 스터드와 내부 튜브 방식의 결합 구조가 특허로 자리 잡았다.

그해 올레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늘날의 거대한 레고 제국 전체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손에서 시작된 생각은 다음 세대로 넘어갔다.

딸깍. 블록 두 개가 맞물렸다.

레고 블록의 힘은 단순하다. 하나만 보면 별것 아니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다. 하지만 두 개를 붙인다. 딸깍. 세 개를 붙인다. 딸깍. 집이 된다. 자동차가 된다. 배가 된다. 우주선이 된다. 성을 만들었다가 부순다. 다시 만든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이것이 레고가 가진 이상한 철학이다.

부수는 것이 반드시 실패가 아니다. 조립된 형태가 사라져도 조각은 남기 때문이다. 오늘 만든 집을 무너뜨려야 내일 우주선을 만들 수 있다. 레고에서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다음 조립을 위한 상태다.

올레의 삶도 그랬다. 사업이 흔들렸다. 불이 났다. 공장이 사라졌다. 목제 장난감의 시대도 변했다. 그때마다 처음과 똑같은 것을 복원하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목공 기술. 품질에 대한 기준. 장난감을 이해하는 경험. 가족. 회사. 그리고 다시 시작할 의지.

조각들을 다른 방법으로 맞췄다. 딸깍.

그렇다고 그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이야기로 만들 필요는 없다. 화재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 다시 일어서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사업 실패에는 돈이 필요하다. 재건에는 자본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레고 역시 올레 한 사람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아들 고트프레드의 역할이 컸고 수많은 기술자와 디자이너, 직원들이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초기 플라스틱 블록 역시 앞선 제품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므로 올레의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은 불행을 감사하라는 말이 아니다.

불이 공장을 태웠기 때문에 레고가 성공한 것도 아니다. 불은 그냥 불이었다. 손실이었다. 고통이었다. 다만 불이 지나간 뒤에도 선택은 남았다. 우리는 무너지는 일을 선택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남은 조각을 어떻게 다시 맞출지는 조금씩 선택할 수 있다.

1960년에는 또 다른 화재가 레고의 목제 장난감 창고를 덮쳤다. 하지만 그때는 올레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회사는 아들 고트프레드가 이끌고 있었다. 이 화재 이후 레고는 목제 장난감 생산에서 완전히 물러나 플라스틱 블록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 사실도 중요하다. 흔히 여러 차례의 화재가 모두 올레의 개인적인 재기 이야기처럼 섞여 전해지지만 그렇지 않다.

1942년의 공장 화재는 올레가 직접 겪었다. 1960년 화재는 다음 세대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 사건 사이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한 세대가 다시 세웠다. 다음 세대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했다.

전통은 모든 것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핵심만 남기고 재료를 바꾸는 일이다. 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완성된 장난감에서 조립하는 장난감으로. 하나의 제품에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사각. 사각. 나무를 자르던 소리는 멀어진다. 그 자리에 새로운 소리가 들어온다. 딸깍. 딸깍.

우리의 삶도 어쩌면 블록과 비슷하다. 학교 하나가 끝난다. 온라인 게임을 잃는다. 사업이 실패한다. 관계가 무너진다. 계획했던 미래가 사라진다.

그러면 우리는 완성된 모양만 바라본다. 내가 만들었던 집. 내가 생각했던 인생. 내가 원했던 미래. 그것이 무너졌으니 모든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닥을 자세히 보면 조각들이 있다. 배운 것. 해본 것. 견뎌본 것. 사람을 알아보는 눈. 일하는 습관. 실패하면서 알게 된 것. 다시는 하지 않을 선택. 다음에는 다르게 해 볼 방법.

이것들은 완성된 집은 아니다. 그래서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만들 때 필요한 것은 완성된 옛집이 아니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조각이다. 인생은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은 조각으로 다시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삶이 무너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막막하다. 내가 만든 것이 모두 사라졌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다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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